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는 ‘태극(太極)’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경기 구리시가 광복절을 앞두고 지난 14일, 갈매동 복합청사 앞에 조성했던 ‘365일 태극기 거리’에 걸었던 태극기가 잘못 인쇄된 것으로 드러나 갑작스레 교체되는 해프닝이 일어나 시민들 사이에 잠시 논란이 일었다.
행사를 기획한 갈매동 주민센터의 실수는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단순한 실수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 특히 현 갈매동 동장은 몇 달 전까지 구리시의 홍보를 책임지던 행복소통담당관 자리에 있었기에 누구보다 행사나 홍보에 대해 잘 아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진행 과정에 확인이 미비했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실수를 확인한 즉시 발 빠르게 움직여 사태를 수습한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지난 2010년부터 구리시는 ‘태극기의 도시, 구리시’라는 홍보를 줄기차게 이어오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구리시와 태극기 사이의 연관성은 무엇이며 왜 태극기의 도시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었다.
오히려 작년 9월에는 구리시의회 양경애 의원이 구리시가 그동안 추진해온 ‘태극기의 도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1년에 수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거리의 태극기 배너 게양 외에 오히려 태극기 그림 그리기, 퍼포먼스, 다양한 이벤트 등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태극기 도시를 홍보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을 정도로 ‘태극기의 도시’라는 구호는 퇴색한 상태로 놓여 있었던 게 사실이다.
더욱 큰 문제는 ‘태극기’라는 깃발에만 매달렸지 ‘태극기’가 지니고 있는 철학적 의미나 상징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드러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기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철학적 의미가 깊은 것들은 별로 많지 않다. 일본의 국기는 태양이 그려진 모습이고 중국과 미국의 국기는 별 모양이 끝이다. 캐나다 국기는 단풍잎이며 독일과 프랑스의 국기는 색깔만 구분된 것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는 매우 철학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중앙에 태극(太極) 문양이 있고 네 귀퉁이에는 하늘(乾)과 땅(坤), 물(坎)과 불(離)을 상징하는 ‘건곤감리’ 모양이 그려져 있다. 이토록 복잡한 국기는 아마도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 의미를 따지고 들어가면 더욱 복잡하다.
우선 ‘태극’과 ‘건곤감리’는 모두 《주역(周易)》을 근거로 하는 상징들이다. ‘태극’을 학문적으로 풀이한 송나라의 학자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살펴보자.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우주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텅 비어 있는 상태, 다시 말하면 끝이 없는 ‘무극(無極)’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을 ‘태극(太極)’이라고 말한다(無極而太極). 음(陰)과 양(陽)은 태극(太極)에서 나온 것이며, 태극(太極)의 뿌리는 무극(無極)이다.”
아주 복잡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태극은 우주를 탄생시킨 기본 개념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의미를 내포한 국기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주돈이가 언급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에 대한 해석도 매우 다양하다. 위에서는 그저 ‘무극이 태극이다’라고 거칠게 말했지만, 이것도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무한대로 확장되는 큰 네모에는 모서리가 없고(大方無隅) 무한대로 확장하는 큰 그릇은 채워지지 않으며(大器晩成) 엄청나게 큰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고(大音希成) 엄청나게 큰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大象無形). 올바른 이치는 이처럼 은밀하여 무엇이라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道隱無名).”의 형식을 빌려온다면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에 대한 해석은 “무한대로 계속 커지는 커다란 것에는 끄트머리가 없다”가 된다.
마치 계속 팽창하고 있는 우주에 대한 과학자들의 설명과 비슷하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지름은 940억 광년으로 유한하지만, 그 끝은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가더라도 그 끝에 닿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왜? 우주라는 시공간은 거대한 스케일로 휘어져 있어 중심이나 가장자리란 게 따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처럼 우리의 ‘태극기’는 우주의 신비를 담고 있다. 크고 광대하다. 이를 네모난 헝겊에 인쇄된 단순한 깃발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우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구리시 갈매동의 태극기 관련 해프닝을 보며 단순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상징인 ‘태극’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뜻도 모르면서 ‘태극기를 다는 게 애국’이라고 말만 앞세우지 말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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