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산업' 대출 딜레마…녹색금융 여전히 '시계제로' [자본의 온도②]
금융그룹 기후변화 대응 전략 수립·이행
기존 대출자산에 따른 재무 리스크 '여전'
35.8도. 이번 세기 마지막 한반도에서 기록될 이른바 더위지수다. 지금보다 7.7도나 오른 수치. 그 만큼 열 받는 날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문제는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비싼 값이 매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만의 문제가 아닌 경제 아젠다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경제의 동맥은 언제나 그랬듯 금융이 쥐고 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지구의 수은주가 자본의 온도인 이유다. <편집자주>
국내 은행권이 보유하고 있는 화석연료 금융자산이 1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은 탈석탄 금융을 선언하는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지만, 한국 경제가 제조업 중심으로 발전한 만큼 당장 관련 대출자산을 줄이기 어려운 모습이다.
문제는 탄소중립 이행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고탄소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와 자산 재평가에 따른 가치 하락 등으로 은행들의 재무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화석연료 대출자산에 대한 관리 정책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15일 금융권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의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화석연료 금융자산은 13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민간 금융권 전체(39조9000억원)의 34.8%에 해당하며 생명보험(15조원·37.6%)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그 뒤를 손해보험(9조7000억원·24.3%)과 증권사(1조3000억원·3.3%) 등이 잇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대형은행의 화석연료 투자 규모를 살펴보면 하나은행이 3조5771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세부적으로는 ▲천연가스(1조5003억원) ▲석유(1조423억원) ▲석탄(1조345억원) 등으로 구성됐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은 2조원대 수준을 보였다. 우리은행의 화석연료 투자액은 2조8565억원, 농협은행은 2조8540억원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1조원대를 기록했다. 국민은행의 화석연료 투자액은 1조8798억원, 신한은행은 1조8156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들은 그룹 차원에서 금융배출량을 축소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수립해 이행하고 있다. 탄소 집약적 산업에 관한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를 제거하고, 대출·금융지원·투자 등을 제공하지 않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우선 금융그룹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재무 리스크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TCFD 권고안을 적용하고 있다. TCFD는 G20 국가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금융안정위원회(FSB)에 기후변화가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할 것을 요청하면서 구성된 협의체다.
KB금융은 중장기 탄소중립 전략으로 'KB Net Zero S.T.A.R.'를 수립했다. 이에 따라 내년까지 ▲탄소배출 관리 시스템 구축 ▲계열사별 넷제로 이행전략 수립·실행 ▲시나리오 분석 방법론 개발 등을 핵심으로 추진한다.
신한금융도 지난 2020년 동아시아 금융그룹 최초로 'Zero Carbon Drive'를 선언했다.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반영한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신한금융은 ▲2050년 넷제로 달성 ▲기후변화 상생금융 ▲지속가능성 확보 등을 목표로 추진한다. 단기 과제로는 대출과 투자 심사 과정에 대한 전환금융 여부를 판단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심사와 실행에 관한 전환금융 판단 요소들을 보완할 계획이다.
하나금융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리스크·기회 분석을 반영한 '2030&60'과 'ZERO&ZERO' 전략 목표를 설정했다. '2030&60' 계획은 2030년까지 지속가능 부문에 총 60조원 규모의 ESG금융 조달과 공급을 목표로 한다. ESG 채권 발행과 여신에 각각 25조원씩을, ESG 투자 부문에 1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또한 'ZERO&ZERO' 계획은 2050년까지 그룹 사업장 탄소 배출량 '제로(0)'와 석탄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제로를 목표로 한다. 향후 30년간 모든 계열사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석탄 PF 잔액을 제로화한다는 계획이다.
우리금융의 경우 금융배출량 이외에도 내부 탄소배출량을 측정해 감축 목표를 설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최대 2050년까지 ▲저·무탄소 발전 전환에 대한 금융지원 ▲기업의 탄소 감축 설비·에너지 효율화·공정 변경 등 녹색금융 활동에 대한 금융지원 ▲신규 석탄 발전·채굴·제조·운송 등에 대한 금융지원 금지 ▲익스포저 한도 축소에서 금융배출량 직접 감축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 등이다.
내부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 ▲LED 전등·전기차 교체 ▲자가발전을 통한 탄소배출 감축 ▲감축 실적을 활용한 인증서 구매 및 재생에너지 전력 입찰 참여 등을 추진한다.
다만 금융그룹들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은 신규 투자 중단에 한정되는 한계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기존에 투자된 화석연료 금융자산으로 불거질 수 있는 재무적 리스크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관계자는 "국내 금융기관의 탈석탄 금융 선언 대부분은 신규 투자 중단에 한정된다"며 "신규 투자를 중단한다고 기존에 투자한 자산으로 인한 리스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 투자 자산에 대한 대책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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