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자락에 그려진 한 폭의 녹색수채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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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중 기자]
▲ 안반데기 배추밭( 2023/8/12) |
ⓒ 진재중 |
강릉이 비가 내리는 날, 안반데기에 오른다. 성산을 지나 대기리로 향하는 길은 안개가 자욱해서 운전하기가 어렵다. "괜히 오르는가 싶다" 하고 후회할 때쯤 해발 800m 닭목령에서 신기하게 안개가 걷힌다. 안개가 아닌 구름 속에 갇혀서 달려온 것이다. 이때가 운해를 만나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비가 그치고 난 후의 안반데기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동과서를 가르는 백두대간 허리에 위치해있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덕을 부린다. 그 변덕은 구름을 몰고 오고 바람을 일으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운무를 담고 있는 사진작가 정두수(71세) 씨는 말한다.
"발아래 펼쳐진 저 운무는 자연이 준 선물입니다. 저 선물은 아무 때나 나타나지 않고 비가 그친 후에 잘 나타납니다. 이곳 안반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면이지요."
풍요로움 그 자체
해발 1100m 안반덕 정상, 길을 두고 좌·우로 안반데기는 나누어진다. 우로는 고루포기, 좌로는 안반덕이다. 태풍과 폭우를 견디고 잘 자란 배추밭, 65만 평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출하를 기다리고있는 튼실한 배추(2023/8/12) |
ⓒ 진재중 |
배추는 짧은 기간에 왕성하게 발육하므로 비교적 많은 수분을 필요로 한다. 안반덕의 안개와 운해는 풍경을 아름답게 색칠해 주기도하지만 배추에게는 적절하게 수분 공급원이 되어준다. 물 빠짐이 잘 되는 토양을 좋아하는 배추에게는 안반데기의 급경사와 자갈밭은 더 없는 환경으로 만들어 준다.
또한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채소로 성장에 적합한 온도는 18~20℃이다. 한 여름 영상 37-38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에도 안반덕은 17-20도의 서늘함을 유지, 배추가 자라는 데는 최적의 땅이다.
▲ 안반데기, 배추밭과 구름과 풍력발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2023.8.11) |
ⓒ 진재중 |
배추는 어느 방향,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하고 색깔을 입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배추밭은 녹색물감을 뿌려 놓은 듯 하고 가까이에서 본 배추는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안반덕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배추밭을 담기 위해 서울에서 매년 촬영을 온다는 김규철(68세)씨는 "출하 직전, 8월이 촬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운무와 평야보다 넓게 펼쳐진 배추밭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안반덕에서 배추를 잘 찍을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기상 변화가 워낙 심한 지역이라서 바람과 안개가 쉽게 허락지 않습니다. 이곳 배추는 그 자체가 생명이고 작품입니다"하고 감탄을 자아냈다.
▲ 하늘에서 내려다 본 배추밭, 녹색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2023/8/12) |
ⓒ 진재중 |
▲ 안반데기 배추, 산정상에 조성된 화초와도 같다(2023/8/12) |
ⓒ 진재중 |
지난 5월에 황무지처럼 보였던 비탈밭이 녹색 세상으로 바뀌었다. 소와 함께 일궜던 거친 자갈밭도 튼실한 배추로 가득 찼다.
▲ 비탈길 밭갈이, 소와 함께 밭이랑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농부(2023/5/21) |
ⓒ 진재중 |
▲ 비탈길 험한밭에서도 튼실하게 자란 배추(2023/8/12) |
ⓒ 진재중 |
폭우와 태풍으로, 최근 농작물이 흉작이 되어 가격이 오른다는 것을 전혀 실감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풍요로움과 아름다움과 안식을 주는 안반덕, 곧 출하를 앞둔 배추가 만들어 내는 푸릇함과 싱그러움은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곳 배추는 식탁에 오를 준비를 위해 농민들에게 곧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고 그 생명을 다할 것이다. 다가오는 9월이면 대기리 안반덕은 푸르름과 풍요의 땅에서 거친 자갈과 비탈길의 민낯을 드러낸 채로 내년 봄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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