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무책임
사실 출발부터 기이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으니, 이 정부 초대 여가부 장관에게 처음 주어진 미션은 오로지 '부처 폐지'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폐지에 동의하면서 왜 그 자리에 있느냐"는 야당 인사청문위원들의 조롱을 견디고 지난해 5월 임명된 김현숙 장관을 기다리고 있는 핵심 과제도 부처 폐지였다. 두 달 뒤 첫 업무보고 때 윤 대통령이 "부처 폐지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하라"며 공약 이행 의사를 분명히 하자 김 장관의 지상과제가 여가부 폐지라는 게 더욱 뚜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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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 폐지' 믿고 잼버리 손 놓았나
안팎 지속적 경고 무시 배경 의문
무책임·무능으로 '최종 미션' 달성?
」
사라질 부처의 시한부 장관 눈에 1년 앞으로 다가온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이하 잼버리)가 들어왔을 리 없다. 업무보고 한 달 뒤인 지난해 8월 국회 상임위(여가위)에 참석한 송주아 국회 수석전문위원은 김 장관 바로 옆에 앉아 "여가부가 잼버리 조직위와 전북도에 교부한 56억원의 예산 실 집행률이 각각 32%와 39%로 저조해 철저한 사업 집행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잼버리 주무 부처인 여가부가 예산 집행과 승인 권한을 갖고 있을뿐더러 여가부 장관이 조직위원장을 겸하는 만큼 김 장관이 잼버리를 자기 일로 생각했다면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때까지 새만금 현장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김 장관은 "차질없이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돌이켜보니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 같다. 여가부가 없어지면 본인이 책임질 일은 없을 거라는 기대 말이다.
지난해 10월 국감 발언을 보면 이런 안이하고 무책임한 상황 인식이 확연히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전북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민주당 이원택 의원(전북 부안군)은 "배수가 안 되는 상황에 폭염·폭우·해충 대책이 필요한데 아직 기반시설 공정률은 37%"라며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역경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여가부 폐지 후) 다른 부처로 이관되더라도 책임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며 두 달 전 상임위 때 본인이 했던 주문을 다시 반복했다. 여가부가 못할 거 같으면 문화체육부든 어디든 다른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빨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김 장관은 엉뚱하게 전북도와의 업무협약(MOU)을 들고 나왔다. 그는 "이 부분은 전북지사와 MOU를 맺은 상태"라고 했다. 무슨 상세한 매뉴얼이라도 담겼나 봤더니 국감 한 달 전 김 장관이 준비상황 점검을 겸해 새만금에 처음 내려가 잼버리 실무총책임자이자 집행위원장인 김관영 전북도지사(더불어민주당 소속)와 '전 세계 청소년의 교류 증진을 위한 잼버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문구의 MOU를 체결한 게 전부였다.
비극은 올 2월 다수당인 민주당의 반대로 여가부가 존치하면서 불거졌다. 1년 가까이 사실상 손 놓고 있었는데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진짜로 "차질없이" 치러야 하는 주체가 된 거다. 이때라도 심기일전했더라면 좋았으련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5월 새만금잼버리특별법상 정부지원위원장인 한덕수 총리와 함께 나선 현장 점검도 사진 찍기용 요식행사로 끝났다. 심지어 일주일 뒤인 5월 25일 공동조직위원장인 김윤덕 의원(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잼버리가 공포와 트라우마로 남는 대회로 전락할 수 있다"며 여가부 장관 등 공동조직위원장 5인과 전북도지사와의 긴급 공동회의를 제안했는데도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후 벌어진 잼버리 파행은 이미 우리가 목격한 그대로다. 윤 대통령 내외가 깜짝 방문했던 행사 첫날부터 온열 환자가 쏟아지는 등 부실 준비가 논란이 되자 정부와 여당은 일제히 전 정부 탓을 했다. 대통령실은 "전 정부에서 5년 준비한 것"이라 퉁쳤고, 대회 일주일 전 현장 점검까지 했던 국민의힘 지도부는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문재인 정부와 전·현직 전북도지사에게 있다"고 했다. 심지어 지원위원장 자격으로 지난 3월 직접 회의까지 주재했던 한 총리는 "지금부터 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며 마치 잼버리 문제를 처음 접하는 양 과거의 책임에는 입을 닫았다. 물론 전북도의 방만한 조직 운영과 무능, 그리고 혈세만 낭비한 외유성 출장 등 대회가 끝난 후 잘잘못을 따져야 할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난맥상이 전부 사실이라 하더라도 1년 반 동안 안팎의 잇따른 경고를 무시한 정부, 특히 김현숙 여가부 장관 책임이 감해지진 않는다.
지난 8일 언론 브리핑 현장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세계연맹이 할 말, 전북도가 할 말"이라는 식의 준비 안 된 답변으로 일관하더니 급기야 "부산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주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 장관은 "위기 대응을 통해 전 세계에 대한민국 역량을 보여줬다"는 망언을 내놓았다. 잼버리 실패 책임으로는 모자라 온 국민 열 받게 해서 원래 부여받은 미션이었던 여가부 폐지를 이뤄낼 심산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다.
글=안혜리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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