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짓말을 잘 쓰는구나"…여행 안 좋아하는 소설가 여행기
2022년 영국의 부커상 국제 부문 롱리스트에 오르며 화제가 된 MZ 작가 박상영(35)이 에세이집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인플루엔셜)을 최근 출간했다. 뉴욕·런던·강릉·광주 등을 누빈 여행의 기록을 엮은 책이다. 비일상의 상태(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혼란과 불편, 그러다가 가끔 찾아오는 환희의 순간을 유머러스한 톤으로 그렸다. "환부를 꿰뚫어 고통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그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라는 제목에서 잘 나가는 MZ 작가가 영감을 얻기 위해 이국적 휴양지로 떠나는 우아한 그림이 그려지지만, 책 내용은 영 딴판이다. 서울살이에서 도피하듯 떠난 첫 유럽 배낭여행에서 그는 "찢어지는 듯한 복통을 느끼며 만 원이 아까워 들지 않은 여행자 보험에 대해 생각"하고 사고 치고 떠난 뉴욕에서는 친구의 옥탑방에서 누텔라 두 통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칩거한다. 가파도의 예술인 숙소에서는 벌레와의 전쟁을 치르다 친구들이 찾아온 날 지독한 감기에 걸린다. 여행 에세이집임에도 작가 소개에는 대놓고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다.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라는 제목과는 정반대로 일과 관련한 이야기도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는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매년 한 권씩 꾸준히 책을 냈다. 소설집『대도시의 사랑법』은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2023년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젊은작가상 대상, 허균문학작가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사이 전국 팔도를 누비며 강연을 했고 각종 방송에도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책 제목이 『(한 번도 갖지 못한)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으로 읽히는 이유다.
박상영 작가는 지금껏 "누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욕구 때문에 책을 써왔다"고 했다. "이번 에세이가 여섯 번째 책이고 이제는 어느 정도 내 얘기는 많이 했다고 느낀다. 앞으로는 사회적인 이야기로 외연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싶다는 말이 퀴어 문학을 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는 퀴어 문학을 쓰지만 "한(恨)이 맺혀 글을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누군가 내 얘기를 재미있게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건 한의 문학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면서다. 그의 "내 얘기"에 자전적 색채가 강해서일까. 독자들로부터 "내 친구 얘기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최근 영국에서 만난 현지 독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 너무 신기해요. 독자들이 내 소설을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느낀다는 점이 무척 기쁩니다."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부커상 국제 부문 후보에 오르며 큰 주목을 받았지만, 자전적 색채 때문에 '일기장 소설'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친구 얘기, 친구의 친구 얘기를 가져다 쓴, 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한 소설이라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박상영은 "내 소설 속 캐릭터와 설정은 완전한 허구"라고 했다. "'내가 소설을 너무 잘 쓴 탓에 픽션이 논픽션처럼 느껴지나 보다', '내가 정말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잘 썼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걸 '핍진하다'고 하잖아요."
박상영은 '폭망한 휴일담'이 웃음을 자아내는 산문집을 읽으며 "독자들이 잘 쉴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많은 현대인처럼 나도 적절하게 쉬는 것을 잘 못 합니다. 지금에서야 '초보 휴식러'로서 쉬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들도 내 책을 읽으며 불안한 일상에 쉼표를 찍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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