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이 시즌 첫 승으로 증명한 세 가지
[양형석 기자]
2022년 5월 27일(이하 한국시각)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LA에인절스와의 원정경기. 토론토의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은 5이닝 동안 65개의 공을 던지며 6피안타1볼넷1탈삼진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5월 21일 신시네티 레즈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낸 후 2경기 연속 승리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류현진의 다음 승리까지 무려 444일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야구팬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6월 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4이닝3실점을 기록한 후 팔꿈치 통증으로 일찍 투구를 마쳤고 다음날 시즌 두 번째로 부상자명단에 등재됐다. 검진결과 왼팔 내측측부인대가 손상됐다는 판정을 받은 류현진은 6월 18일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으면서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수술 후 재활까지 최소 1년이 걸리는 수술로 만약 통증재발 등으로 복귀가 늦어질 경우 토론토와의 계약기간이 그대로 끝날 수도 있었다.
▲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이 14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
ⓒ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셜미디어 |
만 36세에도 유지하고 있는 선발투수 경쟁력
류현진이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작년 6월 18일 당시 류현진의 나이는 만 35세였다. 재활 후 복귀까지 최소 1년의 시간이 필요한 수술을 받기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실제로 현재 메이저리그에도 만 35세가 넘은 나이에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는 저스틴 벌랜더(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맥스 슈어저(텍사스 레인저스), 아담 웨인라이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잭 그레인키(캔자스시티 로얄스) 등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마이너 구단을 상대한 네 번의 재활등판에서 18이닝 4실점으로 호투한 류현진은 빅리그 복귀전이었던 지난 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5이닝9피안타(1피홈런)1볼넷3탈삼진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2개의 병살타를 유도하며 뛰어난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줬지만 5회까지 10명의 주자를 출루시킨 것은 선발투수로서 합격점을 주기 힘들었다. 부상 복귀 후 선발투수로서 경쟁력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다.
하지만 류현진은 이후 2경기에서 전혀 다른 투구를 선보였다. 8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에서 강승타구에 맞고 4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올 때까지 볼넷 하나만을 허용하는 노히트 투구를 선보인 류현진은 14일 컵스전에서도 5회까지 2피안타2볼넷3탈삼진2실점(비자책)으로 승리를 따냈다. 컵스전에서는 1회 2점을 내줬지만 1루수 브랜든 벨트의 실책이 없었다면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을 것이다.
물론 3경기 결과만 보고 류현진의 부활 여부를 확신하기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14일 류현진이 상대했던 컵스는 이날 경기 전까지 후반기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득점 1위(187점)를 달리던 팀이었다. 하지만 만 36세의 베테랑 투수 류현진은 불 붙은 컵스의 강타선을 5이닝 동안 단 2안타로 꽁꽁 묶었다. 볼티모어전이 끝난 후 7.20으로 시작했던 류현진의 평균자책점은 컵스전이 끝난 후 2.57까지 떨어졌다.
투수의 생명은 속도가 아닌 방향
류현진이 2015년 어깨수술을 받고 2년의 공백을 가진 후 2017년 마운드에 복귀했을 때 류현진의 중계를 보던 야구팬들은 항상 류현진의 구속을 신경 써서 체크하곤 했다. 실제로 류현진은 빠른 공의 구속이 시속 150km를 넘기는 날엔 상대에게 좀처럼 집중타를 허용하지 않았고 시속 150km에 미치지 못하면 쉽게 장타를 맞곤 했다. 그리고 이는 토론토 이적 후에도 계속 이어지며 시속 150km는 류현진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기준이 됐다.
하지만 류현진은 팔꿈치 수술을 받고 복귀한 후 빠른 공의 구속이 수술 전 만큼 좋게 나오지 않았다. 14일 컵스전 역시 류현진의 빠른 공은 최고 146km에 머물렀고 평균구속은 142.3km로(88.4마일)로 메이저리그 평균인 151.3km(94마일)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컵스전을 통해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의 속도나 위력이 아닌 방향(제구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날 류현진은 86개의 공을 던지면서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공을 스트라이크 가장자리 근처로 던지면서 상대타자의 범타를 유도했다. 장타 허용은 1회 댄스비 스완슨에게 맞았던 2타점 2루타 하나뿐이었고 2개의 볼넷을 내줬지만 1회 적시타를 제외하면 정타를 허용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류현진이 마운드에서 컵스를 상대로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 경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류현진은 빅리그에서 '파워피처'로 분류되진 않지만 빅리그 통산 8.0개라는 비교적 많은 9이닝당 탈삼진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엔 14이닝을 던지면서 8개의 삼진 밖에 잡지 못했다(9이닝당5.1개). 비록 삼진을 잡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야구는 삼진을 잡는다고 해서 아웃카운트 2개가 올라가는 스포츠가 아니다. 류현진이 느린 공으로도 타자를 손 쉽게 잡는 법을 익히면 앞으로 더욱 효율적인 투구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올스타 출신 후배와의 경쟁에서 승리
토론토는 올 시즌 크리스 배싯이 11승을 기록하며 1선발 역할을 하고 있고 호세 베리오스와 케빈 가우스먼, 키쿠치 유세이가 나란히 9승을 올리며 4선발까지 탄탄하고 안정된 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하고 있다. 2020년 5승2패2.69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사이영 투표 3위를 기록한 에이스 류현진의 뒤를 받칠 2선발조차 마땅치 않아 고전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선발진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재 토론토의 선발진에는 중요한 이름 하나가 빠져 있다. 바로 류현진이 수술 후 재활에 힘쓰고 있던 작년 16승7패2.24의 성적으로 올스타와 함께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 3위에 올랐던 토론토의 젊은 에이스 알렉 마노아다. 작년 최고의 시즌을 보낸 마노아는 올해 19경기에서 3승9패5.87로 최악의 부진에 빠졌고 8월 2경기에서 10.2이닝10피안타7실점(1승1패5.91)을 기록한 끝에 지난 12일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와일드카드 경쟁이 치열한 토론토 구단에서 작년 16승 투수 마노아를 과감하게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류현진의 건강한 복귀 때문이다. 복귀 후 첫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된 류현진은 두 번째 경기에서 4이닝 노히트 투구로 건재를 과시했다. 강습타구에 무릎을 맞고 교체되면서 존 슈나이더 감독을 비롯한 토론토 구단과 팬들을 아찔하게 했지만 경미한 타박상 진단을 받으면서 14일 컵스전에 이상 없이 등판해 승리를 따냈다.
류현진은 올 시즌이 끝나면 지난 2020시즌을 앞두고 토론토와 맺었던 4년8000만 달러 계약이 끝난다. 류현진이 올 겨울 FA시장에서 또 한 번 좋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는 남은 시즌 최대한 많은 경기에 등판해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류현진은 그런 상황에서 작년 올스타 투수이자 16승을 기록했던 토론토의 차세대 에이스 마노아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선발진에 잔류하며 잔여 시즌 자신의 가치를 보여줄 기회를 얻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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