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폐업 반복하던 카페, 선한 영향력 퍼뜨리는 희망의 명소 되다
중학생 시절 참석한 수련회에서 품었던 목회자로서의 소명은 세월의 분주함 가운데 조금씩 옅어져 갔다. 희미해지던 소명이 불쑥 솟아올랐던 건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 근무 8년차, 조직안에서 승승장구하며 최우수 사원 표창을 받던 날이었다. 역설적이었다. 세상이 부러워할 성공에 맞닿아 있던 순간 신학도로의 길을 내겠다는 그에게 “제 정신이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미련 없이 회사원에서 목회자로 방향키를 틀고 경기도 용인에서 한 마을의 희망지기로 살아가고 있는 임성원 움직이는교회 목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교회가 현재 펼쳐 보이고 있는 사역들은 그가 걸어온 목회 이전의 발자취만큼 스펙터클하다.
임 목사를 만나기 위해 지난 8일 찾아간 곳은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의 한적한 마을이었다. 손곡천의 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가 오묘하게 어우러진 곳에 자리잡은 ‘토다의 숲’이란 이름의 카페가 사역의 출발점이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자연에 둘러싸여 마을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놀고 청년들이 교제 나누고 어른들이 이웃을 돕기 위해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교회를 구현하고 싶었어요. 주변에 이런 얘길 했더니 회사에 사표낼 때처럼 다들 ‘제 정신이냐’고 하더군요. 하하.”
단독 2층 건물에 루프탑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옥상, 인증샷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인테리어, 널찍한 숲속 정원까지 완비된 공간을 개척 목회자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을까. 임 목사는 “교회 개척을 준비하던 4년 전만 해도 이 건물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어도 폐업을 반복하던 브런치 카페였다”며 “돌아보면 대출 없이 기적처럼 마련할 수 있었던 보증금으로 이곳에 둥지를 튼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고 설명했다.
폐업을 반복하던 곳에 목사가 주인이 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장사가 잘될 리 없었다. 종종 카페를 찾는 손님들에게 공간의 지향점을 가열차게 소개했지만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5월의 어느 날 커피를 마시다 임 목사에게 말을 건 한 청년의 이야기가 전환점이 됐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청년이었는데 친구들과 매달 한 차례 3중주 연주회를 한다고 하더군요. 토다의 숲에서 공연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그 음성이 마치 천사 같았어요. 대관료는 무료이니 대신 자선 음악회로 공연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죠. 이 공간이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쓰이게 된 첫 순간이었습니다.”
음악회는 대성공이었다. 카페에 들르던 플로리스트가 음악회 당일 재능기부로 꽃바구니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열었고, 수익은 자선 음악회를 찾은 주민들의 기부금과 함께 구청 사회복지과에 이웃돕기 성금으로 전달됐다. 임 목사는 “세상엔 저마다의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교회가 그들과 손을 잡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의도로 방향을 내어주는 과정이 곧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회 이후 카페는 희망이 움트는 지역 내 명소가 됐다. 카페 입구엔 이곳을 찾은 동네 주민들의 일상 속 사진들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양한 책이 꽂힌 책장과 우드톤 테이블을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이 둘러싼다. 임 목사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생계 문제로 인해 경력이 단절됐던 아주머니, 색테이프를 붙여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발달장애인, 왕따를 당하고 학교를 그만둔 채 그림만 그리던 은둔 청소년 등 아픔에 눌려 있던 이들이 이곳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지금은 활발하게 작가로 활동 중”이라고 소개했다.
주일 예배실로 쓰이는 2층 홀은 평소엔 독서 모임 공간으로, 동네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주민들의 독서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모임 활동비를 지원하는 이 지역에선 크고 작은 ‘책동(책 읽는 동천동) 동아리’ 모임이 활발하다. 이날도 삼삼오오 모인 회원들이 나은영 작가의 ‘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를 읽고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용인시 숲속도서관장이자 동아리 회원인 강성혜씨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독서 모임이 위축됐을 때 토다의 숲이 영업을 멈추지 않고 널찍한 공간을 제공해준 덕분에 많은 동아리들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며 임 목사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카운터와 마주 보고 있는 공간은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내줬다. 창업에 도전하고 싶지만 아이템 회의를 하고, 제품을 선보일 공간을 임대하는데 부담이 큰 이들을 위한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이곳에서 재능을 담금질한 청년들이 동네에서 꽃가게를 열고 문화 카페를 오픈했다.
인큐베이팅은 창업 영역에 그치지 않고 개척 목회 영역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사역 위기를 겪던 개척교회를 위해 카페 예배실을 내준 것이다. 대신 움직이는교회는 카페로부터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있는 다른 공간으로 예배 처소를 옮겼다. 움직이는교회도 성도 40여명의 크지 않은 공동체지만 더 큰 어려움에 처한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집을 내준 것이다.
임 목사는 “열정을 가진 목회자와 성도들이 토다의 숲 예배실에서 신앙을 재정비하고 3~4개월 후에 다른 공간으로 독립해 나가는 모습이 감사가 감사를 낳는 그 자체”라며 “히브리어로 ‘감사’를 뜻하는 토다의 본질이 여러 형태로 희망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회의 이름에도 공동체의 지향점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임 목사는 “부교역자 시절 목회와 교회의 본질을 깊이 묵상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정된 건물에서 자유롭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성도의 만남이 교회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의 현장에서 교회가 되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가치라면 어느 곳으로 움직이더라도 본질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움직이는교회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회는 올해 ‘토다의 숲 선교회’를 출범하며 사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움직이는교회만의 사역이 아니라 같은 뜻을 공유하는 교회들과 힘을 모아 희망의 지경을 넓혀가기 위해서다.
“복음은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성도의 삶이 복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도슨트(전시 작품 안내인)가 되는 것이죠. 우리 성도들과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희망을 내뿜는 것이 움직이는교회가 앞으로 걸어갈 길입니다.”
용인=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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