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수사단 수사결과 없애려는 국방부의 심각성
[박석진 기자]
▲ 고(故)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이 지난 7월 22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는 가운데 채 상병 어머니가 아들 영정을 붙들고 오열하고 있다. 채수근 상병은 지난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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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상황. 지난 7월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면에서 폭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중 숨진 해병대 1사단 소속 채수근 상병의 죽음과 관련한 수사의 현재 상태다.
지난 2일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자 국방부는 박정훈 수사단장(대령)을 보직해임하고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군 검찰에 입건했다. 이에 박 대령은 군 검찰의 소환조사를 거부하고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국방부가 박 대령에게 적용한 집단항명 수괴 혐의가 적절한지 외부 민간 전문가들의 심의를 받겠다는 것이다. 14일 군 검찰은 박 대령에 대한 혐의를 '집단항명 수괴'에서 '항명'으로 변경했다고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박 대령 측은 사건 수사와 경찰에 사건 이첩을 방해한 국방부 관계자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고발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명령지휘체계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군 조직에서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해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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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은 채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한 해병대 수사단 수사보고서에 대한 이종섭 국방부장관의 결재가 난 다음날인 7월 31일 해병대 차원에서 진행하기로 한 수사결과 관련 언론브리핑이 1시간 전에 전격 취소되면서다. 군인권센터는 이같은 결정에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1일 박정훈 대령의 설명을 종합하면 상황은 이렇게 전개됐다.
7월 30일 국방부장관이 참석한 수사보고서 검토 및 결재가 이뤄졌다. 같은날 대통령 안보실에 근무하는 한 해병 대령이 '안보실장보고를 위해 국방부장관이 결재한 수사결과 보고서를 보내라'는 전화를 걸었다. 박 대령은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안 된다"고 거절했다.
이후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전화로 '언론브리핑 자료라도 보내주라'고 지시했고, 박 대령은 언론브리핑 자료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로 보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역시 거부했어야 했다'는 입장이다(11일 국방부 검찰단 앞 발언). 그다음날(7월 31일) 해병대 차원의 수사 결과 관련 언론 브리핑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에 관련한 세간의 핵심 의혹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개입설'이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엔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의 책임자와 관련해 임성근 제1사단장이 포함돼 있었는데, 임 사단장은 이종섭 국방부장관 및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과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안보실에서 같이 근무했다.
군인권센터는 이같은 '인적 커넥션'이 해병대 수사단 수사보고서에 적시된 책임자의 범위를 축소하려는 외압으로 작용했고, 그런 시도들이 지금 사태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 중 한 명인 김정민 변호사는 이 의혹과 관련해 1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증거가 현재 전혀 없는데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언론 브리핑 자료가 (국가안보실로) 들어갔다는 것 때문에 많은 의혹을 사고 있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박 대령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전화통화를 통해 "이 사건(채수근 상병 사망사건)에 대해서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에 박 대령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물에 들어가라고 한 대대장 이하를 이야기 하느냐?"고 되묻자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해병대 수사단이 언론에 공개하려 한 브리핑 자료엔 임성근 사단장이 실종자 수색작업 계획을 늦게 알려 현장 지휘관들이 안전대책(구명조끼, 로프 등) 강구 등의 준비가 미흡하게 된 점, 수색 및 구조업무와는 관계없는 복장, 경례태도, 브리핑 상태 등을 지적해 현장 지휘관이 심리적 부담을 느껴 해병대원들에 대한 무리한 입수지시로 이어진 점 등을 들어 임 사단장의 과실이 엄중하다고 판단한 내용이 담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임 사단장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에서 수색 중 해병대원들이 안전장비 없이 수색작업 중인 것을 보고받고도 보고받지 않았다고 거짓진술을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 고(故) 채수근 상병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입장을 밝히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군 검찰단 출석이 예정됐던 박 전 수사단장은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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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근 상병 죽음의 원인과 해병대 수사단 수사에 대한 외압 실체 등은 여전히 의문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이 초유의 사태가 지난해 7월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근간을 훼손할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이예람 중사의 죽음으로 본격화된 군사법제도 개혁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불완전하지만 일부 내용의 개정을 봤는데, 주된 내용 중 하나가 군대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범죄와 사망사건 등에 관해서는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군 수사기관이 군 조직 및 지휘관 보호의 의도로 은폐와 왜곡이 만연했던 수사절차에서 이들 사건을 제외시키려는 목적에 기인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은 군검사 및 군사법경찰관의 민간경찰에 대한 협력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수사 또는 관련 절차가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조). 아울러 민간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범죄가 발생할 경우 지체없이 민간경찰 및 검찰에 이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제7조).
그런점에서 볼 때, 현재 국방부 조사본부가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한 결과를 다시 수사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채상병 사망사건의 수사 및 관련 절차를 심각하게 지연시키고 있으며, 지체없이 민간사법기관에 넘겨야 할 의무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원인에 대통령실이 관련됐다고 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슬픔에 잠겨있던 채 상병의 유족들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이 수립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국방부는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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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석진씨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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