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여름 극장가 달라진 흥행 셈법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단순히 주거 형태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응축된 상징이자, 때로는 계층 상승의 상징으로도 통용된다. 단지마다 평면과 구조 등이 엇비슷한 점에서 아파트는 언뜻 균질화된 공간 같지만, 수백 수천 가구가 사는 만큼 천태만상의 인간 군상이 집적된 곳이기도 하다.
지난주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가 주 무대인 재난영화다.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된 와중에 홀로 붕괴를 피한 ‘황궁 아파트’가 그곳. 이름처럼 호화스럽기보다는 평범한 동네 아파트에 가깝다. 평소 이웃에 누가 사는 지도 잘 모르면서, 한편으로 남의 집 살림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생존, 특히 배타적 생존이다. 재난 이후 새로 선출된 주민 대표(이병헌)를 중심으로 아파트에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고, 외부인을 돕거나 하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 묘한 공동체를 보고 있자니, 10년 전 여름 개봉한 ‘숨바꼭질’이 떠오른다. 안전해야 할 ‘내 집’에 정체불명의 타인이 침입하는 공포를 극적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당시 신인 허정 감독의 데뷔작인데, 예상밖 흥행을 거뒀다. 그해 여름 흥행작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900만 넘는 관객을 모았고, 그 전후로 개봉한 ‘감시자들’ ‘더 테러 라이브’ ‘숨바꼭질’도 모두 500만 넘는 관객을 모았다. 게다가 ‘설국열차’를 제외한 다른 세 편은 모두 신인급 감독이 연출했다. 네 편 모두 흥행한 것도, 신인 감독들이 줄줄이 홈런을 친 것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후로도 여름 극장가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이듬해 ‘명량’이 전무후무한 흥행 기록을 세운 것을 비롯해 굵직한 한국영화가 서너 편씩 차례로 개봉해 홈런이든 장타든 흥행몰이를 하는 것은 익숙한 여름 풍경이 됐다.
올 여름은 한국영화 대작 개봉 편수만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간 듯 싶다. 하지만 극장가 분위기는 그렇지 못하다. 가장 먼저 개봉한 ‘밀수’는 400만 넘게 관람했지만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초반 흥행은 그래서 더 눈길을 끈다. 지난 수요일 개봉 이후 일요일까지 150만 관객을 넘어섰다.
물론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주 개봉작은 한국영화 신작들 외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눈에 띈다. ‘오펜하이머’는 미국에서는 7월에 ‘바비’와 나란히 개봉했는데, 두 영화의 이미지를 뒤섞은 밈의 유행과 함께 제작진·출연진이 서로의 영화를 관람한 것도 화제가 됐다. 한국영화 동반 흥행의 역사가, 아니 한국영화계가 새로운 감독과 새로운 이야기에 과감히 투자한 결과가 관객의 호응을 받았던 시기가 문득 다시 생각난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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