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청산리·봉오동 전투만이 독립투쟁은 아니었다
8·15 78주년, 다시 읽는 광복
컴퓨터 최악의 바이러스는 무엇?
물론 그런 바이러스도 골치 아프겠지만, 이런 바이러스는 어떤가? 특별한 증상 없이 컴퓨터의 성능을 그냥 20~30% 떨어뜨리는 바이러스. 20~30% 정도 성능이 떨어지면, 사용자는 뭔가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짐작할 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기 쉽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바이러스를 퇴치하거나, 컴퓨터를 수선할 결심을 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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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강한 무장투쟁만 부각
눈에 덜 띄는 작은 저항도 많아
일제 괴롭힌 숱한 불복종 운동
일상 곳곳에 퍼진 ‘약자의 무기’
윤치호 “독립은 선물로 받은 것”
한국인이 순응만 했단 말인가
」
그런데 이런 바이러스야말로 정말 골치 아픈 상대일 수 있다. 증상이 극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존재 파악도 어렵고, 따라서 전면적인 개선에 나서게 되지도 않는다. 다만 투덜거리며 계속 그 컴퓨터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그 컴퓨터를 장기간 사용했다고 상상해보자. 그 긴 기간 동안 사용자는 지속적으로 저성능에 시달린 셈이 된다. 차라리 컴퓨터가 일시에 정지되었더라면, 새 컴퓨터로 교체라도 했을 텐데. 그러면 좀 더 나은 성능으로 좋은 결과를 산출할 수 있었을 텐데.
가장 까다로운 학생은 누구?
선생의 입장에서 가르치기 까다로운 학생의 경우를 상상해보자. 어떤 학생이 가장 까다로운가?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 전면적인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 대놓고 엎드려 자는 학생? 교육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 아예 수업 거부를 하는 학생?
물론 그런 학생도 나름 까다롭겠지만, 이런 학생은 어떤가? 분명하게 이견을 제기하지 않고 애매하게 투덜거리는 학생, 수업 시간에 대놓고 자는 대신 일부러 살짝 조는 학생, 큰소리로 욕하는 대신, 마치 욕 비슷한 낱말을 중얼거리는 학생. 십장생, 시조새, 개의 후손, 어쩌고저쩌고…. 이런 학생들의 경우는, 딱 집어서 무엇을 크게 잘못했다고 지적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수업 분위기를 저하할 것이다. 차라리 그 학생들이 선명한 이의를 제기했다면, 개선책을 도모해 보기라도 했을 텐데. 그러면 좀 더 나은 수업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꽤 효과적으로 수업을 방해한 셈이 되었다. 수업을 정지시키지는 못했어도, 딱히 벌을 받지도 않으면서 수업이 삐걱거리게 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정치학자 제임스 스콧의 깨달음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제임스 스콧은 농민들의 정치적 저항의 사례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처음에 그는 화끈한 농민 봉기, 조직적 반란, 거대규모의 항쟁과 시위, 거국적 혁명같이 스펙터클을 동반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농민 항쟁의 역사를 보면, 그러한 극적인 저항으로 인해 정권이 정복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제임스 스콧이 결국 발견한 것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득권 세력이 다시 원위치에 복귀하고 농민들은 여전히 수탈당하는 입장에 머물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렇다면 농민은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란 말인가. 그건 너무 우울한 결론이 아닌가.
고심하던 제임스 스콧은 새로운 관점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그들의 주된 투쟁 방식은 대규모 봉기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대규모 봉기보다 고의적 지연, 명시적인 폭동보다 은근한 의무 불이행, 일사불란한 습격보다 좀도둑질, 조직적인 항의보다 산발적인 사보타주, 대대적인 침략보다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는 공유지 무단 점유 같은 행위 같은 것이 실은 농민 나름의 저항 방식이었을 수 있다. 거대한 스펙터클만 그들의 주된 투쟁 방식으로 간주하는 것은, 오늘날 관찰자의 편견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제임스 스콧은 하게 된 것이다.
새롭게 돌아보는 독립운동사
독립운동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관점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오늘날 우리는 청산리 대첩, 봉오동 전투, 혹은 여러 영웅적 개인의 의거처럼 상대적으로 스펙터클을 동반한 사건을 통해 독립운동사를 기억한다. 그런 사건은 물론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런 사건은 식민지 시기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인의 정치의식을 알리는 효과를 가져왔고, 해방 이후에 한국의 존재를 인정받는 데 기여했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명시하고 있는 것은, 현대 한국의 정체성이 그러한 독립운동에 기원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무장 투쟁과 해방의 관계에 대해 여러 이견도 존재해 왔다. 예컨대 유명한 청산리 전투나 봉오동 전투의 성과가 과장되어왔다는 근년의 연구들이 있다. 그밖에 해방을 맞이한 바로 그해 세상을 떠난 윤치호(1865~1945) 같은 인물은 해방은 선물처럼 주어졌다고 대놓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해방이 선물로 주어진 것임을 솔직히 시인하고, 그 행운을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한국인들이 대단한 군사력을 가지고서, 제국주의 열강과의 전쟁에서 장쾌하게 이겨서, 계획대로 독립을 쟁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군사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식민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일본의 패전은 한국보다 훨씬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들의 힘겨루기 결과였다.
설령 그렇다고 한들, 우리가 식민지 시기 내내 ‘일방적인’ 지배 상태에 있었다는 단순한 결론에 이르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해방에 이르는 복합적인 과정을 두고 전쟁이나 무장투쟁 같은 극적인 사태에만 주목하는 것은 전체 그림의 일부만 보는 것은 아닐까. 식민지 시기 한반도 내 한국인이 가만히 앉아서 순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저항 ‘큰 그림’ 필요해
일본 제국주의 정부의 통치가 결코 수월하지 않은 일이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은 많다. 제임스 스콧이 언급한 종류의 불복종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피곤하고 힘들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직접 지배에 나선 자가 겪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고통을 제대로 맛보았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합방 시도 자체가 패착인 것이다.
명시적인 투쟁을 강조하는 윤치호와 같은 사회진화론자의 시야에는 제임스 스콧식의 미시적 투쟁은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1919년 1월 29일자 일기에 윤치호는 이렇게 쓴다. “역사상 투쟁하지 않고서 정치적 독립을 해낸 민족이나 국가는 전혀 없다. 투쟁할 수 없다면, 독립을 외쳐봐야 소용없다. 우리가 강해지는 법을 모른다면, 약자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약자로 사는 법에는 순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약자가 종종 사용하는 미시적 차원의 무기가 있고, 그 약자의 무기는 의외로 지배 세력을 신음하게 한다.
저항도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지배하는 일에도 에너지가 소비된다. 만약 식민지 시기 일본이 질서 집착 성향을 크게 갖고 있었다면, 그런 집착이 상대적으로 작은 상대를 지배하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본 문화에 접하는 이들은 일본이 다른 나라들보다 더 정교한 물질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다듬어진 문양, 질서에 대한 집요한 강박, 겹겹으로 이어지는 형식의 준수 등에서 그런 인상을 받는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은 꽤 뿌리 깊은 것이어서, 조선시대에 일본에 다녀온 역관들도 그와 같은 인상을 보고한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일본과 한국의 병합이란 질서 집착 성향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과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의 동거를 뜻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후자뿐 아니라 전자가 받는 스트레스 역시 상상 가능하다. 깔끔함의 정도가 다른 두 사람이 한집에 살 경우, 대개 더 깔끔한 사람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던가. 바로 그 지점에서 덜 깔끔한 사람의 미시적 저항의 기회가 열린다.
지배하려 할수록 저항도 커져
일본 제국주의가 집요할 정도로 특정 질서를 한반도에 이식하려 하면 할수록, 한반도 내에서 미시적 저항의 여지 역시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해외의 독립 투쟁에 더하여 국내의 미시적 저항에 접한 제국주의자들은 타국을 직접 지배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 미시적 투쟁에 의해 제국주의자들의 기력은 소진되어 가고, 합병할 당시 꿈꾸었던 속 편한 나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광의의 독립운동은 무장투쟁 이외의 영역에서도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도 그렇지 않은가. 명백한 비문으로 가득 찬 글은, 편집자가 아예 다시 써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애매한 비문, 애매하게 몽롱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은 딱히 다시 써달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러한 글들이 오히려 편집자의 스트레스를 가중한다. 매 문장이 논리적이고 분명하기를 바라는 편집광적 편집자라면 고통이 더 심할 것이다. 완전한 비문이라면 다시 써달라고 할 수나 있으려만. 애매한 비문은 그저 편집자를 늙게 만든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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