'자애롭고도 엄한 父' 윤기중 교수, 尹대통령에 "잘 자라줘서 고맙다"(종합)
尹대통령 가치관·서울대 법대 진학에 영향
밀턴 프리드먼 책 선물·김지하 시 읽어주기도
고(故)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 장남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5일 오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교수가 의식이 있을 때 윤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윤 교수의 병세가) 안 좋기는 했다. 오늘 광복절 행사 마치고, 미국에 가기 전 (중간)에 뵈러 가려고 했다"며 "윤 대통령의 도착 20분 후 (윤 교수가) 별세하셨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사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한 윤 대통령은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윤 대통령은 15~17일 중 윤 교수가 입원했던 서울대병원에 가려고 했으나, 병세가 심각해지자 경축식 직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작고한 윤 교수와 각별한 부자지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윤 교수는 윤 대통령에게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자애롭게 키웠고, 이념에 얽매이지 않도록 열린 교육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윤 대통령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지만, 윤 교수의 고향인 충남 공주를 고향으로 여기며 '충남의 아들'을 자처해왔고, 부친을 따라 충남 논산의 파평 윤씨 집성촌에 애정을 가져왔다.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진학도 윤 교수의 권유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유년 시절 통계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윤 교수를 따라 경제학자를 희망했지만, '더 구체적인 학문을 하라'는 윤 교수의 말에 따라 법대에 진학했다.
윤 교수는 1956년 연세대 상경대 경제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일수교 직후인 1966년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수학했다. 1968년 귀국 후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창립 멤버로 부임해 1997년까지 강단에 섰다. 한국통계학회 회장(1977년~1979년)과 한국경제학회 회장(1992년~1993년)을 역임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도 윤 교수가 서울대 법대 입학 기념으로 선물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윤 교수는 월간 '사상계'에 실린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윤 대통령에게 직접 낭송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대학 졸업 후 신림동 고시촌이 아닌 윤 교수가 재직했던 연세대 중앙도서관에서 주로 사법시험 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연세대 졸업식 축사에서도 윤 교수의 연세대 연구실, 교정에 대한 추억을 회상한 바 있다.
윤 교수가 동료 학자들을 연희동 자택으로 초대했을 때 윤 대통령이 하교하면 훌륭한 학자가 되라고 격려하며 노래를 시킨 일도 유명하다.
때론 엄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고교 1학년 때 거구인 윤 교수에게 업어치기를 당하고 기절해 다음 날 등교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평소 아버지에게 많이 혼났느냐'는 질문을 받고 "공부 안 하고 놀러 다닌다고 많이 혼났다"며 "대학생 때 늦게까지 놀다가 아버지한테 맞기도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윤 교수는 윤 대통령이 2002년 검사복을 벗고 1년간 대형로펌에서 일하다 다시 검찰로 복귀할 때도 크게 반기며 "부정한 돈은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부모님께 요리를 해드린 일화를 소개하며 "아버지가 공직을 그만두면 식당을 하라고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당선 후에도 부친과 함께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1년 4월2일 윤 교수를 부축하고 4·7 재·보궐선거 사전 투표소를 방문해서는 "아버님께서 기력이 전 같지 않으셔서 모시고 왔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인 지난해 7월 12일에는 윤 교수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집무실 등 업무 공간을 소개하고 만찬을 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현직 대통령으로 재임 중에 부모상을 당한 것은 지난 2019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 모친상 이후 두 번째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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