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이라도 탔나, 중세시대로 온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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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31부터 6월5일까지 친구들과 두달여동안 얼레벌레 이탈리아를 자유로이 여행하며 겪은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 <편집자말>
[송진숙 기자]
▲ Modica Panorama에서 보는 전망 가운데 모디카의 두오모인 San Giorgio 성당이 보인다. |
ⓒ 송진숙 |
라구사에서 모디카까진 금방이었다. 기차로 불과 20여분 정도의 거리다. 모디카는 협곡 사이에 있고 오래된 지역인 언덕 위의 알타 지구, 지진 이후 재건된 아래지역인 바싸 지구로 나눈다. 협곡 양쪽에 전망대가 있다. Pizzo View Point와 Modica Panorama이다.
한쪽만 간다면 모디카의 반만 보는 셈일 것이니 양쪽을 다 가봐야겠다. 우리는 우선 파노라마 지점을 찾아서 올라갔다. 큰길이 있는 아랫마을에서 윗마을까지 가는 골목들은 긴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래된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은 마치 미로 속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전망대 가는 길
골목 구경을 하며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앞에 가던 손수레가 오르막길에서 패인 바닥에 바퀴가 끼어 아무리 끌어도 손수레가 빠져나가질 못한다. 바퀴가 나올 듯하면서도 결국은 다시 미끄러져 내려와 빠지곤 했다. 수레에는 정원 가꾸기에 필요한 거름과 큰 화분 두 개가 실려 있었다.
안타까운 나머지 얼른 가서 손을 보탰다. 드디어 수레는 홈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고맙다며 화분에 달려 있는 작은 열매 하나를 따주며 먹어보란다. '만다리노 치네스'라고 했다. 금귤과 비슷해 보이는데 맛은 더 달다.
또 하나의 화분 식물에는 마치 거대 레몬과 유자의 중간쯤 같다. 이름을 물었더니 '레몬 세레토'라고 알려준다. 화분에 떨어진 것을 한 개 주면서 샐러드에 넣어먹으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사람들이 소박하고 친절해서 좋다.
"왜? 마피아 있을까 봐?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네. 그런 거 없어. 오히려 이탈리아 본토보다 치안이 더 안전해. 사람들도 엄청 친절하고."
얼마 전 친구랑 주고받았던 대화가 생각났다. 풍경도 예쁘지만 현지인들과 짧은 대화나마 얘기할 수 있는 이런 순간이 여행을 풍요롭게 해 준다. 레몬 선물까지 받고 나니 기분이 한층 더 좋아진다. 전망대 '모디카 파노라마'가 좀 더 가까워졌다. 근처 마트에서 허기를 달래줄 빵과 치즈, 오이 등을 샀다. 음료로 스파클링와인도 한 병 샀다.
▲ Modica Panorama Modica Panorama까지 자전거로 올라온 사람들 |
ⓒ 송진숙 |
전망대에 도착했다. 여러 명의 자전거 라이더들이 쉬고 있었다. 이 높은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걸어 올라오는 것도 숨이 찬데... 마침 앞에는 몇 개의 벤치가 있다. 한눈에 건너편 지구가 훤히 보인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우리는 스파클링 와인을 마셨다. 따사로운 봄볕아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 모디카의 길 Pizzo View Point로 올라가는 길 |
ⓒ 송진숙 |
협곡 양쪽 편에 전망대가 있기 때문에 반대편에 가서 보는 전망도 궁금하다. 협곡이라서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Pizzo View Point라는 전망대까지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가야 한다. 낡고 빛바랜 기와지붕의 노란색 건물들이 레고블록을 쌓은 것처럼 빈틈없이 붙어 있다.
비현실적이다. 내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다. 가파른 비탈에 이렇게 많은 집들을 어떻게 지을 수 있었을까! 오후의 볕이 들어오는 골목길은 따사롭고 정겹다. 길을 잃어도 좋을 것 같다. 아까 반대편에서 봤던 San giorgio 성당이 전망대로 가는 중간쯤에 있다.
▲ San Giorgio 성당 아직 이른 봄이라 꽃들은 피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분홍색은 박태기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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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다. 250여 개나 되는 긴 계단 위에 세워진 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백미를 보여 준다. 우아한 건물도 멋지지만 높고 화려한 계단이 특히 아름답다.
일반적인 계단과는 달리 초입에는 원형의 정원이 있고 계단이 정원 주변을 둘러싸고 이어지다가 원의 윗부분에 넓고 높은 계단을 세우고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둥근 정원에는 다양한 꽃과 수목들이 이제 잎을 틔우고 있다.
▲ San Giorgio성당 옆 계단 박태기꽃아래서의 점심 |
ⓒ 송진숙 |
이 성당을 왜 아름답다고 극찬을 하는지 알 것도 같다. 경사가 심한 언덕에 평지의 정원은 만들 수 없으니 언덕의 경사면을 이용해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성당의 아름다움을 끌어올린 설계자의 아이디어에 감탄을 한다.
▲ San Pietro 성당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성당, 측면에 12사동의 동상이 있다. |
ⓒ 송진숙 |
San Giorgio 대성당을 비롯하여 바로크 시대의 교회, 수녀원, 수도원 등 약 100여 개의 교회가 있다. 지진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건물들이 화려한 바로크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니... 이곳 모디카는 교회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놀랍지만 대부분의 교회 앞에 광장이 있는 것과 달리 광장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 San Giorgio 성당 옆 카페 'Bar del Duo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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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은 닫혀서 못 들어가고 성당 옆 카페 'Bar del Duomo'에 앉아 맥주를 시켜놓고 현지인처럼 여유를 가져본다. 전망대까지 다 가지 않았는데도 맞은편 도심의 전경이 훤히 보인다.
▲ 모디카 도심 Pizzo View Point에서 보는 전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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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ica Dolceria Bonajuto' 1880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는 초콜릿 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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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150년 가까이 되었다는 초콜릿 가게 Antica Dolceria Bonajuto에 들어갔다. 가게는 크지 않지만 손님들로 북적였다. 초콜릿은 모디카의 특산품이다. 의아했다. 카카오가 생산될 것 같지 않은 이 산골에서 어떻게 초콜릿이 유명해졌을까?
과거 스페인이 신대륙에 상륙했을 때 코코아 콩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새로운 식품을 수입했다. 16세기 당시 시칠리아 왕국에서 가장 크고 부유했던 지역인 모디카에서 초콜릿 가공을 한 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가공법은 코코아 콩을 갈아서 다른 향신료와 섞은 다음 '메타테'라는 특수한 돌에 문질러 만들었던 것이다.
▲ 'Antica Dolceria Bonajuto' 다양한 초콜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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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tica Dolceria Bonajuto' 다양한 디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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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에는 시나몬맛, 레몬맛, 생강맛, 소금맛, 하얀 후추맛 등 다양한 맛의 초콜릿이 진열되어 있다. 시식용이 떨어져서 초콜릿 맛을 볼 수 없으니 더욱더 맛이 궁금하다. 여러 가지 맛을 사보고 싶지만 아직 여행 일정은 많이 남았고 더운 날씨에 녹을까 염려되어 많이 살 수가 없다.
직원의 설명을 듣고, 익숙한 맛 아몬드초콜릿만 샀다. 하지만 생강맛 나는 초콜릿, 후추맛 나는 초콜릿이 궁금하다. 어떤 맛일까? 궁금함을 안고 라구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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