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만에 정치인 또 총맞고 숨졌다…에콰도르 대선 무슨일
남미 에콰도르에서 야당의 대선 후보가 피살된 지 닷새 만에 유력 정치인이 또 총에 맞아 사망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연달아 피살되자, 전문가들은 “올해 코카인 생산량이 역대 최고치에 달하면서, 코카인 불법거래의 거점으로 떠오른 에콰도르에 온갖 범죄 조직이 모여들어 치안이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했다.
14일(현지시간) 현지 매체 엘파이스와 엘우니베르소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시민혁명운동’ 소속인 루이사 곤살레스(45) 후보를 돕던 정치인 페드로 브리오네스가 에스메랄다스에 위치한 자신의 집 근처 공원에서 오토바이를 탄 2명의 괴한이 쏜 총에 맞았다. 브리오네스는 사고 직후 인근 델피나 토레스 데 콘차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목 왼쪽에 박힌 두발의 총알로 인해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오토바이 괴한 2명이 총격
곤살레스 후보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에콰도르는 가장 피비린내 나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무능한 정부와 마피아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한 국가가 국민을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이며, 이제 변화가 시급하다”고 썼다. 파올라 카베사스 키스티요 전 에스메랄다스 주지사는 “오늘 두 발의 총알이 브리오네스의 삶을 끝냈다”면서 “우리의 영혼을 무너뜨리는 이 같은 상실을 언제까지 겪어야 하나”라고 토로했다.
시민혁명운동을 이끌고 있는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2007∼2017년 재임)은 “그들은 에스메랄다스에서 우리의 또 다른 동료를 살해했다. 이제 (살인은)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사망한 브리오네스는 코레아 전 대통령의 지인으로, 에스메랄다스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해 왔다. 8명의 대선 후보 중 줄곧 선두를 지켜온 곤살레스 후보의 선거 운동을 지원해왔다.
이번 사건은 건설운동 소속 대선 후보인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후보가 지난 9일 총격으로 피살된 지 닷새 만에 벌어지며 에콰도르 전역에 충격을 안겼다. BBC는 “최근까지도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안전한 오아시스 같은 나라였던 에콰도르가, 민주적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이 줄줄이 총살당하는 나라로 갑작스럽게 변모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1일엔 총선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 에스테파니 푸엔테가 자신의 차 안에 있다가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남자의 총격을 받고 겨우 탈출해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다.
코카인 붐에 사상 최악 치안 위기
현재 에콰도르는 역사상 최악의 치안 위기를 겪고 있다고 엘파이스는 전했다. 2018년 10만 명 당 5.8명에 불과했던 살인율은 지난해 10만 명 당 26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최근 몇 주 동안 폭발물을 이용한 폭행과 공격은 물론 총격 사건이 급증했다. 수도 키토를 포함해 에콰도르 최대 도시 과야킬과 항구 지역인 에스메랄다스에 폭력 사건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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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인 밀수의 환승지 에콰도르
에콰도르는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인 콜롬비아와 페루 사이에 끼어있다. 특히 미국·유럽으로 연결된 에콰도르의 항구는 코카인 밀거래의 주요 환승 지점으로 활용되고, 달러화된 에콰도르의 경제는 돈세탁까지 가능해 마약거래상들에게 에콰도르가 전략적인 마약 수송국으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멕시코 카르텔, 브라질 도시 갱단, 알마니아 마피아 조직 등 온갖 마약 조직이 에콰도르의 범죄 집단과 연합해 이 지역에서 치안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력과 마약 조직 결탁도
특히 에콰도르 경찰·군대·사법부·행정부 등 기득권층이 마약 조직과 결탁하는 등 부패가 심화되면서 치안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해 미국은 마약 밀매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에콰도르 국가보안군 고위 관료와 여러 명의 판사·변호사의 비자를 철회한 바 있다. 미주협의회와 아메리카 소사이어티의 워싱턴 사무소 부회장인 에릭 판슨워스는 “현재 에콰도르에서 많은 사람들이 뇌물 또는 총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마약 세력과 결탁해) 부패하거나, 그게 싫으면 살해당하는 것을 택하는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폭력 종식 위해 투표…대선 관심 촉발할 수도"
CNN은 정치인에 대한 일련의 피격 사건이 에콰도르 국민에게 대선에 대한 관심을 촉발할 수 있다고 봤다. 현재 유권자들은 정치인에 대한 환멸과 불신으로 선거에 무관심하며, 인구의 60% 정도가 아직까지 대선 후보자의 이름조차 모르는 상태다. 하지만 대선 후보와 관련 정치인이 연달아 암살되는 끔찍한 사건으로 다시 치안 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유권자들은 폭력을 종식시킬 목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리자라조는 설명했다.
에콰도르 대선과 총선은 오는 20일 치러진다. 대선은 규정에 따라 투표에서 과반을 얻거나, 40% 이상을 득표하고 2위보다 10%포인트 앞선 후보가 나오면 당선이 확정된다. 그렇지 않으면 1, 2위 후보가 결선 대결(10월 15일 예정)을 치른다. 당선자는 올 11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에콰도르를 통치하게 된다. 에콰도르 정치 분석가인 페드로 도노소는 “대선이 결선 투표까지 이어지는 것은 에콰도르를 더 큰 혼란과 분열로 몰고 갈 최악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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