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치료제, 인지기능 저하속도 낮춘다
평소 자주 쓰던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휴대전화를 어디 두었는지 몰라 헤매는 일을 겪으면 사람들은 “치매 아니냐”는 걱정을 하게 된다. 치매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뇌에 병적 노화가 일어나며 나타나는데 질환이 진행되면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인지기능 감소로 일상 생활이 어려워진다. 치매는 발생 기전이 불명확하고,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더군다나 치매가 발병하면 환자 본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활 환경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돼 최악의 질환 중 하나로 불린다.
하지만 치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조만간 올지 모른다. 치매 주원인인 알츠하이머 진행을 늦추는 치료제가 최근 여럿 등장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치매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치매 인구 급증… 전 세계, 치매와의 전쟁 선포
전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는 증가 추세다. 국제 알츠하이머협회는 2020년 기준 5500만명 수준인 알츠하이머 환자가 2030년 7800만명, 2050년에는 다시 2배에 가까운 1억39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고령화가 원인이다.
선진국은 치매 정복을 위한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왔다. 미국은 1992년 알츠하이머 질병 및 관련 연구법을 제정했고, 2011년부터는 국가 사업으로 알츠하이머 약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도 2009년 국가 치매 전략을 발표하고 수억 파운드에 달하는 금액을 치매 관련 연구·개발에 투입했다. 일본은 ‘신 오렌지 플랜’이라는 정책을 통해 치매 퇴치 신약 개발을 추진 중이다.
제약·바이오 업계도 신약 개발에 도전했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라이릴리, 독일 머크 등은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치료제는커녕 치매 원인을 밝혀내는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까지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알츠하이머 유발 원인으로 추정하는 정도다.
치매 치료제가 처음 등장한 건 2021년이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함께 개발한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이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치매 치료제 승인을 받았지만 상용화에는 실패했다. 임상에서 충분한 효능을 입증하지 못한 데다 뇌졸중 등 부작용 우려가 있다는 점이 한계로 작용했다. 비싼 가격도 발목을 잡았다. FDA는 뇌부종 발생과 관련한 발작 위험 가능성을 지적하며 제품 라벨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하라고 명령했다.
레켐비·도마네맙 등장… 게임체인저 되나
첫 번째 치료제가 사실상 실패로 끝났지만 치매 신약 개발을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지난달 바이오젠과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미국 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치매 치료가 재조명을 받았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 환자 1795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투약 18개월 후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27%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기억력, 문제 해결 등 인지 능력을 평가하는 18점 만점 인지 척도에서도 위약(가짜 약) 투약 대조군보다 점수 하락폭이 0.5점 낮았다.
여기에 일라이릴리의 도나네맙이 등장하면서 치매 극복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일라이릴리는 최근 임상 3상 시험 전체 데이터를 발표했는데, 1736명을 대상으로 76주간 실험한 결과 도나네맙 투여 환자의 인지력 저하 속도가 위약 투여 환자보다 35% 늦춰졌다. 특히 경증 참가자 인지력 저하를 60% 늦추는 걸로 나타났다.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두 치료제 모두 알츠하이머 환자 뇌에 쌓이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다. 레켐비는 아밀로이드의 응집을 막고, 도나네맙은 아밀로이드 물질이 응집돼 덩어리를 이룬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제거하는 효과를 낸다. 전문가들은 두 약물의 등장이 치매 극복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영국 알츠하이머학회 연구장인 리차드 오클리 박사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수십 년간 긍정적 결과가 없던 상황에서 두 물질이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을 보여줬다”며 “알츠하이머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있다. 안전성이 관건이다. 레켐비는 뇌부종 등 부작용 발생률이 아두헬름(40%)에 비해 낮지만 투약자의 13%가 뇌부종 또는 뇌출혈을 겪었다. 도나네맙은 투약환자 24%가 뇌출혈 또는 뇌부종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높은 가격도 투약을 원하는 이들에게 부담이다. 레켐비는 연간 2만6500달러(약 3500만원) 수준이다. 신약 실험을 진행 중인 약물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미국 제약사 바이오비의 NE3107, 프랑스 세포치료제 개발사 AB사이언스의 마시티닙 등이 3상 평가 단계에 있다. 바이오젠의 초기 치매 치료제 BIBO90, 미국 롱에버론의 로메셀-B 등은 2상 시험을 거치고 있다.
국내 치매 치료 연구 한창
국내에서도 치매 치료 연구가 한창이다. 대표적으로 아리바이오, 엔케이맥스 등이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아리바이오는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경구용 치매 치료제 후보물질 AR1001의 임상 3상 시험을 시작했다. 10년 이상 치료제 연구에 매진한 끝에 막바지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아리바이오가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세계 최초로 경구용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세포치료제 개발사 엔케이맥스는 최근 미국 알츠하이머학회 국제 콘퍼런스에서 자사 후보 치료제 ‘SNK01’의 임상 1상 중간평가 결과를 공개하며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엔케이맥스의 미국 자회사 엔케이바이오텍은 알츠하이머 환자 10명을 저용량, 중간용량, 고용량 투여군으로 나눠 3주마다 한 차례씩 모두 4차례 SNK01을 투여했다. 인지 능력 평가 등 지표를 확인한 결과 모든 항목이 개선됐다고 한다. 신약 개발 전문 바이오기업 젬백스앤카엘도 알츠하이머 치료제 ‘GV1001’에 대한 국내 임상 3상과 글로벌 임상 2상(미국과 유럽 7개국)을 진행 중이다.
국가 차원의 지원도 확대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제4차 뇌연구 촉진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2027년까지 뇌 산업 분야에서 기업가치 1조원 규모의 전문 기업을 10곳 창출하고, 치매 등 뇌질환 치료제 2종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업계 관계자는 “치매 치료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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