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㉜] 카페로 피서를 가보니…
칠말팔초(七末八初). 많은 사람이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나는 한여름이다. 특히 시원한 바닷가나 계곡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아내와 나는 산기슭에 있는 농원으로 가면 시원할 것 같아 길을 잡았지만, 별반 다름이 없다.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내달렸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빵으로 군것질도 하고 옆자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판을 두드린다. 이만한 피서가 어디 있으랴.
온도계가 생긴 이래로 가장 뜨겁다는 올여름이다. 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에 양평농원으로 떠났지만, 많은 휴가 차량으로 평소보다 두 배나 더 걸렸다. 농원에서의 작업은 엄두도 못 낼 뿐 아니라, 집 안도 선풍기나 에어컨으로는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35도 불볕더위가 계속되니 야외활동이나 농작업을 자제하라는 안전안내문자가 계속 날아온다. 할 수 없어 점심을 위해 부근 막국수 집으로 갔다. 더운 날씨 탓인지 가게에는 벌써 손님들로 꽉 찼지만 기다려야 할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다. 시원한 막국수로 속을 식히고 제빵소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도 북적북적하다. 이웃한 막국수 집과 카페를 형제간에 운영하는 관계로 식사한 손님은 10% 할인해 주어, 들렀다 가는 사람이 많다. 본관은 매장이 넓고 맛있는 빵이 진열되어 손님으로 붐비지만, 별관은 별로 알려지지 않아 조용한 편이라 우리는 올 때마다 이곳을 이용한다. 젊은이들은 시끄럽더라도 전망 좋은 본관을 이용하고 별관은 대부분 중년 이상의 분들이 찾는 곳으로 네 개의 탁자로 꾸며진 아담한 공간이다.
커피와 빵을 구매 후 노트북을 펴 놓고 글을 쓰기 위해 출입문이 보이는 안쪽의 4인용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우리 부부밖에 없어 조용하여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칠십 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네 분과 젊은 여자 한 분이 커피와 음료를 들고 들어와 5인용 탁자에 자리를 잡는다. 한번 실내를 둘러보더니 거리낌 없이 평상시의 톤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 내용으로 보아 친척 간인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 젊은 남편들은 너무 고생이 많다며 소리를 높인다. 여자들이 맞벌이하는 것도 있지만 직장에서 퇴근하면 남자 역시 피곤할 텐데 허드렛일은 도맡아 한다며 애처로워한다. 그분들의 젊은 시절엔 대부분 전업주부로 지내며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을 것이다. 요즈음 자식 같은 남자들이 가사를 적극적으로 돕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으로 시기 반 걱정 반이 되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닐는지. 함께 온 젊은 여자는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다.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는 ‘왜 우리만 독박육아를 해야 하냐’며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에어컨 바람으로 추위가 느껴져 바깥에 나왔더니 숨이 턱턱 막히는 살인적인 더위다. 여름휴가의 절정기라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렛잇비’ ‘댄싱퀸’ ‘마이웨이’ 같은 올드 팝송이 은은히 흘러나와 더위를 잊은 심신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손님 연령대에 맞게 취향을 고려하여 팝송을 들려주니 프랑스에서 제빵 기술을 배워왔다는 젊은 주인이 미덥다. 다섯 명의 여자들이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덩치 큰 젊은 남자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아버지인 듯 보이는 중년 남자는 두 마리나 안고 들어오더니 8명 탁자에 자리를 잡는다. 강아지를 탁자 위에 놓다가 나를 의식했는지 의자에 앉힌다. ‘애견동반 카페가 아닌데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와도 괜찮은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본관에는 종업원들이 있어 눈치가 보이니까 별관으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조금 지나자 가족인 듯한 일행이 커피와 주스 다섯 잔을 들고 들어온다. 왠지 강아지에 눈길이 계속 간다. 안고 있다가 방석이 깔린 의자에 앉혀 놓기도 한다.
세 명이나 되는 아들딸들이 덩치도 크고 독립해서 살아야 할 연령대로 보이는 데다 강아지를 세 마리나 키우는 것도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닐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마 아들딸들이 한 마리씩 맡아서 키우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내 경험으로 보아 결국은 부모들이 관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젊은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세 살 정도의 아들을 데리고 들어와 5명 탁자에 둘러앉는다. 빵 한 접시와 냉커피 넉 잔에 꼬마는 딸기 주스다. 베이커리 카페다 보니 식사를 한 후에도 대부분 손님은 커피와 함께 빵을 즐긴다. 젊은 부부는 30대이고, 부모도 육십 대 초반처럼 보인다. 꼬마는 커다란 빵을 들고 한입씩 먹는다. 할머니는 손자 옆에 앉아 흐뭇하게 쳐다보며 손을 닦아주는 등 살뜰히 챙긴다. 젊은 남자가 뜨거운 물을 가져온다든지 심부름하는 것으로 보아 아들이고, 여자는 며느리인 것 같다. 대화가 별로 없는 조용한 가족이다. 특히 할아버지와 며느리는 거의 말이 없다. 빵을 썰어주고 먹는 모습을 보는 등 손자 중심으로 대화가 이어진다. 할머니는 글자를 알지도 못할 것 같은 세 살 손자에게 메뉴판을 읽어준다. 결혼도 잘 하지 않는 시대인데 손자까지 있으니 얼마나 뿌듯할까. 휴가를 받아 여행을 왔을 텐데 부모님을 모시고 온 것으로 보아 요즈음 보기 드문 효자인 듯하다. 반면에 시집 어른들과 함께 휴가온 것이 불만인지 며느리는 표정이 어둡고 말이 거의 없다. 할아버지는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간간이 대화 없이 커피잔만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남은 빵과 커피를 포장하기 위해 데스크로 들고 나간다.
문득 우리 팔 형제 모습이 떠오른다. 명절이나 행사 때 오랜만에 만나도 인사를 주고받고 나면 별반 말이 없다. 술도 먹지 않을뿐더러 흥이 없어 극히 한정적인 일상의 이야기만 주고받는다.
다섯 시가 지나자 우리 부부만 남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깥 모습은 열기가 좀 식은 듯하여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찜통 화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든다. 바깥의 불볕더위와는 무관하게 다양한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 할 즈음 농원으로 돌아왔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으로 시원함이 느껴진다. 폭염경보가 내릴 정도의 뜨거운 날씨에는 시원한 카페에서 책이나 노트북을 펴놓고 하루를 보내는 것도 알뜰한 피서이지 싶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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