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차기 CEO 내정된 ‘LG맨’ 김영섭, 이익 카르텔 털어낼까…‘빅배스’ 적임자 [CEO 라운지]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8. 1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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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 전 LG CNS 사장이 차기 KT CEO 후보로 발탁되면서 수개월째 이어진 경영 공백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8월 말 임시 주주총회 등 선임 절차가 마무리되면 그는 향후 2년 7개월 동안 매출 약 25조원, 재계 12위 대기업집단인 KT를 이끌게 된다.

통신업계와 KT에 따르면, KT 이사회는 최근 차기 CEO 최종 후보로 김영섭 전 LG CNS 사장을 내정했다. 헤드헌팅 추천으로 응모한 김 후보자는 서류심사를 1순위로 통과한 후 7월 27일 비대면 면접을 거쳐 차상균 서울대 교수, 박윤영 전 KT 사장과 3인 후보에 포함됐다. 이후 8월 4일 강남 안다즈호텔에서 열린 심층면접에서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그가 CEO로 최종 선임되면 이석채, 황창규 전 회장에 이어 민영화 이후 3번째 외부 출신 대표이사가 된다. 내정 과정에서 현 정권 유력 인사와 사적 인연설도 제기됐지만 이사회에서는 그의 경영능력과 비전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초유의 CEO 공백 사태를 의식한 듯 내정 이후 김 후보자는 별도 메시지를 내지 않고 동선 노출도 최소화한 분위기다. 앞서 다른 CEO들은 내정 직후 간략한 비전과 소감을 담은 입장문을 내왔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나 메시지에는 일절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임시 주총 전까지는 경영 현안 보고를 챙기는 데 주력하면서 ‘정중동’ 행보를 보일 것”이라 말했다.

예전보다 주총 통과 문턱이 높아진 것도 김 후보자의 신중한 행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KT는 CEO 후보자 선임의 정당성 강화를 명분으로 정관 변경을 통해 주총 의결 기준을 의결 참여 주식의 50% 이상 찬성에서 60% 이상 찬성으로 상향했다. 새 정관으로 대표이사에 선임되려면 주총 참여 주식의 60% 이상 찬성과 찬성 비율이 전체 주식의 25%를 넘겨야 한다. 지금까지 국내 CEO 선임을 위해 열린 주총에서 ‘60%’ 허들을 넘은 기업은 드물었다. 이런 점에서 김 후보자도 주총 전까지 최대한 신중한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1959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1984년 럭키금성상사 입사/ 1995년 LG 회장실 감사팀 부장/ 1996년 LG상사 미국법인 관리부장/ 2000년 LG 구조조정본부 재무개선팀 부장/ 2002년 LG 구조조정본부 재무개선팀 상무/ 2003년 LG CNS 경영관리부문 상무/ 2007년 LG CNS 경영관리본부장(부사장)/ 2008년 LG CNS 하이테크사업본부장(부사장)/ 2013년 LG CNS 솔루션사업본부장(부사장)/ 2014년 LG유플러스 최고재무책임자(CFO)/ 2015년 LG CNS 대표/ 2023년 KT 차기 대표이사 내정(현)
LG그룹 출신 ICT 전문가

김 후보자를 바라보는 KT 안팎의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상반된 분위기가 동시에 표출되는 것은 그의 이력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자는 경쟁 그룹인 LG 출신이다. 그는 경북대 사대부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LG 전신인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LG그룹 구조조정본부 상무, LG CNS 경영관리본부 부사장, LG유플러스 경영관리실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지냈다. 그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LG CNS 사장을 지냈다. LG CNS는 2019년부터 매년 연간 매출, 영업이익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력만 놓고 보면 ICT 기업 CEO 출신으로 전문성이 기대되는 대목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력 관리가 잘된 전형적인 LG맨’이라는 냉소적인 시선도 엿보인다. LG그룹 출신 재계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LG CEO는 신사업으로 성과를 내는 혁신형 CEO보다는 관리형 CEO의 면모가 강했는데, 김 후보자 역시 후자 쪽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촌평했다.

관리형 CEO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여럿 된다. 김 후보자는 LG CNS 사장 시절 실적이 나오지 않는 사업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는 등 조직 재배치·재구성에 능수능란했다는 평가다. ‘미래 전략과 결이 맞지 않는다’며 LG CNS에서 추진했던 태양광 사업과 ATM 사업을 정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그의 ICT 전문성에 기대를 거는 시선도 적지 않다. KT는 디지털 혁신의 중요한 열쇠인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Cloud) 등에서 성장 전략을 실현하는 데 조직 자원을 집중해왔다. 김 후보자가 LG CNS CEO로 재직하며 AI, 클라우드, 스마트팩토리 등의 부문에서 7년간 갈고닦은 경험이 있어 KT의 미래 전략을 고도화할 적임자라는 것이다. 김 후보자는 LG CNS 대표 시절 ‘퍼블릭 클라우드 퍼스트’ 전략을 추진해 LG그룹 의존도를 낮추는 데 주력했다. 그는 클라우드부터 스마트팩토리, 스마트물류 등 디지털 전환(DX) 사업을 확대하며 LG CNS의 사상 최대 실적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후보자 앞에 놓인 과제는 산적해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경영 공백 동안 미뤄졌던 주요 임원 인사부터 서두를 것으로 본다. KT는 지난해 연말 정기인사도 아직 못한 상태다. 지난해 연말 이전 임기가 끝날 예정이던 임원과 주요 계열사 대표의 임기도 계약 기간 이후 자동 연장됐다. CEO 공백기 동안 KT 주변에서는 “상무급 ‘베짱이 임원’이 수백 명에 달한다”는 수군거림이 공공연히 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김 후보자가 LG CNS 시절 사업 부문 재배치와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선 것에 비춰, KT 임직원 인사와 사업 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부실을 털어내는 ‘빅배스(Big Bath)’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파다하다. KT 임원들 사이에서는 벌써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상당수 임원이 차기 대표이사에게 눈도장을 찍고 살아남기 위해 경영 공백기 동안 미룰 수 있는 비용이나 부채 인식은 가급적 뒤로 돌리고 조기에 인식할 수 있는 매출이나 수익을 당기는 등 ‘실적 마사지’가 횡행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2013년 말 CEO로 내정된 황창규 전 회장 시절, KT는 빅배스를 단행한 적 있다. 당시 황 회장은 전임 이석채 회장 라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임원을 죄다 몰아냈다. 성과가 부진하거나 실패 가능성이 높은 사업은 모두 정리하고 손실로 처리했다. 이 때문에 KT는 2013년 창사 이래 처음 연간 기준 60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KT는 2014년 1월 이미 2013년 실적을 발표했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순손실을 기록했다며 정정공시를 냈다. KT 같은 대기업이 흑자에서 적자로 느닷없이 정정공시를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때 적자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게 전임 이석채 회장이 1조원을 쏟아부었던 ‘사업·정보 시스템 전환(BIT)’ 프로젝트였다. 통신업계에서는 ‘황 회장이 전임 이석채 회장 프로젝트를 빅배스했다’는 뒷말이 돌았다.

일각에서는 빅배스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뤄질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익 카르텔’ 논란으로 KT가 현 정권에 단단히 찍힌 만큼, 정권 핵심 관계자 등으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려 ‘구현모 디지코 사업’을 대대적으로 손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LG 출신인 그가 낙점된 것도 KT 전현 임직원들과 이해관계가 없어 이익 카르텔 논란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외부 출신 KT CEO 모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석채 전 회장이 2009년 취임 당시 6000명을, 황창규 전 회장은 2014년 8000명을 내보냈다. KT 전직 임원은 “이익 카르텔 후폭풍으로 정권의 눈 밖에 났으니 조직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과도한 빅배스는 경영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어 협력업체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2호 (2023.08.16~2023.08.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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