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곤 칼럼] 원희룡 장관의 불편한 처신
지난 주말 오전, 서울 잠실에서 양평군청까지 40㎞ 가는 데 1시간40분 걸렸다. 6번 국도는 주말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높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추진한 게 서울~양평 고속도로다. 12만 양평 군민은 물론 여기를 지나다니는 누구나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고속도로가 생기면 잠실에서 양평군청까지 30분 남짓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사업이 전격 중단된 지 40일 흘렀다. 언제 재개할지 기약이 없다. 다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꼬인 실타래를 풀지 못한다. 정쟁에 볼모로 잡힌 국민이 피해를 본다. 여야 정치권이야 늘 그렇다 치고, 이번엔 정부가 일을 키웠다. 당초 의혹이 제기됐을 때 노선이 언제 어떻게 변경됐는지 점검해 보면 될 일이었다. 절차에 문제가 없으면 예정대로 진행하고,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된다. 터무니없는 의혹이었다면 유포자를 색출해 고발해야 한다. 이건 정부의 권한이자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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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고속도 표류 40일, 재개 불투명
피해는 국민 몫, 서둘러 정상화해야
장관, 싸움닭 아닌 나라의 심부름꾼
정치 내려놓고 국민만 보고 일하길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백지화 발표는 엉뚱했다. 정부가 해야 할 검증 절차를 무시하고, 건너뛰었다. 대통령 부인이 거론된 만큼 오해 없도록 신중하게 처리해야 했는데,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임기 끝까지 의혹에 시달리기보다 책임지고 손절하겠다.” “정말 필요하다면 다음 정부에서 하라.” 논리가 약하고, 비약이 심했다. 구설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일념뿐인 듯했다. 백지화로 인한 피해를 두루 고심한 흔적은 없었다.
그는 “장관직을 걸겠다”고 했다. 지난해 1기 신도시 재건축이 논란이 됐을 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지체되지 않도록 장관직을 걸고 약속드리겠다.” 장관직이 전가의 보도처럼 쓸 수 있는 대단한 감투라고 여기는 듯하다.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 장관은 늘공(늘 공무원, 직업 공무원)이 정무감각이 떨어져 괜한 의혹을 샀다는 취지로도 얘기했다. 자신의 조직을 늘공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갈라치기한 건 잘못이다.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공무원들이 그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나. 게다가 책임을 늘공 탓으로 돌렸다. ‘남 탓’은 위아래, 좌·우파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의 고질병이 됐다. 잼버리 파행을 놓고도 낯 뜨거운 남 탓 공방이 한창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지역 숙원사업이다. 종점으로 원안(양서면)과 변경안(강상면), 나들목 추가안(강하IC) 중 어느 게 나은지는 전문가가 판단할 영역이다. 분명한 건 어떤 형태로든 서둘러 재개하는 게 맞다. 원 장관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쏟아놓은 말을 주워담을 묘안이 없다. 스스로 퇴로를 막았다. 좋게 보면 배수진이요, 엄밀히 말하면 자충수다. 지금 가장 고민스러운 사람은 원 장관이다. 사람들이 꽉 막힌 6번 국도를 지날 때마다 그를 떠올릴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는 퇴로를 뚫느라 말을 계속 바꾼다. ‘민주당이 사과하면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민주당은 사과할 생각이 없다. 조국 사태 때 보았듯 눈앞에 증거를 들이밀어도 꿈쩍 안 한다. 원 장관의 발언 수위는 점점 누그러지고, 부연 설명은 길어진다. “실제로는 (백지화가 아니라) 중단이다. 무기한 끌다 보면 무산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사과하면 제일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문가와 양평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고속도로를 최대한 빨리 놓겠다.” 사업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헷갈린다. 이럴 거면 처음에 왜 백지화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국토부는 ‘충격요법’이었다고 설명했는데, 부적절하다. 국민이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떠봤다는 건가.
국민이 피해를 보는 마당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다. 우선 1조8000억원 국책사업을 장관 한 사람이 뒤집을 수 있는 건지 따져봐야 한다. 장관의 힘이 셌던 박정희 정부에서도 본 적이 없다. 원 장관은 “대통령과 논의 없이 독자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아니라면 적어도 총리나 예산권을 가진 경제부총리와는 상의했어야 했다. 혼자 결정해 발표했다면 국정 시스템이 너무 허술한 것이다. 혼자 한 게 아니라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문제다. 대통령과 총리, 각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을 지키는 것도 이상하다. 전 국민의 관심사로 불거진 만큼 원 장관에게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힘을 실어주든, 책임을 묻든 뭐라도 분명한 정부 입장이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원 장관은 최전방 돌격대를 자처했다. 지난 대선 때 인기를 끈 ‘대장동 1타 강사’에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거침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존재감이 높아지는 듯하지만, 지나치면 자신을 갉아먹는다. 그는 정치판의 싸움닭이 아니라 나라의 심부름꾼, 공복(公僕)이다. “제발 이렇게 하지 마시고 국민을 위해 일해 주십시오”라는 양평군 주민의 하소연을 가슴에 담기 바란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온 공복의 자세를 깊이 새겼으면 한다. 대권을 꿈꾼다면 더더욱 그렇다.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남이 끌어내리고, 스스로 낮추는 사람은 남이 올려준다.’
고현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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