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무궁화의 날'…가로수 중 벚꽃 15%인데 무궁화 5%
무궁화는 8월이 제철이다. 하지만 광복절인 15일 무궁화 축제가 열리는 곳은 전남 순천만 국제공원, 충남 천리포수목원 정도에 불과하다. 벚꽃이 필 때면 전국 지자체가 축제를 준비하고, 성대하게 여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무궁화는 최근 고양이에게도 밀렸다. 지난 8월 8일은 무궁화의 날이었지만 이날 네이버·다음 등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 대문에는 ‘세계 고양이의 날’을 알리는 그래픽이 하루종일 떠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열린 ‘전국 냥냥 대회’에는 수많은 고양이의 사진이 올라왔다. 무궁화의 날은 아직 국가 지정 기념일은 아니지만 산림청에서도 무궁화의 날을 소개하고 있다. 2007년 전국 650여개 초등학교 1만여명의 학생들의 서명 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져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8월 8일로 정한 이유는 숫자 8을 옆으로 눕힌 모양이 수학 기호 무한대(∞)와 비슷해 ‘무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무궁화가 피는 군자의 나라”
무궁화는 고조선에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단을 장식하는 꽃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전 4세기에 쓰인
「산해경」
에는 우리나라를 ‘무궁화가 피는 군자의 나라’로 표현한 글귀가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과거 급제자에게 하사한 어사화였고 1896년 애국가 가사에 등장하며 독립운동의 상징이 됐다. 여름 내내 피고 또 피는 꽃인데다 오염된 환경과 추위 속에서도 생존력이 강해 수많은 침입에도 끈질기게 견뎌온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무궁화의 인기는 시들하다. 산림청의 ‘2022년 무궁화 국민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무궁화는 꽃나무 선호도 8위(5.7%)에 그쳤다. 1위는 벚나무(18.1%)였다. 무궁화의 선호도가 낮은 이유로 응답자 절반 이상(54%)은 ‘흔히 볼 수 없음’을 꼽았다. 무궁화를 목격한 빈도 조사에서도 ‘자주 못보는 편’(36%)과 ‘거의 못 봄’(4%) 등 40%가 무궁화를 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주로 40~50대가 무궁화가 조성된 공원 등에서 봤다고 답했고, 20대는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전국 가로수 중 무궁화 비중 4.7%
실제로 일상 생활에서 무궁화를 보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2년 전국 가로수 1097만9512그루 중 무궁화는 52만302그루로 4.7%에 그쳤다. 벚나무와 왕벚나무는 163만5249 그루로 전체의 14.9%였다. 조경용 꽃으로도 선호도가 낮았다. 최근 5년 안에 재배를 목적으로 한 무궁화 꽃씨나 묘목 구입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들이 벚나무를 가로수로 선호하는 이유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좋은데다 여름철에는 잎이 무성해 가림막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무궁화는 묘목 특성상 가지가 줄기 하단부터 뻗어나와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무궁화를 가로수로 심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은 이미 2001년 무궁화를 가로수용 나무로 개량하고 시범용으로 식재했다. 신한나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사는 “무궁화는 전세계 300개의 품종이 있고, 그 중 절반이 우리나라산”이라며 “가로수용으로 이미 개발된 품종도 있지만, 현재 개발 중인 품종도 있다”고 말했다.
추위 잘 견디는 한반도 무궁화 각광
무궁화 나무는 1990년대 환경처(현 환경부)가 ‘환경 정화수’로 지정하기도 했다. 오염 물질을 흡수하는 능력이 높고, 소음 차단 기능 등을 인정 받아서다. 신 연구사는 “분홍색 꽃잎에 붉은 단심이 있는 홍단심계 외에도 꽃잎이 화려한 무궁화도 많다”며 “가로수와 관상용으로 널리 보급되도록 다양한 종의 무궁화를 개량하고 있다”고 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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