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미국 작품에 치이고, 예산 삭감 위기"…벼랑 끝에 선 한국 애니의 절실함 [D:영화 뷰]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기획재정부가 2024년 예산에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애니메이션 종합지원사업 폐지 논의가 수면 위로 올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의 경우, 영진위와 콘텐츠진흥원이 중복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행정력 낭비라며 논의 이유를 밝혔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높은 수준의 기술과 비용, 시간이 동원된다.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오랜 시간 동안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발전시켜온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일본과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주목을 받았다. 또 자금과 투자 부족으로 제한적인 제작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환경도 열악했다.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은 물론, 환경 패턴의 변화로 인해 다양한 콘텐츠들과 경쟁하면서 발전을 거듭해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은 주목을 덜 받는 애니메이션은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으로 뒷받침 돼야 했다.
애니메이션 종합지원사업은 단편에서 장편으로 가는 가교 역할을 하는 중편 제작 지원도 규모 있는 지원금으로 많은 창작자가 관심을 가지고 지원했으며, 국내 외 영화제에서 성과들을 거두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칸 영화제’라고 불리는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태일이', '무녀도'가 특별상을 받는가 하면 '기기괴괴 성형수'는 코로나 시국에 개봉하면서도 독립예술영화 흥행 1위에 오르는 결과를 안겼다. 모두 영진위의 제작 지원을 통해 태어난 작품이다.
영진위의 애니메이션 종합지원사업은 업계와 오랜 시간 다양한 논의를 통해 초기 기획, 장편 제작 지원, 개봉지원사업을 통해 기획부터 제작까지 일관된 지원을 펼쳐오며 의미가 컸다. 여기에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어, 오히려 애니메이션 위상 재고와 문화 사업의 발전을 위한 논의들이 다시 이뤄져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 종합지원사업 폐지를 논의하는 건 애니메이션의 가능성과 확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대를 역행하는 방향인 셈이다.
연상호 감독을 비롯해 감독 애니메이션 감독 27일은 "거대 자본과 축적된 노하우를 앞세운 미국, 일본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가치를 만들고자 스스로 몸을 태워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국내 창작자들에게는 마지막 보루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과 같은 잔혹한 결정"이라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감독들은 문체부가 애니메이션 종합지원사업 폐지 이유로 들었던 행정력 낭비에 대해 "영진위의 총지원비 규모는 타국 기준 저예산 장편 애니메이션 한편조차 만들지 못할 만큼 작은 규모임에도, 이 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고자 체계와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창작 역량을 갖추기 위한 작지만 큰 씨앗을 심었고 올해만 해도 해외에서 단 한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조차 만들 수 없는 30억 원으로 17개의 씨앗을 심은 이 사업이 어디가 방만한지 묻고 싶다"고 되물었다.
앞서 7월에도 애니메이션 업계는 지원 예산 삭감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지원해 온 서울산업진흥원(SBA)이 관련 예산을 지난해 40억 원에서 올해 12억 5000만 원으로 줄였다. 이는 기존 단편 애니메이션(10편) 지원 사업을 비롯해 웹 애니메이션(10편) 지원 사업, 상업 애니메이션(1편) 제작 지원이 모두 끊길 위기를 뜻한다. 이에, 업계는 애니메이션 직접 지원 사업이 사실상 중단에 가까울 정도로 규모가 축소된 규모라고 한탄했다.
최유진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사무국장은 "제작 지원이 발판이 돼 상업이든 장편이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나가는데, 한국 애니메이션이 도약하는 시점에 지원 축소 결정이 나왔다는 점이 놀랍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에게 연이어 들려온 예산 축소 움직임은, 적극적으로 반발할 수밖에 없는 위험 신호다"라고 전했다.
올해 상반기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468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553만, 할리우드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65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에서 크게 히트했다. 특히 '엘리멘탈'은 상반기 '범죄도시2' 이후 가장 높은 관객수를 기록했다.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의 김수정 감독은 "저도 한국 극장가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는 것이 마음이 쓰리고, 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느낀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여건이라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여건이 따라주지 못한 것도 있고,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라면서 "하지만 한국에서도 앞으로 상황이 좋아지고, 애니메이터들이나 관계자들이 열심히 해주신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라고 다른 나라의 애니메이션 선전과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진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럼에도 희망을 걸 수 있었던 건 정부와 애니메이터 및 종사자들이 한국 애니메이션 발전이라는 목표가 같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한 사망 선고를 단호히 막겠다는 업계의 선언은 지켜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내가 성관계 거부하자…지적장애 딸 추행한 친부 '집행유예'
- 돌연 얼굴 드러낸 롤스로이스男 "내가 석방된 이유는…"
- 새로운 레퍼토리 풍년…대극장 뮤지컬 ‘초연’ 러시
- "어차피 보호처분이야"…'만취 여중생' 새벽 빨래방서 행패
- “덕분에 일할 맛 나요” 권영수 LG엔솔 부회장이 힘쓴 이곳
- 국민의힘, '특별감찰관 추천' 당론 추진…'김건희 특검법'은 재의요구 건의
- 한동훈, 당원게시판 논란에 첫 입장…"분열 조장할 필요 없다"
- 김혜경 벌금 150만원 선고…"범행 부인하고 책임 전가"
- ‘민희진 플랜’대로 흘러가나…뉴진스, 어도어에 내용증명 초강수 [D:이슈]
- ‘불공정위원회’ 이기흥 회장, 직무정지 카드 받고도 승인...정몽규 회장도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