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키운 엄마의 성장기가 불편한 이유

윤일희 2023. 8. 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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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ENA 드라마 <남남>

[윤일희 기자]

드라마에서 주로 엄마는 무성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성애적 욕망이 없는 대신 엄마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 마치 그렇게 태어난 존재 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엄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ENA 드라마 <남남>이다.

드라마는 첫 화부터 자위하는 엄마 은미(전혜진 분)를 등장시켜 시청자를 당황시킨다. 게다 이 행위가 은밀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실에서 행해지다 딸에게 목격되지만, 엄마가 이를 그럴 수도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대응함으로써, 이 드라마가 엄마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낼 것임을 예고했다. 암시처럼 엄마는 쉰 살이 다 되도록 남자(연애) 없이 산 시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자신의 이성애적 욕망에 충실했다.

엄마의 거세되지 않은 욕망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분명 진일보했다. 서구의 드라마나 영화에는 이미 욕망을 좇아 가족을 떠나거나 심지어 딸의 남자를 가로채는 이상한(?) 엄마가 등장했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욕망하는 엄마는 타락한 존재로 손가락질 받아왔을 뿐, 충만한 성적 욕구를 누리며 살아가는 엄마로는 좀체 그려지지 않았다. 이는 드라마가 사회적 산물임을 증명하고 있는 셈인데, 이런 면에서 이제 등장하고 있는 욕망하는 엄마 캐릭터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엄마라고 무성적 존재가 아님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은미 캐릭터는 신선하다. 헌데 그가 왜 평생 그토록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획득하고 말겠다는 투지를 관철해왔는가를 지켜볼 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남자를 향한 은미의 끊임없는 도전은 정말 자연스런 본능이기만 한 걸까? 청소년기 딸 진희(수영 분)가 은미에게 의구심을 품은 것처럼, 그는 남자 없이 못 사는 그런 존재로 태어난 걸까?

이성애가 제도인 사회에서 남자 혹은 남편이 없는 여자는 어딘가 부족한 존재로 여겨진다. '한 부모' 가정이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는 여전히 혼자인 채의 엄마와 자식의 관계를 결여된 상태로 여긴다. '한 부모' 가정이라는 용어가 생기기 이전 이들은 '편모(偏母)' 가정이라 폄하되었다. 한 쪽이 떨어져 나간 가정이라는 차별은 그 나머지를 채워야만 '정상'이 된다는 억압을 드러낸다. 이성애 가족 모두 결코 잘 살아가고 있지 않지만, 이성애 가족의 정상성은 여전히 믿을 수 없을 만큼 공고하다.

은미가 그토록 남자와 연애를 좇은 무의식에 애정에 대한 본능적 갈구만이 아니라,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은 아니었을지 고민이 남는다. 어떤 섹슈얼리티도 진공 상태에서 배양되지 않는다. 이성애와 이성애 가족 이데올로기는 자신이 추구하는 감정 상태를 정상으로 여기도록 만들기에 충분히 강력하다.
 
 지니TV <남남> 스틸컷
ⓒ 지니TV
 
제도가 아닌 모녀 관계를 바란다

은미는 고등학교 시절 임신해 진희를 낳아 키웠다. 연애박사여도 피임엔 무지했던 탓이다. 고등학생에게 임신은 친밀한 가족관계에서도 난감한 사건일 텐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집을 나서면 오갈 데 없는 은미 처지로서는 그야말로 "겁나게 무서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의 출산과 양육을 보조한 것은 온 동네도 사회도 아니었고 고등학교 시절 절친했던 친구 미정(김혜은 분)과 그의 엄마였다. 은미에겐 정말 다행이었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행운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은미의 연령대로 미루어, 당시 '미혼모'인 은미가 사회적 지원에 힘입어 대학을 졸업하고 딸을 번듯하게 키워냈을 거라 추측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한 설명이 누락된 채 은미가 '미혼모'임에도 불구하고 씩씩히 인생을 개척해 물리치료사가 되어 딸을 잘 키웠다는 드라마적 설정은 복지 부재의 사회가 취할 판타지로는 염치가 없어 보인다.

물론 '미혼모'라고 해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없고, '한 부모' 가정이 대체로 불행하다는 사회적 편견을 재생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미혼모'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출산과 양육을 거뜬히 해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도 늘 충실해왔다는 설정 또한 미혼모 개인의 노력과 성취만을 보게 하는 우를 남긴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무책임은 슬며시 지우고, '봐라,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은미 같은 미혼모도 떳떳한 모성을 이루지 않느냐'고 재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은미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모성을 성취했다는 증거는 딸인 진희의 성실함으로 강력히 뒷받침된다. 진희는 보통 야무진 청년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금붕어 똥"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말 잘 듣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하는 엄마의 가사 분담에 적극 조력해 왔다. 공부도 살림도 척척해냈고 학비가 싼 경찰대에 진학해 싱글맘인 엄마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어찌 보면 은미의 그럭저럭 무탈한 삶은 친구의 조력과 엄마 손댈 일 없이 독립적으로 성장한 딸의 노력이 빚어낸 셈이다. 이런 면에서 이 드라마를 뒤집어 보면 딸이 키운 엄마의 성장기인 셈이다.

나는 이 세상 청년이 아닌 것 같은 진희의 노력에 조금 숨이 찼다. 만일 진희가 썩 괜찮은 청년이 아니라,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은둔형 청년이었다면, 이 드라마의 욕망하는 엄마는 비난의 대상의 되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분명 외피 상, 다른 형태의 모녀 서사를 꾸리고는 있지만, 결국 성공한 '한 부모' 가정의 전범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모델이 되기 위해서 이들 모녀관계는 짜증 나는 갈등과 구질구질한 역경을 참을만한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사람들이 인내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다툼과 고난만 필요한 것이다.

'징한' 모녀관계를 그리다

이에 비해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징한 모녀관계를 그린다. 엄마 노릇이 지겨운 엄마와 성인이 되어도 아직 덜 자란 딸은 같은 속옷을 공유해도 결코 친밀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욕구로 갈등과 싸움이 이어질 뿐, <남남>의 모녀처럼 싸우고 화해가기를 반복하지 못한다. 이런 모녀를 보는 것은 짜증난다. 이 영화의 지리멸렬한 모녀관계를 보고 '좋아요'를 누를 관객이 얼마나 될까?

이 영화가 잘못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판타지를 밀어내고 진실을 배치함으로써, 사람들이 기대하는 결정적 판타지, 갈등을 겪지만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리부트 되는 눈물의 모녀관계를 원하는 관객에게 외면당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같이 보았던 딸애가 영화에 비해 드라마의 훈훈한 모녀를 보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 것은 이 드라마의 의도가 적중했음을 의미한다. 자칫 피곤하고 마음의 부담이 될 수 있는 가난과 갈등과 상처의 모녀관계를 영리하게 피해가 결국, 모녀 관계란 이렇게 훈훈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환상을 심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물론 은미와 진희의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를 아끼는 '한 부모' 가정의 모녀관계는 이성애 정상 가족성이라는 전제에 대한 도전과 질문을 던지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막 나타난 진희 친부와의 로맨스가 제도 속으로 편입된다면, 은미의 성적 주체성은 결국 이성애 제도에 복무하고 만다. 또한 은미-진희 모녀의 너무나 매끄럽게 짜여진 갈등과 화해의 반복은 훈훈한 모녀관계로 비치기 위해 오히려 '남남' 사이에 유지되어야 하는 일정 정도의 거리감을 과하게 좁혀버린 느낌이 든다.

내 주변의 적지 않은 모녀는 척 들러붙은 천륜이 아니라, '남남' 처럼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때 오히려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어떤 경우 엄마와 자식처럼 불편한 관계도 없을 것이다. 낯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 것은 모성(이성애 가족)이라는 제도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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