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피해 입은 '브라마 닭 가족'을 입양했습니다 [보그(Vogue) 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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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기자]
말복(8월 10일)이 지나고 제법 선선한 가을 분위기가 난다. 지난달 경북을 강타했던 폭우는 봉화군 춘양면 우리 마을 사람들 4명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 우리 모두를 두렵고 슬프게 했다.
윗마을에 사시는 길쌤도 피해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길쌤은 애완용으로 거위, 브라마 닭, 칠면조 등을 골고루 키우면서 목가적인 생활을 즐기고 계신다. 타고난 금손인 그도 폭우로 여러 가지 마음이 심란했던 모양인지 애지중지하던 브라마를 입양 보내겠다고 했다.
반려닭 보호자 후보에 오르다
그 대신 키워줄 후견인(?)을 찾던 중 마당 있는 집에 살고 동물을 좋아하는 내가 후보에 올랐다. 나의 이력으로 말하자면 할매들과 살았던 그 춘양집에서 길고양이들을 위한 밥집을 약 1년간 운영했다. 덕분에 작년 가을에 호순이가 7마리의 새끼를 출산했고, 올해는 노랑이가 두 마리의 새끼를 출산해 새끼들과 살고 있다. 가끔 덩치 큰 불량배 고양이들이 왜소한 체격의 호순이와 노랑이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길고양이들은 나의 보호(?)아래 육아까지 해 왔다.
길쌤의 애완용 닭 브라마 가족은 총 8마리로 어미 닭과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새끼 7마리이다. 사실 마당이 있다고 덩치 큰 브라마 가족 8마리를 모두 돌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을 보호할 닭장도 필요하고, 더위와 추위, 그리고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줄 천장이 있는 집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날짐승의 해코지로부터 안전해야 했다.
브라마는 인도가 원산지로 한국 토종닭에 비해 신장은 최대 75cm, 몸무게는 9kg까지 나갈 만큼 등치가 매우 좋다. 고운 털의 색과 선명한 붉은 볏, 그리고 발톱까지 덮을 수 있는 고급진 털 장화를 신고 다니는 특이한 매력을 가진 종이다. 현실의 육아 여건은 턱도 없었지만, 후보에 오른 이상 내가 당첨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났다.
반려닭이 왔다
결국, 자발적으로 내가 입양하고 싶다고 사정을 했다. 보호자로 낙점되었다. 지난 7월 22일 브라마 가족, 더 정확히 말하자면 라이트 콜롬비안 브라마 가족이 내게로 왔다.
TV 화면이나 남의 집 마당에서만 보았던 브라마가 나에게로 온다니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길쌤은 종이 상자에 브라마 가족을 담아 승용차에 태우고 오셨다. 상자 안에 얌전히 앉아있는 어미 닭과 7마리의 새끼는 얌전하다 못해 순한 티가 쫙쫙 흘렀다.
▲ 브라마 노을이를 처음 만난 날 라이트 컬럼비안 브라마 종의 노을이네 가족을 처음 만난 날이다. 새끼들은 어미품으로 쏙 들어가 7마리 모두 보이질 않는다. 상자 안에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
ⓒ 김은아 |
입양의 기쁨을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빛의 속도로 전파했다.
화이트톤에 은은한 베이지 브라운과 블랙 깃털, 그리고 새빨간 볏을 가진 어미 닭은 노을이, 새끼들은 7마리라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로 이름을 지었다.
"빨주노초파남보를 어떻게 구별해요?"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일곱 마리니까... 예쁘잖아?"
짓궂은 친구들은 복날이 곧 오니 그때 먹자며 군침을 흘렸다. 반려닭이라고 해도 한사코 브라마가 살코기가 많으니 비상식량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놀리기도 했다.
반려닭 집은 다 지었는데 무지개는 반쪽이 되었다
어르신들은 무슨 반려닭이냐며 한소리를 하셨다. 결국, 길고양이들과 어르신들의 타박으로 윗마을 김 사장님네 밭에 찾아갔다. 김 사장님은 농사도 안 짓는 데다 땅도 넓고, 볕도 잘 들고 그늘도 있으니 노을이네가 살기에는 딱이었다. 결국, 브라마 가족이 살 집을 짓기 위해 정이할매네 집에서 개집을 얻어 들고 김 사장님네 밭으로 향했다.
▲ 보금자리로 와서 노을이네가 터를 잡을 보금자리로 도착했다. 급한대로 바닥에 왕겨를 깔고 쌀과 옥수수가루, 그리고 왕고들빼기 잎을 뜯어 먹여보았다. 상자에만 있다 넓은 곳으로 오니 편안해 보인다. |
ⓒ 김은아 |
첫날 밤 안전한 취침을 위해 나는 급한 대로 닭망을 구해왔고, 김 사장님은 어디선가 파이프를 구해오셨다. 온종일 땡볕에서 얼기설기 닭망을 만들었다. 문제는... 아... 7마리 중 한 마리가 실종되었다. 아무리 세어 봐도 6마리였다. 닭망을 만들어놓지 않고 노을이네를 데리고 온 것이 실수였다. 지금까지 길쌤한테는 이 사실을 고백하지 못했다. 잘 키우겠노라 맹세를 하고 왔건만... 유구무언이다.
닭망을 얼기설기 치고 노을이네 식구를 개집으로 밀어 넣고 개집을 그물로 칭칭 싸맸다. 왜? 밤에 족제비나 두더지가 혹여나 그물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아이들을 잡아갈까 봐서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우리는 결국 대망의 닭장을 완공했다.
아! 그런데 어쩌나... 두 밤째 되는 날 무지개 중 한 마리가 또 실종되었고, 셋째 날엔 또 다른 한 마리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죽어있었다. 밤새 못된 짐승이 노을이네 집에 침범한 것이 분명했다.
▲ 완성된 노을이 집에서 노을이네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
ⓒ 김은아 |
▲ 완성된 노을이 집 |
ⓒ 김은아 |
사람이나 병아리나 개성은 같았다
▲ 개성대로 병아리 타고난 개성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다. 욕심쟁이, 순둥이, 성질급한 아이 등 다양하다 |
ⓒ 김은아 |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작은 주둥이로 모이를 쪼아먹고, 물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쳐들고 젓가락 같은 다리로 땅을 후비팠다.
해가 질 녘이 되는 6시가량이 되면 노을이는 볏짚을 듬뿍 깔아놓은 개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새끼들을 부른다. 밖에서 신나게 놀던 새끼들은 집에 안 들어가려고 갖은 애를 쓴다. 좀 더 순한 녀석이 먼저 대가리를 들이밀고 들어갔다가 들어갈까 말까 밀당을 하다 다시 밖으로 나오면 나머지 3마리는 신이 나서 더 돌아다닌다.
▲ 취침 준비 중 밤을 맞을 준비 중이다. 어릴적에는 작아서 대가리가 어미 날개에 묻혔는데 3주 컸다고 대가리가 밖으로 삐져나온다. |
ⓒ 김은아 |
3주 전만 해도 노을이 날개에 대가리까지 폭 처박고 자던 녀석들이 제법 컸다고 이제 얼굴을 밖에 빼고 잔다.
닭을 반려동물로 키우다니요, 세상에!
사실 우리 민족에게 닭은 매우 친숙하고 귀한 동물이다. 시계가 없던 시절 날이 밝아옴을 닭의 울음소리로 알았고, 새벽에 귀신을 물리친다고 하여 상서롭게 여겼다. 오덕(五德)이라고 하여 머리의 볏, 즉 관이 있는 文, 발의 날카로운 발톱은 武, 적에 투항하지 않는 勇, 족제비와 달리 먹을 것을 서로 나눌 줄 아는 仁, 항상 때를 지키는 信으로 닭을 귀하게 표현했다. 백년손님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대접했고, 더위에 굴복한다는 초복, 중복, 말복에는 몸을 보양하는 귀한 음식으로 썼다.
종교적으로 보더라도 소고기,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곳은 있어도 닭을 금기시하는 나라는 없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호머 심슨은 Peace & Chicken에서 'All of us love chicken!'이라고 설교하며 종교, 문화, 인종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과 화합의 음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 않았는가!
▲ 반려, 반려닭 부모님 사시는 마을에서는 브라마를 저리 키운다. 저 브라마는 커플이기도 한데 한 폭의 그림같다. 언젠가 노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 |
ⓒ 음성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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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그 존재가 무엇이든 간에 함께 나눌 수 있고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자 축복입니다. 브라마! 정말 순한데 키워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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