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채 인증하면 코인 지급”…혁신이냐 사기냐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3. 8. 1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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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아버지가 만든 ‘월드코인’ 논란

760원 → 1만4440원.

지난 7월 24일 국내 가상자산(코인) 거래소에 상장한 ‘월드코인(WLD)’ 가격 변화다. 상장한 지 불과 1시간 만에 2000% 가까이 값이 뛰었다. 비단 한국에만 불어닥친 광풍은 아니다. 같은 날 전 세계 주요 거래소에 0.15달러에 상장된 월드코인은 한때 5.29달러까지 치솟았다. 8월 10일 기준 1.85달러 선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고점과 비교하면 3분의 1토막이 났다.

월드코인은 코인 투자자뿐 아니라 전 세계 테크업계 관심을 한 몸에 받아온 프로젝트다. 챗GPT 개발로 생성형 AI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오픈AI’ 설립자 샘 알트만이 3년간 준비 끝에 선보인 코인 프로젝트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새로운 신분 증명 시스템을 만들고 인류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그가 밝힌 개발 취지다.

월드코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AI 부작용을 해결할 또 다른 혁신’이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전형적인 코인 사기’라는 주장도 있다. 월드코인에서 요구하는 ‘홍채 데이터’를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는 데이터 수집 위법성을 우려해 월드코인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홍채 인증을 마치면 디지털 신분증인 ‘월드 ID’가 발급된다. 지갑 애플리케이션 ‘월드 앱’을 통해 월드코인 토큰 25개를 받을 수 있다. (월드코인 홈페이지 캡처)
월드코인, 왜 만들었나

디지털 신분증…“AI 아님을 증명”

월드코인은 2019년 샘 알트만이 설립한 블록체인 재단이다. 핵심은 ‘인간 증명’이다. 가까운 미래, 온라인에서는 AI와 실제 사람을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한 프로젝트다. 고성능 AI 챗봇이 야기할 수 있는 여러 부작용을 막자는 취지다. “AI가 접근 불가능한 새로운 신원 증명이 필요하다”는 게 월드코인 측 설명이다.

월드코인이 택한 방식은 ‘홍채 인식’이다. AI는 홍채 데이터를 인증할 수 없는 데다, 출생 신고 누락에 따른 기존 신분증 제도의 한계도 극복 가능하다.

기계 앞에서 홍채 인증만 하면 누구나 디지털 신분증인 ‘월드 ID’를 발급받을 수 있다. ID를 발급받으면 월드코인 토큰도 지급한다. 홍채 데이터를 수집하는 작은 구형 장치 ‘오브(Orb)’를 3분 정도 응시하면 지갑 앱인 ‘월드 앱’으로 월드코인 25개를 보내준다. 현재 시세로 따지면 6만5000원 정도다.

전 세계 200만명이 넘는 이가 월드 ID를 발급받고 월드코인을 수령했다. 월드코인 측에 따르면 8월 10일 기준 전 세계 120개 국가에서 221만명이 넘는 이가 홍채 데이터를 인증했다. 한국도 된다. 서울 을지로를 비롯해 역삼과 광화문 등 3개 카페에 오브가 설치돼 있다. 장소는 월드코인 앱에서 확인 가능하다.

단순 신원 증명을 넘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기본 소득’ 네트워크로 키운다는 게 월드코인 측 계획이다. AI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나 취약계층 소득을 월드코인으로 보조한다는 구상이다. 월드코인 백서에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금융 네트워크가 목표”라며 “AI가 자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보편적 인간 소득’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AI가 아닌 오직 인간만이 월드코인으로 소득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허술한 백서…“스캠이랑 뭐가 달라?”

구체적인 사업 방향·재원 마련 방법 없어

쏟아지는 관심만큼이나 이를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다만 블록체인업계 내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무엇보다 ‘생체 데이터 유출 가능성’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민감한 개인정보인 홍채 데이터를 수집하는 목적이 불분명한 데다 보안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드코인 관계자는 “인증을 위해 수집한 홍채 데이터는 신원 확인이 끝나고 즉시 삭제한다”며 “월드코인이 데이터를 따로 관리한다거나 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커뮤니티를 비롯한 전 세계 온라인 암시장에서는 이미 월드 ID 거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홍채 인증 후 발급받은 코인 지갑 계정을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파는 식이다. 한 사람이 수백 개 월드 ID를 보유할 수도 있게 되는 셈이다.

한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구매자 입장에서는 돈을 주더라도 여러 개 지갑을 갖고 있을 유인이 충분하다. 홍채 인증 시에도 주기적으로 공짜 코인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마약 거래나 비자금 조성 시에도 다른 사람 지갑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광화문 근처 한 카페에 설치된 월드코인 홍채 인식 장치 ‘오브’의 모습. (최근도 기자)
해외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을 이유로 규제당국이 조사에 나선 국가도 많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이 대표적이다. 케냐에서는 자국 내 홍채 데이터 수집을 전면 금지했다. 최근 케냐 경찰은 수도인 나이로비 소재 월드코인 사무실을 찾아 회사 서류와 기기를 압수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월드코인과 관련한 금융당국이나 정부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 개인정보위원회 관계자는 “정보 주체 동의를 받았다면 홍채 데이터를 수집할 수는 있다. 다만 개인정보처리자로서 의무 사항이 발생한다”며 “서비스에 필요한 정보만을 수집하는 ‘최소 수집 원칙’을 벗어난 정보 수집이라고 판단될 경우에도 법 위반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했다.

월드 ID를 발급받는 이들의 국적이 주로 개발도상국이라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코인을 미끼 삼아 취약계층 생체 정보를 수집한다는 비판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홍채 인식으로 월드 ID를 만들 수는 있지만, 코인을 받거나 사용할 수는 없게 돼 있다. 이에 대해 월드코인 측은 “개발도상국은 금융 거래가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코인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 개발도상국에 더 필요한 서비스기도 한 만큼 전략적으로 접근 중”이라고 설명했다.

월드코인 운영 방식이 ‘전형적인 스캠’과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다. ‘보편적 기본 소득’이라는 철학은 거창하지만, 사업 방향이나 재원 마련 방안 등 구체적인 운영 방안을 백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월드코인을 쓸 수 있는 사용처에 대한 언급도 없다. ‘월드코인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면 가치가 오르고, 수익도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만 있다. “다단계 사기에서 투자자를 모집할 때 쓰는 멘트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월드코인에 대한 비난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 세계 AI 패권을 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오픈AI가 생체 데이터까지 보유하게 될 경우,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더리움 창립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월드코인 재단은 수많은 가짜 인간 신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사용자 휴대폰이 해킹당할 수도 있는 등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는 “홍채 정보는 정작 디지털 지갑을 관리하는 데는 전혀 사용되지도 않는다. 비트코인을 대체할 글로벌 디지털 머니로 굳이 월드코인을 발행할 필요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2호 (2023.08.16~2023.08.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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