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마다 반복되는 국회 늑장 결산

2023. 8. 15.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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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룡 중앙대 행정대학원 교수·전 국회예산정책처장

수마가 할퀴고 간 처참한 모습과 소중한 인명 및 재산 피해 현장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무겁고 참담하다. 왜 매년 폭우가 쏟아지면 반복적으로 재난이 발생하는지 너무 안타깝다. 헌법 제34조 6항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어떤 가시적인 노력을 했는지 국민은 묻고 있다. 2000년 이후 지난 23년간 새로 건설된 댐이 5곳뿐이어서 물을 가둘 곳이 없어 물난리가 반복되고 있다는 보도는 그래서 주목받고 있다.

「 ‘정기회기 전 결산’ 말로만 그쳐
미국·영국 등 그물망 심사 정착
재정 낭비·오용 등 부추기는 꼴

시론

『2021 재해 연보』에 따르면 2012~2021년 10년간 자연재난으로 인한 연평균 피해액은 3897억원인데, 그에 비해 연평균 피해 복구액은 1조914억원으로 피해액 대비 복구비 비중이 2.8배나 됐다. 재난 및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사전예방적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후 복구 소요를 최소화하면 궁극적으로 재정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난은 해가 갈수록 막대한 피해를 동반할 것이다. 예견되는 기상이변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재대책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재난 대응 예산을 증액한다 해도 소요 재원 마련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산 심사의 내실화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재정 집행 과정에서 예산 낭비와 부정·남용·오용은 없는지 철저히 검증해 위법 또는 부당한 예산 항목을 줄인다면 그에 상응하는 재원을 보전하는 셈이 된다. 당장 우선순위가 낮거나 성과·집행이 부진한 사업은 절감하고, 선심성·전시성 사업을 폐지하는 등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가용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결산에 대한 관심은 언론은 물론 시민단체조차 예산 편성 단계보다 턱없이 낮은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결산에 대한 무관심은 재정 집행의 도덕적 해이와 무책임한 ‘대충 행정’을 조장하는 근인(近因)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납세자인 국민에게 전가된다.

국회법 제128조의 2를 보면 국회는 결산에 대한 심의 의결을 정기회 개회 전까지 완료하도록 ‘결산의 심의 기한’을 규정하고 있다. 2003년에 도입된 국회의 조기 결산 심의제도는 9월 정기회 개회 전에 결산 심의를 마치고 정기회에서는 예산안 심의에 집중하자는 취지다. 1단계로 결산 심사를 마치고, 2단계로 국정감사 현장에서 당해 연도 예산의 집행 경과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고, 3단계로 이러한 결과를 다음연도 예산심의 때 반영한다면 문제 사업을 촘촘히 걸러낼 수 있다. 이것이 국회에 부여된 재정 통제권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최근 5년간 국회가 결산을 처리한 날짜를 보면 매년 시한을 어겼다. 예컨대 2018년에는 12월 8일, 2019년 10월 31일, 2020년 11월 19일, 2021년 12월 2일, 2022년 11월 10일이었다. 국정감사 이후 또는 예산안 심사와 연계해서 결산안을 늦게 처리했다.

영국 의회의 결산위원회는 돈의 가치(Value for Money), 즉 돈값을 제대로 했는지 부처의 효율성·효과성·경제성 달성 여부를 꼼꼼하게 심사한다. 예산 편성권을 가진 미국 의회는 청문회를 통해 정부의 비효율과 낭비 및 기만(Fraud)과 부패 여부에 대해 연중 상시로 깐깐하게 심사한다. 예산 집행에 대한 상시적 견제 및 통제를 통해 그물망 심사를 하는 선진국 의회를 벤치마킹해 한국 국회도 올해는 그동안 반복해온 늑장 결산 관행을 끝내고 법정기한 내에 결산을 처리해야 한다. 결산을 제때 마무리하지 않아서 생기는 국고 손실 가능성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예산은 ‘길이가 짧은 이불’과 같다. 써야 할 곳은 많지만 필요한 만큼 나라 곳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예산 정책적 함의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예산 이불’을 도탑게 덮어줘야 할 곳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부문이다.

국회가 보유한 조기 결산 심의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올바른 재정 쓰임의 디딤돌이자 민생 바로잡기의 관건이다. 국회법에 관련 규정을 담는 데 머무를 것이 아니라 실천함으로써 대한민국 국회가 표방하는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국회’의 진정한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주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해룡 중앙대 행정대학원 교수·전 국회예산정책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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