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는 만들어지는가, 태어나는가

김성호 2023. 8. 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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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24] <케빈에 대하여>

[김성호 기자]

 
▲ 케빈에 대하여 포스터
ⓒ 티캐스트
 
묻지마 범죄와 그 모방범죄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혹자는 묻지마 범죄란 용어가 범죄의 동기를 경시하게 한다고도 하지만, 적지 않은 범죄로부터 뚜렷한 동기가 없음을 발견하는 막막함이 이 같은 용어의 시작이었음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이해로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은 때로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그 공포를 상상조차 하지 못할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케빈에 대하여>가 주목하는 것이다.

영화는 미국 어느 가정을 비춘다. 유명한 여행작가 에바 카차도리안(틸다 스윈튼 분)이 아들 케빈(제스퍼 뉴웰, 에즈라 밀러 분)을 낳아 기르는 과정이 극의 절반쯤을 이룬다 해도 좋다.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는 일, 보통이라면 마음 따뜻한 가족드라마가 될 법도 하지만 에바의 이야기는 미스터리며 스릴러로 만들어졌다. 마침내 일어나는 파국이 스릴러를, 끝끝내 드러나지 않는 동기가 미스터리를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 원인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흔히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어머니를 따르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스러움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고 아이가 어머니를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세상에는 언제나 예외가 존재하는 것이다.
  
▲ 케빈에 대하여 스틸컷
ⓒ 티캐스트
 
온 마을이 따돌리는 여자

극은 현재와 과거 시점을 교차편집하며 전개된다. 에바의 현재는 그야말로 절망이다. 뚜렷한 직업도 가족도 없는 그녀에게 주변은 가혹하기만 하다. 아침이면 집과 차에 붉은 페인트가 끼얹어져 있고, 길을 걷던 중에 이웃에게 따귀를 맞기도 한다. 에바가 마트에서 한 여성을 보고 황급히 자리를 피한 날이 있었다. 에바는 계산대에 와서야 제가 보고 피한 이가 카트에 담아둔 계란을 모두 깨버렸음을 알아차린다. 말하자면 그녀는 온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이유다. 그녀가 처음 이 마을에 이사를 왔을 때는 모든 게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그녀에겐 어린 아들과 저를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었다. 유일한 문제라면 아들 케빈이 다른 아이들과는 정말이지 달랐다는 점뿐이었다.

케빈은 남달랐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는 통에 엄마는 기진할 만큼 지치고는 했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도로공사하는 소음마저 휴식이 되어, 유모차를 끌고서 한참을 공사현장 곁에서 머무른 날까지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그도 잠시 뿐, 케빈은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에바는 통할 일 없는 관심을 거듭 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 케빈에 대하여 스틸컷
ⓒ 티캐스트
 
엄마를 괴롭히는 아이, 아이를 증오하는 엄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건만, 에바의 고생은 갈수록 심해진다. 케빈은 에바를 곤경에 빠뜨리는 게 유일한 목적이기라도 한 양 거듭하여 문제를 일으킨다. 배변을 가릴 나이가 지나서까지 기저귀에 똥을 싸지르고, 에바가 그걸 치우면 다시 싸기를 반복한다. 마치 에바를 벌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케빈은 에바가 괴로워하는 행동을 악착같이 반복한다.

어리고 모자라서 잘못하는 것이라면 이해라도 할 텐데, 에바의 눈에 비친 케빈은 영악함 그 자체다. 그는 또래 아이들보다 나은 두뇌로 주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교묘한 괴롭힘을 이어간다. 그로부터 이성을 잃는 순간, 수렁에 빠지는 건 오로지 에바다.

케빈의 이상행동은 동생 실리아가 태어나며 심해진다. 에바는 케빈과 달리 교감이 되는 실리아를 각별히 아끼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케빈의 행동은 뒤틀려간다. 집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가 이어지고, 에바는 그 모든 사건의 배후에 케빈이 있다고 의심한다. 에바가 케빈을 의심하면 할수록 남편은 케빈을 옹호하고 나서고, 가족 사이의 균열은 커져만 간다.

이야기는 열여섯 생일을 하루 앞두고 케빈이 학교에서 선생과 동급생들을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으로 이어진다. 케빈이 그들을 살해할 뚜렷한 동기가 없는 가운데, 영화는 에바와 케빈의 관계로부터 케빈이 범행에 이른 이유를 찾아내도록 관객을 이끈다. 그리고는 수감된 지 2년이 지나 성인교도소로 이감을 앞둔 케빈을 면회하는 에바의 모습을 잡아내며 끝을 맺는 것이다.
 
▲ 케빈에 대하여 스틸컷
ⓒ 티캐스트
 
정말 모든 건 케빈 때문이었을까

<케빈에 대하여>는 독특한 영화다. 이야기를 짚어보면 짚어볼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에바의 시선에서 범행의 이유는 간단하게 보인다. 케빈은 날 때부터 남을 괴롭히고 해치는 본성을 가진 위험한 인간이다. 처음엔 주변인을 괴롭혔고, 나중엔 동물을 죽이고 사람을 해하기도 했다. 그런 이가 자라서 마침내 여럿을 죽이기에 이른 것이다. 그건 자연스런 귀결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반박할 단서 또한 곳곳에 흩뿌려 두었다. 에바의 의혹들은 하나 같이 일방적 주장일 뿐, 사실 그대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케빈이 악의적으로 저를 괴롭혔다는 그녀의 회상 또한 객관적 눈으로 다시 바라보면 오해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처음부터 아이를 원치 않았고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았던 에바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케빈이 갈수록 비틀려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섬세한 설정과 장치들로 케빈이 불러온 파국을 해석할 여지를 놓아둔다. 그로부터 관객은 그날의 비극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오래도록 곱씹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은 하나의 범행을 쉽게 어떠한 이유 때문이라고 단정짓는 태도가 위험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또한 어느 시각에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다른 방향에선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말하자면 영화를 보면 볼수록 관객은 모두가 케빈을 이해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만 알아차릴 뿐이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동명 원작소설로부터 태어난 영화는 소설과는 또 다른 멋을 지닌 작품이 되었다. 원작은 그 방대하고 섬세한 설정들을 통하여 훨씬 더 구체적이고 폭넓은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 되었고, 영화는 그중 일부 에피소드만 취사선택하여 간결하고 정제된 작품이 된 것이다. 그중 무엇이 케빈에 대하여 더 잘 설명하고 있는지는 알 길 없으나, 묻지마 범죄 뒤에 은밀하게 감춰진 수많은 동기의 가능성을 바라보도록 한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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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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