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명수' 군산상일고, 37년 만에 대통령배 우승…MVP 정민성
제57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주최) 결승전이 열린 14일 서울 목동구장. 본부석 주차장으로 '전북' 번호판을 단 대형 관광버스 7대가 줄지어 들어왔다. 37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군산상일고 야구부를 응원하기 위해 왕복 6시간 길을 달려온 대규모 응원단이었다.
수백 명의 군산상일고 동문과 1·2학년 재학생들은 최고 기온 섭씨 34도에 이르는 무더위 속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의 함성을 쏟아냈다. 선수들은 그 열정에 가장 값진 '승리'로 화답했다. 4시간 30분이 넘는 접전 끝에 주특기인 '역전'으로 9회 말 끝내기 승리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군산상일고는 이날 결승전에서 인천고를 11-10로 꺾고 통산 네 번째 대통령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군산상일고의 대통령배 우승은 1986년 이후 37년 만이다.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는 시소게임 끝에 일궈낸 승리였다.
군산상일고는 3-4로 뒤진 5회 말 2점을 뽑아 첫 역전에 성공했다. 5-5 동점을 허용한 6회 말엔 다시 한꺼번에 4점을 보태 10-6로 앞섰다. 8회 초 인천고에 4점을 빼앗겨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9회 말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임주환과 최시원의 연속 안타와 상대 실책 등으로 만든 1사 만루에서 박찬우가 왼쪽 담장 바로 앞에 떨어지는 끝내기 적시타를 날렸다. 더그아웃에 있던 군산상일고 선수 전원이 용수철처럼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서로를 얼싸 안았다. 그들의 머리 위로 응원단이 목놓아 부르는 교가가 울려 퍼졌다.
군산상일고는 야구 팬들에게 '군산상고'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수많은 역전 명승부를 연출하면서 야구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성한, 조계현,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정명원, 조규제, 이진영, 차우찬 등 내로라 하는 프로야구 스타플레이어가 군산상고 출신이다.
올해 인문계로 전환하면서 '군산상일고'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야구부의 투지와 뒷심은 여전했다. 네 번째 전국대회인 대통령배에서 광주일고, 율곡고, 휘문고를 차례로 꺾고 4강에 올랐다. 준결승에서 강호 경기고를 연장 10회 역전 끝내기 승리로 꺾었고, 결승에선 '구도의 자존심' 인천고를 다시 연속 끝내기 승리로 제압했다. 새 이름으로 첫 전국대회 정상을 밟았다.
2011년부터 모교 군산상일고 지휘봉을 잡았던 석수철(전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은 우승과 동시에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석 감독은 "좋은 유망주들이 타 지역으로 많이 떠났다. 우리 선수들과 함께 '훈련만이 살 길'이라며 남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그 힘든 과정 끝에 이런 결과가 찾아오니까 기분이 정말 좋고 눈물이 나왔다"고 털어놨다.
전국대회 우승을 일군 선수들은 이제 석 감독과 군산의 자랑거리다. 그는 "누구 한 명의 힘으로는 우승까지 할 수 없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수들이 필요할 때 잘해줘서 다같이 웃을 수 있었다"며 "정말 많은 분이 오셔서 응원해주셨다. 군산은 '야구'의 도시니까, 이번 우승이 최근 어려움을 겪은 시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접 목동을 찾아 군산상일고를 응원한 강임준 군산시장도 "얼마 전 우리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와 재난으로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 선수들이 대통령배에서 우승하면서 군산의 정신을 보여줬다"며 "지쳐 있는 시민들에게 아주 기쁜 소식이 될 것 같다. '역전의 명수' 정신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군산상일고 에이스 정민성은 투구 수 제한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하고도 대회 최우수선수(MVP)와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준결승까지 맹활약하면서 군산상일고를 결승으로 이끈 공을 인정 받은 거다.
그는 "우승하는 순간 너무 신나고 감격해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며 "친구들이 점수를 많이 뽑아주고 수비도 잘 해줘서 내가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그리고 "소고기를 먹고 싶다. 우승했으니까 부모님께 사달라고 할 생각"이라며 활짝 웃었다.
인천고는 2004년 이후 통산 두 번째 대통령배 우승에 도전했지만, 치열한 접전 끝에 정상 문턱에서 아쉽게 돌아섰다. 인천고 투수 정주영은 여섯 번째 투수로 나서 7회 말 1사 만루 위기를 병살타로 넘기는 등 1과 2분의 1이닝 1실점으로 역투했지만, 팀의 끝내기 패배로 빛이 바랬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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