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절해의 외딴섬도 이야기가 필요했다

이종길 2023. 8. 15. 12: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더 문' 김재국 센터장 役 설경구
죄의식 사로잡히는 과정 간소화 어려움
前史, 비극으로 끝난 아폴로 1호서 엿보여
"구원 바란 배역 아냐. 자기 고백에서조차…"

영화 '더 문'에서 나로 우주센터는 5년 전 비극을 겪었다. 달을 향해 날아오른 나래호가 공중 폭발로 산산이 부서졌다. 김재국(설경구) 센터장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남은 인생을 괴로움 속에서 지낸다. 김용화 감독은 일련의 과정을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플래시백 등으로 간소화한다. 그렇다고 우주에 홀로 남겨진 황선우(도경수) 대원에게 골몰하지도 않는다. 두 인물의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맞물릴 리 만무하다.

파생되는 부담은 고스란히 배우에게 돌아간다. 설경구는 외로움과 무기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절해의 외딴섬 같이 연기해 부재한 전사(前史)의 간극을 메우려 애쓴다. 그는 "얼굴이 고독과 적막으로 가득 차길 바랐다"고 말했다. "소백산관측소 연구원 한별(홍승희)이나 미국항공우주국(NASA) 유인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 윤문영(김희애) 등과 갈등이 해결되어도 꺾일 수 없는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황선우 대원과의 관계에서도…. 마무리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복잡한 감정의 실체는 '더 문'보다 비극으로 끝난 아폴로 1호에서 엿볼 수 있다. 거스 그리섬과 에드 화이트, 로저 채피는 NASA가 1967년 2월 21일 발사를 준비하던 우주선은 물론 시뮬레이터 훈련 등을 함께한 사이다. 얼핏 보기에 조종은 수월해 보였다. NASA와 하도급 업체들이 지금껏 제작한 우주선 전체를 통틀어 가장 튼튼하고 우수하다고 홍보해온 까닭이다.

실상은 판이했다. 비행사 시각에서 아폴로 1호는 되는대로 만든 기계였다. 다루기 까다롭고 고장도 쉽게 났다. 조금만 뭘 해보려고 하면 망가지기 일쑤였다. 통신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거나 계기판이 먹통이 되는 것도 모자라 생명유지 장치까지 고장이 나 자주 훈련이 중단됐다. 하나같이 우주에서 벌어지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중대한 문제들이었다. 수리는 대체로 얼렁뚱땅 마무리됐다. 정석대로라면 잘못된 시스템을 뜯어내고 다시 설계해 설치해야 했다. 하지만 앞서 고쳐놓은 부분을 다시 손보거나 덧붙이는 수준에서 끝나버렸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70년이 오기 전에 우주 비행사를 달로 보내겠다고 천명한 탓에 올바른 해결 과정을 거칠 수 없었다.

반복되는 고장에 진절머리가 난 그리섬은 기술자들에게 따져 물었다. 그들을 관리하는 윗선과 NASA 책임자들에게도 항의했다. 그러나 비행을 유일하게 훈련할 수 있던 아폴로 시뮬레이터 상태조차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섬은 답답한 마음에 레몬 하나를 우주선 위에 올려놓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레몬은 불량품, 결함이 있는 물건을 가리킨다.

빡빡한 일정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머큐니 호와 제미니 호를 제작한 맥도넬 에어크래프트는 마지막 제미니 호가 지구에 돌아오기 한참 전부터 아폴로 1호를 만들었다. 일손 부족으로 전력을 기울일 수는 없었다. 1960년부터 쉬지 않고 일을 해왔던 터라 제미니 호와 아폴로 호의 생산 라인을 동시에 운영하기 어려웠다. NASA가 계획한 일정대로라면 1966년 말 발사된 제미니 12호와 이듬해 2월 발사가 예정된 아폴로 1호의 제작 사이에 주어진 시간은 고작 석 달이었다.

같은 업체에 계속 일감이 주어진 환경도 문제시됐다. 우주 개발은 도로나 댐 건설 같은 공공사업이다. NASA는 의회에서 왜 맥도넬 에어크래프트와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했다. 설득에 실패한 이들은 일감을 노스 아메리칸 항공에 줘야 했다. 노스 아메리칸 항공은 생산 과정 전 단계에서 안전보다 속도를 우선시했다. 영화 '아폴로 13'의 원작자 제프리 클루거는 저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 아폴로 8'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노스 아메리칸 항공의 엔지니어 중 다수가 군에서 '블랙 프로그램'이라고 명명한 특정 사업에 참여하면서 항공기에 관한 경험을 쌓았는데, 이 프로그램의 주된 임무는 위성, 미사일 등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물론 이 일도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고 깊은 인내를 요구하지만, 탑승자의 생존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 그저 격납고에 있다가 날아올라 정해진 곳에서 터지면 그만이었다."

NASA는 갖가지 문제를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했다. 오히려 케네디 대통령과 약속한 달 탐사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최대한 일정을 서둘러야 했다. 그 무렵 미국 연방의회에는 베트남 전쟁에 돈을 쏟아붓는 마당에 달 탐사는 낭비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NASA는 당장 비행을 시작하거나 완벽한 우주선이 나올 때까지 비행을 중단하고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재국 센터장은 비슷한 갈등 속에서 전자를 택했다. 설경구는 "(영화에서 설명되지 않지만) 정부의 압박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확인하고도 암묵적으로 나래호 발사에 동의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을 것"이라며 "운명적인 무기력과 비참함 속에서 용서를 구하는 용기가 표현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촬영이 끝나는 순간에도 웃을 수 없었다. 근본적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애초 구원을 바란 배역이 아니다. 비참한 자기 고백에서조차…. 달랠 수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이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