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외교 묘수?…이스라엘 갈등 깊은 팔레스타인에 대사 임명

김선미 2023. 8. 1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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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프 알-수다이리(왼쪽) 주요르단 사우디 대사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교고문인 마즈디 알 칼리디로부터 신임장을 받는 모습. 사진 주요르단 사우디 대사관 트위터 캡처


중동 외교 지형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주재 대사를 임명하면서다. 아랍과 이스라엘이 첨예하게 갈등을 빚어온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우디가 대사를 세운 건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최근 몇 년 간, 이스라엘이 오랜 숙적관계였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중재 아래 외교 관계를 회복할 가능성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번 사우디의 팔레스타인 대사 파견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의 전초전 성격을 갖게 됐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협상의 최종 난관이다. 대선을 앞둔 미국 정부로서도 골치 아픈 상황이다.

13일 로이터통신 등 보도를 종합하면, 사우디 외무부는 나예프 알-수다이리(60) 요르단 주재 사우디 대사가 팔레스타인 대사직을 겸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9년 요르단에 부임한 알-수다이리 대사는 30년 넘는 경력의 정통 외교관이다. 비(非)상주직이지만, 팔레스타인 내 현안을 담당하는 첫 대사가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그는 "내 역할이 확대된 건 사우디 국왕·왕세자가 팔레스타인 형제들과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임명 소감을 밝혔다.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예루살렘 내 사우디 외교 공관 개설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은 곧장 반발했다. 이날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라디오 방송에서 "이스라엘과 조율되지 않은 사항"이라며 "예루살렘에 사우디 외교 공관 개설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사우디의 이번 결정은, 이스라엘과의 국교 수립 가능성이 거론되던 중에 나온 것이어서 화제가 됐다. 지난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국이 수교 협상을 하기로 미국과 큰 틀에서 합의했다"며 "향후 9개월~1년 안에 구체적인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달 27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난 뒤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고 한다. 코헨 장관도 "두 국가 간 평화 구축은 시간 문제"라는 입장을 내면서 국제사회의 기대감도 커졌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팔레스타인 대사 임명을 두고 양국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핵심 쟁점으로 꼽히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 이견을 좁히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에 강경한 네타냐후 극우연정과 손잡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FT 등은 전했다. NYT는 "사우디는 향후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지 등을 차례로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이자 아랍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뒤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에도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했다. 또 양국 간 분쟁이 해결되기 전까진 이스라엘과 수교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천명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등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한 '아브라함 협정'에 합의했을 때에도 반대 의견을 냈다. WSJ에 따르면, 사우디는 중재국인 미국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이스라엘의 양보를 요구했다고 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외교 성과가 필요한 조 바이든 행정부로선 난처한 상황이다. WSJ는 최근 중동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고 이란에 대응하기 위해선, 사우디·이스라엘과의 동맹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선 예루살렘의 최종 지위에 대한 타협이 필요하지만 미국 입장에선 강력한 장애물이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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