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나를 가르친 팔할
법으로 교사들 옭아매면 학원 선생보다 역할 좁아져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교육 가능하도록 교권 회복돼야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을 흔들어 깨운 것마저 학생인권조례 위반, 아동학대 또는 성추행으로 신고를 하는 시대다. ‘라떼’는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대뿌리로 머리를 한 대 맞고 화들짝 놀라 깨곤 했는데…. 교사가 자신을 때리는 학생의 팔을 잡았다는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때는 잘못하면 대뿌리 정도가 아니라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맞고 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는 서정주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청소년 시절 나를 가르친 건 팔할이 학교였고 선생님이었다. 질풍노도의 중3 때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에 안 가거나 수업을 빠지곤 했던 나는 또 운동장을 가로질러 담을 넘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교무실 앞 현관에서부터 슬리퍼를 신은 채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는 선생님이 있었다. 전근 온 지 얼마 안 된 여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냥 담을 넘어 나갈 수 있었지만,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며 힘겹게 뛰어오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기다렸다. 한 번 담을 넘어 나가면 언제 학교에 나올지 모를 정도로 방황하고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그 선생님은 우리 빵 먹으러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선생님은 매점까지 가는 동안 내 손을 놓지 않았고 나는 못이긴 듯 끌려갔다. 접시 한가득 빵이 나왔다. 그 선생님은 왜 또 밖으로 나가려고 하느냐는 식의 말은 일체 하지 않았다. 그냥 빵을 맛있게 먹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종수가 공부만 하면 충분히 좋은 대학 갈 텐데.” 그 당시 내 성적으로 보나 학교 생활로 보나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한참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무슨 얘기를 하면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선생님은 수업에 늦어 학생들이 기다린다며 먼저 매점을 나갔다. 빵을 다 먹고 난 뒤 나는 매점에 혼자 앉아 한참 고민했다. 가던 길을 계속 가 담을 넘을 것인가, 교실로 들어갈 것인가.
당시 상황을 지금 교육 현장에 대입해 보면 이렇다. 잠자는 학생을 흔들어 깨우거나 교사를 때리는 학생의 팔을 잡아도 아동학대이니, 키가 커서 장군감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장군의 DNA를 가진 내 손을 붙잡고 강제로 끌고 간 것은 아동학대다. 매점 이용시간이 아닌 수업시간에 매점에 들어간 것은 학칙 위반이다. 공부 못하는 애한테 좋은 대학 운운했으니 정서적 학대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학생을 매점에 혼자 둔 것은 방임이다. 선생님이 빵 먹다가 수업에 늦게 들어갔으니 그 수업을 받는 학생들에 대한 학습권 침해다.
빵을 다 먹고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교실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나는 한 번도 학교 담을 넘은 적이 없다. 교권이란 교사의 권위 이전에 교사로서의 양심과 가치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재량과 창의성을 발휘해 소신 있게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교사는 틀에 박힌 교육 방식이 아니라 자유롭게 아이들과 소통하고 교감한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파격적인 방식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였다면 아마 학부모들에게 고소당했을 것이다.
교권 추락과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 교사들의 잇단 자살로 교육 현장이 위기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학교나 교실에서 어떤 행동을 해도 교사가 함부로 제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아동학대 관련법은 계모 아동학대 살해사건 같은 일을 막기 위한 것이 본래 취지인데 무분별하게 적용되고 있다. 지난 5년간 학부모들로부터 고소를 당한 교사가 1200명이 넘는다. 고소당한 교사 10명 중 7명은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무혐의로 종결되는 경우가 절반이 넘었고, 기소되더라도 유죄 선고를 받는 경우가 1.5%에 그쳤다.
교사들을 법과 조례로 옭아매면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육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거리들 두고 사무적으로 대할 것이다. 교사들이 위축되면 학원 선생보다 못한 역할만 할 것이다. 사제지간의 정이나 인격적 관계 맺음, 올바른 가치관 형성 등은 요원하다. 학생 인권도 중요하지만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워 균형을 맞출 때가 됐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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