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의 마켓 나우] 기술발전이 번영을 가져오려면
기술과 진보, 그리고 포용
통념으로는 ‘그렇다’가 답이다. 학술적으로는 까다로운 질문이다. 최근 미국 MIT대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경제학)가 흥미로운 대답을 내놓았다.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 향상의 과실을 더 널리 공유하는 제도를 설계해야 진보가 달성된다며 ‘기술발전=진보’라는 등식을 깼다.
아세모글루 교수는 경제학계 톱스타다. 정치와 제도가 경제의 핵심이라는 연구주제로 정치경제학을 진일보시켰다. 26세에 MIT대 교수가 됐다. 40세 미만 최고의 경제학자에게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다. MIT대 교수 1080명 중 12명밖에 없는 ‘인스티튜트 프로페서(Institute Professor)’다.
『권력과 진보』가 분석한 19세기말 미국에서는 기술변화를 기회로 삼은 사람과 기업은 번성했지만, 불평등이 놀랍게 증가했다. 사회 담론을 이끄는 매체·정책·정치 전문가들은 독점기업의 해체와 규제를 위해 1890년 셔먼 반독점법, 1914년 클레이턴법과 연방거래위원회법을 통과시켰고, 이는 경제 번영에 기여했다. 요즘 빅테크로 불리는 기업들에 권력이 집중된다. 19세기 말과 비슷하다. 기술발전의 방향을 인간 역량 보완과 노동자 생산성 향상 쪽으로 틀어야 20세기 경제 번영을 재현할 수 있다고 아세모글루 교수는 주장한다.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도 없고, 오히려 인공지능(AI)기술의 글로벌 경쟁력이 없어서 문제가 아닌가. 아세모글루 교수에게 e메일로 “성장률 급락 속에서 한국이 기술발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이런 답장이 왔다.
“누구나 자국 경제상황에 좀 더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고령화 같은 문제도 있지만 한국은 중요한 성공 사례다. 1960년대 케냐와 비슷한 1인당 소득에서 유럽 수준으로 성장한 것은 놀라운 성과다. 여기에 제조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미국 경제학계 일각에서 미국이 제조업을 중시하지 않아 놓친 게 많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의 진정한 강점은 제조기술이기에 지금이야말로 AI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에 투자하는 동시에 미국이 저지른 실수를 피할 때다. 미국의 실수란 제조기업·노동자·역량에 대한 투자에 실패하고, AI 및 관련 기술을 보다 ‘인간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추진해 노동자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도록 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방향 전환에 늦긴 했지만, 아직 너무 늦은 건 아닐지 모른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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