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은 끝났지만…진우영의 야구는 리셋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미안하다.”
이 한마디로 아메리칸 드림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푸른 꿈을 안고 향했던 미국. 도전의 과정은 힘겨웠지만, 이별까지 걸린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그래서, 스무 살 청년은 이를 더욱 앙다물었다. 5년 전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하고 미국으로 떠났던 진우영(22·파주 챌린저스)을 최근 파주시 교하읍의 한 야구장에서 만났다. 9월 14일 열리는 2024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 신청서를 일찌감치 내고 제2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진우영은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해 꼭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우영은 KBO리그 스카우트들이 주목하는 오른손 정통파 투수다. 비록 마이너리그에선 방출의 아픔을 겪었지만, 여전히 시속 140㎞대 후반의 힘 넘치는 공과 130㎞ 안팎의 수준급 스플리터와 슬라이더를 던져 상위 지명 대상으로 손꼽힌다. 또 다른 장점도 있다. 병역의 의무를 이미 마쳤고, 해외 유턴파 선수라 입단 계약금이 없어 여러 구단이 탐내고 있다.
그런데 국내 야구팬들에게 진우영이란 이름은 그리 친숙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다 할 정보가 없던 고교 시절 불쑥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하고 한국을 떠났기 때문이다. 진우영은 “성동초를 거쳐 배명중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야구로는 부족한 점을 많이 느껴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았다. 그때 발견한 곳이 바로 글로벌선진학교였다”고 회상했다. 글로벌선진학교는 6년제 대안학교로 미국 교과과정을 따른다. 국어와 한국사를 제외하고는 수업도 전부 영어로 진행한다. 마침 진우영이 다른 학교를 찾을 당시 글로벌선진학교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야구부가 있을 때(현재는 야구부 해체)라 전학을 결정하게 됐다.
문제는 글로벌선진학교가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강팀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없었던 이유다. 진우영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로 기억한다. 미국에서 열리는 ‘파워 쇼케이스(전 세계 유망주들이 참가하는 이벤트 대회)’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때 캔자스시티에서 처음 관심을 나타냈고, 이듬해 대통령배에서 구속이 올라와 마이너리그 계약까지 이르게 됐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영어도 익히고 문화도 어느 정도 적응한 터라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렇게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캔자스시티 루키리그 연고지)로 떠난 진우영은 1년차 때부터 성과를 냈다. 루키리그에서 14경기 동안 6승 2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35(46이닝 12자책점)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듬해 문제가 생겼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페넌트레이스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2021년에는 다시 실전을 뛰었지만, 진우영에게 돌아온 것은 방출 통보였다. 진우영은 “코로나19로 각종 수입이 감소해 구단 사정이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선수단 정리가 있었고, 나도 포함됐다. 최종전이 끝나고 감독님께서 부르시더니 ‘그동안 고생 많았다. 미안하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그날을 떠올렸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겨를은 없었다. 아직 스무 살의 한창 나이. 가야 할 길을 멀었다. 전우영은 “곧장 한국으로 돌아와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했다. 낮에는 예비군 통지서를 돌렸고, 밤에는 운동만 했다. 정말 독기를 품고 뛰었다”고 했다.
지난 6월 소집해제된 진우영은 지인의 소개로 독립구단 파주 챌린저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오랫동안 실전 감각이 없던 터라 독립리그 출전은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진우영은 “그동안 꾸준히 몸은 만들고, 공은 던졌어도 경기 감각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파주 챌린저스에서 뛰면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고 웃었다.
이 기간 뚜렷한 성과도 냈다. 지난 6월 열린 KBO 드림컵에서 파주 챌린저스를 우승으로 이끌며 MVP까지 차지했다. 진우영을 지도하고 있는 김경언(41) 감독은 “진우영처럼 열심히 개인운동을 하는 선수는 본 적이 없다. 집과 야구장만 오가면서 신인 드래프트를 준비하고 있다. 기회만 주어졌다면 미국에서 성공했을 투수인데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깝다. 그래도 한국에서 훌륭한 선수로 성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KBO는 28일 해외파 트라이아웃을 개최한다. 10개 구단 스카우트들이 유턴파 선수들을 마지막으로 평가하는 자리다. 진우영은 “한국으로 돌아와 정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꼭 프로야구 선수가 돼 그동안 받았던 은혜를 되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파주=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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