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대책에도…‘엘피아’는 건재하다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8. 1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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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누락 사태까지…곪아 터진 ‘LH’

철근 누락 아파트 논란이 커지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LH 공공아파트 단지의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사태를 ‘이권 카르텔’로 규정하면서 LH의 고질병이었던 ‘전관예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LH 전관들의 영향력 행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LH 출신끼리 유착하는 ‘엘피아(LH와 마피아의 합성어)’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사달을 계기로 엘피아 카르텔이 해체될 수 있을까.

철근 누락 아파트 논란이 확산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관예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경남 진주혁신도시 LH 사옥. (LH 제공)
이한준 LH 사장 대국민 사과

‘반카르텔 공정 건설 본부’ 설치하기로

LH는 최근 이한준 사장 주재로 비상 대책 회의를 열고 무량판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사태 대책을 내놨다. 설계부터 심사, 계약, 시공, 감리 등 모든 과정에서 전관예우와 담합 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반(反)카르텔 공정 건설 추진 본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부실 공사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난 설계, 감리 업체는 입찰에서 배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도 도입한다. 앞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는 전관 직원 리스트를 제출해야 한다. 이한준 사장은 “LH 건설 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관 특혜 의혹을 불식하지 못하면 LH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 대책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조치만으로 LH 전관 출신들로 엮인 이권 카르텔을 없애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불과 2년 전인 2021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당시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사자 국토교통부는 “해체 수준의 혁신을 추진하겠다”며 LH 혁신 방안을 내놨다. 퇴직자가 현업 직원과 결탁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로 했다. 일례로 퇴직일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은 퇴직자가 영입되거나 대표로 있는 업체와 수의 계약 체결을 금지했다. LH 퇴직자 취업 제한 대상은 2급 이상 고위직 전체로 확대했다. 또한 설계 공모와 공사 입찰, 임대주택 매입 등을 결정하는 심사위원회를 꾸릴 때 LH 직원을 배제하고 퇴직자의 본사, 지역본부 출입을 금지했다.

그런데도 정작 실효성은 없었다. 정부는 LH 퇴직자의 유관 기업 취업 제한 대상을 ‘상임이사 이상’에서 ‘2급(부장급) 이상’으로 확대했지만, 규제를 피해 실무에 밝은 3급(차장급) 출신이 기업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실무를 담당하기보다 LH를 상대로 로비 창구 역할을 맡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장에서도 LH와 전관 사이의 유착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2021년 당시 정부는 퇴직 5년 미만 LH 출신이 취업하거나 창업한 기업은 LH와 수의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수의 계약만 못할 뿐 경쟁입찰 참여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LH 경쟁입찰은 심사 과정에서 ‘전관 기업’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의혹 탓에 투명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LH가 발주한 감리 사업 중 40%는 LH 퇴직자를 영입한 기업 12곳에서 따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부실시공으로 적발된 아파트 15곳 중 8곳의 감리 업무가 LH 출신이 영입된 업체에 돌아갔다.

심지어 지난해 1월 공사 중 붕괴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아파트 감리를 맡았던 A업체가 올 4월 지하주차장이 붕괴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는 물론이고, 정부 점검에서 적발된 단지 15곳 중 2곳의 감리까지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업체는 지난 5년간 LH에서 무려 428억원 규모의 감리 용역을 따냈다. 보강철근이 없는 채로 지어진 경기 파주시 파주 운정 A34블록 아파트 감리를 맡은 B업체는 지난해 LH에서 부장을 지낸 퇴직자가 재취업한 회사다. 이 업체는 최근 5년여간 LH가 발주한 용역을 32차례에 걸쳐 총 451억원어치 따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기자회견을 열고 LH 전관 특혜 의혹에 대한 감사를 청구한 배경이다. 경실련은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감사원은 LH 전관 인사 특혜 의혹에 대해 발주부터 시공 단계까지 철저히 감사하라”고 주장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LH 출신 전관들이 담합해 일감을 나눠 먹는 것은 오랜 관행”이라며 “아무리 정부가 LH 규제를 강화해도 전관예우, 이권 카르텔을 막기는 만만찮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LH 혁신하려면

과감한 조직 개편, 감리 제도 개선을

업계에는 LH 덩치가 커진 데다 주택 사업 관련 기능을 독점하면서 전관 특혜 등 각종 구습이 끊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LH는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통합해 만들어진 거대 공기업이다. 정부가 1980~1990년대 당시 주택 200만가구 건설 등 대규모 택지 개발, 신도시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면서 두 기업 덩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제대로 된 구조조정 없이 2009년 양 사를 물리적으로 통합했다. 이후 공공택지 조성부터 주택 건설, 분양, 임대, 관리까지 전 과정을 독점하면서 연간 10조원 규모 공사, 용역을 발주하는 역할을 해왔다. 총자산 213조원에 직원 수만 8885명에 달하는 ‘공룡 조직’으로 커지면서 건설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그만큼 다른 공공기관보다 높은 도덕성이 필요하지만 이에 걸맞은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논란이 커지자 정치권과 정부가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건설 이권 카르텔에 대한 직권조사, 국정조사까지 추진하기로 했지만 이 또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땅 투기 사태 이후 해체 수준의 개혁을 공언하고도 이를 사실상 방치한 정부가 총대를 메야 한다고 주문한다. LH 이권 카르텔을 없애려면 LH 전관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아예 LH 출신 전관이 없는 기업 위주로 공공주택 사업을 추진하는 등 파격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LH 핵심 기능을 다른 공기업으로 넘겨 역할을 축소시키거나 재취업 제한 대상을 확대하는 등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쏟아진다.

이참에 설계 시공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는 감리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눈길을 끈다.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설계도서대로 시공되는지 확인하고 품질, 공사, 안전관리 등을 지도, 감독하는 감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공 건설의 경우 LH 등 발주처가 감리 회사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감리 업체들이 영업을 위해 LH 전관을 영입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LH 발주 공사의 경우 감리 업체를 LH가 아닌 지자체가 선정하도록 해 전관예우를 끊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설계자가 직접 감리 역할을 맡고 공사 과정 전반에 참여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설계자가 설계 이후 공사 과정에 참여하지 못해 시공이 애초 설계와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처럼 설계상 감리를 강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나서서 LH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엘피아’ 근절 방안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외부 전문 컨설팅 업체를 통해 LH 핵심 업무를 파악하고, 문제점이 나타날 소지가 큰 조직을 과감히 축소하거나 개편해야 한다. 업무 결과에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가 철저히 책임지고 그에 따라 냉정하게 평가하는 기준도 마련해야 할 때다.” 한태욱 전 동양미래대 경영학부 교수 의견은 눈길을 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2호 (2023.08.16~2023.08.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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