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트라우마 치료비'로 몸집 불린 하나재단
트라우마 치료 예산으로…재단 '몸집 불리기'
새로운 사무실 마련에 70%…사업비는 20%
"증액 취지와 달라…해당 예산 원점 재검토"
통일부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이하 재단)이 국회에서 탈북민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전문가 인건비 등 명목으로 의결한 예산을 신규 센터 공사비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치료 프로그램은 부실하게 구성되고 센터 위치마저 치료 대상자에 대한 수요조사 없이 선정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회는 해당 예산을 원점 재검토한다는 방침이다.
15일 국회에 따르면 예결위원회는 지난해 2023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통일부 신규사업으로 '탈북민이 겪는 중증 트라우마에 대한 전문적 치료'를 위한 4억원을 기획재정부에 증액 요구했고, 의결을 거쳐 최종 편성했다. "탈북 과정에서의 인신매매와 생명의 위협으로 겪는 트라우마, 이로 인한 정신적 어려움을 전문성 있게 치료하라"는 취지였다.
본지가 입수한 정부 예산안 관련 자료를 보면, 해당 예산을 증액 요구한 것은 이철규·김미애·이용호·장동혁·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다. 여당 예결위원들은 "기존 하나센터 25곳 중 대상자가 많은 수도권 3곳에 트라우마 치유 전문가를 배치하는 등 방식으로 치유센터를 운영하라"고 주문했다. 신규 센터를 열라는 것이 아니라, 기존 센터에 전문가를 추가 배치하라는 뜻이었다. 특히 수도권 센터 3곳에 전문 인력을 4명씩 두는 인건비로 2억8000만원을 산정하는 등 구체적인 소요계획까지 제시됐다.
그러나 최근 재단이 국회에 보고한 예산 집행내역을 보면, 2억7000만원(67.5%)이 다음달 개소하는 '마음소리 공감센터' 사무실 운영비로 쓰였다. 설계·공사비 1억3550만원, 임차 보증금 5000만원, 사무기기 및 가구 구입비 3800만원 등이다. 국회에서 의결한 지침과 달리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데 예산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 것이다. 더구나 잔액 1억3000만원 중 5000만원가량은 본 예산이 편성된 목적과 무관한 '상담사 역량개발'에 배정했다. 상담사 워크숍 등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정작 트라우마 치료 사업비로 배정된 예산은 8400만원(21.0%)에 그쳤다. 특히 재단은 초기 심리검사 예상 수요자를 '40명'으로 잡았는데, 예결위가 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기준 없이 인원을 임의 산출한 사실이 적발됐다.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한 탈북민이 얼마나 되는지 사전 수요조사도 하지 않고 대상자를 어림잡아 예산을 배분한 것이다.
치료 프로그램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단 측은 '미술치료' 등 계획을 내놨는데, 전문적 치료가 요구되는 '트라우마'와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하나센터 관계자는 "탈북 과정에서 강제로 납치되고 인신매매, 성폭행 등을 당한 충격에 대한 치료를 요구한 것인데 미술치료 정도로 해결될 것 같으면 기존 센터에서도 연계가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예결위는 치료 인력의 전문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재단은 '마음소리 공감센터'를 만들면서 기존 상담사 2명에 임상심리사 2명을 신규 채용했는데, 민간에서 발급한 자격증만 갖춘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보건복지부가 전국 각지에 운영하는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만 해도 모두 '국가공인 임상심리사' 자격을 갖춘 상담사가 상주한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부산 하나센터장을 지낸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아주 상징적인 치료의 출발로, 중증 트라우마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전문성 있는 치료를 지원하라는 취지였다"며 "기존 수준의 상담을 할 것이라면 예산을 따로 수억씩 들였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잘해서 지방까지 트라우마 치료 거점이 확대되길 기대했는데, 결국 하나재단 사무실만 늘린 꼴"이라고 했다.
인천 선정한 이유 묻자…"탈북민 많이 사는 동네"
통일부와 재단이 국회 의결사항과 다르게 예산을 쓴 것을 두고, 제 몸집만 불리려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단은 현재 전국 하나센터 25곳 중 경남·제주·강원북부 3곳의 운영만 관여하며, 나머지는 각 지역 복지관 등에서 위탁 운영한다. 재단이 컨트롤할 수 없는 수도권 센터들에 예산을 내주지 않고, 수도권 내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단이 무리하게 센터 개소를 밀어붙인 위치는 '인천 남동구 논현동'으로, 기존의 인천 하나센터에서 직선거리로 5㎞에 불과하다. 이 장소를 선정한 배경에 대해서는 "인천에 탈북민이 많아서"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기준 수도권 탈북민 거주 비율을 보면 경기 1만870명, 서울 6696명, 인천 2902명 순으로, 오히려 인천이 가장 적다.
통일부 관계자는 "인천 및 경기서부 권역까지 관할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대상자는 4600명까지 늘어난다"며 "인천 남동구는 구 단위로 볼 때 전국에서 가장 많은 탈북민이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또한 단순한 거주 비율일 뿐, 본 예산의 수혜자가 돼야 할 '트라우마 치료' 대상자 수와 무관하다는 것이 예결위 판단이다.
예결위 관계자는 "통일부와 재단은 국회 의결사항과 무관하게 예산 집행계획을 수립했을뿐더러 사업 내용에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트라우마 치료에 대한 계획마저 전무하다"며 "기존에 사례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었다면,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한 대상자 수를 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해당 예산에 대해 원점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는 "서울 하나센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기존 센터에서 별도의 상담공간을 확보하기 곤란한 점 등을 고려해 서울 이외 지역 센터 설치를 계획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트라우마를 진단·치료하는 과정은 현재로선 없고, 앞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며 "초기 상담을 통해 유형을 분류한 뒤 중증의 경우 공공의료병원과 연계하겠다"고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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