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의 행복한 북카페] 우리, 공부하게 해주세요
재작년 훌륭한 독서내공 청소년들과 독서모임을 했다. 팀 마샬의 『지리의 힘』(2016)을 읽으며 한 학생이 “유럽이 잘 살던 나라였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요” 하니, 다른 학생들도 모두 “저도요” 한다. 모두 유럽 여행도 다녀온 학생들이었다. 이들을 가난한 나라에 살아본 적 없게 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기뻐해야 할지, 놀라 말문이 막혔다.
1980년대 학력고사 시절만 해도 고등학교에서 많은 과목을 ‘선택 없이 모두’ 배웠다. 국·영·수뿐 아니라 세계사·정치경제·생물·지구과학·화학·물리 등을 다 배우고, 입시에선 모든 과목을 치렀다. 지금은 국·영·수가 핵심이고 사탐·과탐 중 두 과목 선택으로 수능을 보니, 아예 배워본 적이 없는 과목도 많다.
세상은 변동하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모호한 ‘뷰카(VUCA)’의 시대다. 다양한 영역을 ‘들어본 적’은 있어야 생존가능하다. 잡학다식 알쓸신잡이다.
기초교양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liberal arts’다. 노예가 아닌 ‘자유시민의 소양 교육’이란 의미다. 동서고금 인류문명 역사에서 ‘배운다’는 건 상위 0.1%만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국민이 배울 수 있는 권리는 빌헬름 폰 훔볼트, 존 스튜어트 밀 등 많은 선각자의 헌신에 빚을 지고 있다. 사회개혁은 오직 시민교육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그 교육은 직업인 양성이 아닌 교양이어야 한다는 통찰이었다.
총명한 20·30대가 “문과라서 과학을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이과라서 세계사를 못 배웠어요”라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지식의 절름발이다. 언젠가 들어본 풍월이 어디서 꽃필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배울 권리를 돌려주면 어떨까. 얇고 넓게 세상 이치를 모두 맛보는 선물. 입시에 국영수 비중을 줄이고, 다양한 과목을 넣어 학교에서 배우게 한다면 덜 지루해할 학생과 이를 보는 학부모는 싫어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사교육 시장은 싫어하겠지만.
이안나 성형외과 전문의·서점 ‘채그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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