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어머니 지구’에 대한 예의 회복
“하늘이 쾌청하고 공기가 맑아지니 이제 숨 좀 쉴만 하구나.” “그래, 이번 돌림병 사태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건 바이러스가 지구를 살리는 백신이라는 거야.”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해 모두가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던 어느 날, 친구와 손전화로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아련한 기억이 있다.
그 무서운 돌림병이 잠잠해진 지금, 세상은 좀 달라진 게 있는가. 지구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SNS로 세계를 고고샅샅 훑어보면 다시 돌림병 이전으로 회귀해버린 것만 같아 안타깝다. 공장들이 쉬고 비행기들이 멈추고 사람들이 집안에 갇혀 지내며 고통받는 동안 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좀 철들려나 했는데, 그 또한 허망한 기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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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전으로 회귀한 세상
소비와 욕망 사슬 다시 살아나
마당귀 풀도 나와 같은 ‘지구인’
」
묵은 과거와의 단절은 이렇게 쉽지 않은 것일까. 지난 시간 속에 켜켜이 쌓인 부박한 욕망과 관습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다른 방법이 없다. 우선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낡은 관습과 의식에 사로잡힌 내가 죽어야 한다. 그래야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삶의 희망을 담보할 수 있다. 몽골의 시인 D 우리앙카이의 시 ‘한 번의 생에 여러 번 죽는다’는 새 삶을 갈망하는 우리의 의식을 일깨워준다.
‘가을에/ 숲이 누렇게 변할 때마다 나는 죽는다…/ 차가운 한풍이 사납게 울부짖고/ 어린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쓰러질 때마다/ 나는 죽는다/ 잠이 덜 깬 몽골에서 멀리 떨어진/ 태평양 어딘가에서 배가 침몰할 때……// 먼 외딴 초원의 고요를/ 엽총 소리가 놀라게 할 때 나는 죽는다/ 한 번의 생에 여러 번 죽는 것은/ 내게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
그러니까 시인은 자연의 벗들이 시련과 죽임을 당할 때 자기도 죽는다는 것. 또한 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사람들이 배와 함께 가라앉을 때 자기도 죽는다는 것. 이때 시인이 말하는 죽음은 뭘 의미할까. 육신의 소멸? 아니다. 그러면? 자기 에고의 죽음이다. 그것을 통해 고통받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이 발현된다는 것. 그렇다. 시인은 자기 에고의 죽음을 통해 우주 만물과 공생하는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번의 생에 여러 번 죽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그러나 우리가 적극적, 능동적으로 죽지 않으면 삶의 새로운 차원은 열리지 않는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부부가 원만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내 생각이나 뜻을 절대 양보할 수 없으니 당신이 양보하라고 하면 그 결혼은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 가정뿐만 아니라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도 마찬가지. 누군가의 죽음 혹은 희생을 통해 공동체가 살아나고 활력을 지닐 수 있는 법. 여기서 의미심장한 시의 후반부를 다시 읽어보자.
‘한 번의 생에 여러 번 죽는 것은/ 내게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한 번의 생에 오직 한 번 죽는 사람들과/ 날마다 함께 살아가는/ 너무도 끔찍한 일!’
우리가 한 번의 생에 여러 번 죽는 건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시인은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고 한다. 한 번의 생에 ‘오직 한 번 죽는 사람들’과 날마다 함께 살아가는 일, 그것은 너무 끔찍하다고. 그러면 도대체 한 번의 생에 오직 한 번 죽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육신의 소멸? 그렇다. 이런 최후의 소멸 말고는 평소 자기 에고를 한 번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건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일이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몸담아 사는 지구가 불친절해지고 있다. 한 생태영성가는 그 이유를 “우리 인간이 지구와 그 주민들에 대한 예의를 잊었기 때문”(토마스 베리)이라고. 지구 공동체는 인간 존재보다 거대한 차원이다. 하지만 인간이 마치 지구의 주인인 양 오만에 빠져 지구 생명체를 파괴함으로써 녹색별의 반격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가 지구 어머니에 대해 예의를 차리는 길은 마당귀의 풀 한 포기라도 나와 동등한 이 땅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첨단 문명의 편리와 물질주의적 생활방식에 중독된 우리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한 성인은 ‘나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산다’고 했다. 성인이 그럴진대 우리 또한 지구 생명체에 대해 무례를 저지르고 살았던 과거의 ‘나’는 죽고, 지극한 예의를 갖춘 ‘나’로 거듭나야 하리라. 새날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고진하 시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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