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확실히 소진되고 있어요" 대세 손석구의 고민
넷플릭스 시리즈 'D.P.2' 임지섭 대위役
갈팡질팡하는 인간적 모습에 매료
인생 경험 중요…시내 걸으며 대사 암기
배우 손석구(40)는 손석구다. 이는 그를 취재하며 느낀 바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손석구는 지금 뜨겁다. 지난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알코올 중독자 구씨로 분해 '추앙 신드롬'을 일으킨 그는 영화 '범죄도시2'에서 빌런 강해상으로 분해 1000만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의 포텐셜은 크게 터졌다. 유약한 얼굴 사이로 비치는 곧은 심지. 마성의 매력에 여성 팬들은 환호했다. TV를 틀면 여러 광고에서 얼굴이 나온다. 이제 그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최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한 카페에서 손석구를 만났다. 그는 솔직했다. 작품과 캐릭터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배우로서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았다. 또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어떻게 비칠지 계산하면서 생각을 감추거나 치장하지 않았다.
"인기요? 실감해요. 명백히 전보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부모님이랑 회사 식구들이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어떻게 알아보냐'고요. 대중이 저를 많이 접했으니 멀리서도 알아보는 거겠죠."
손석구를 향한 대중의 기대에 관해 언급하자 그는 이같이 말했다. 알아보는 이가 많지만 손석구는 시내 곳곳을 걸어 다니기를 즐긴다고. 배낭 하나 메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는 "인생 경험 등을 확장하는 데 걷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늘 같은 편의점에 가더라도 다른 길로 가보고, 오늘은 다른 편의점도 가본다거나 한다. 내비게이션을 보며 자가용으로 이동하면 경험이 한정된다. 자꾸 걸어야 뇌도 활성화된다.
30분~1시간 이상 걸으며 대사를 외우기도 한다는 그는 "소소한 경험에서 위대한 깨달음이 온다"고 힘주어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극심하던 2021년 8월27일 공개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D.P.'(디피)는 군무 이탈 체포조(D.P.)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의 이야기를 그려 인기를 얻었다.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조명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뜨거운 인기에 속편 제작이 빠르게 확정됐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D.P.' 시즌2에서 손석구가 연기한 임지섭 대위는 달라졌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엘리트 임 대위는 박범구 중사(김성균 분)와 팀으로 활약하며 새로운 축을 형성한다. 비중도 늘었다.
손석구는 "한준희 감독이 시즌2를 하게 된다면 임지섭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변화의 진폭이 크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나 역시 동의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변화된 방향이 일직선이 아니라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인간적이라서 끌렸다. '오늘부터 다시 태어난 1일'이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되는, 갈대 같은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박범구 중사와의 관계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손석구는 "임 대위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박 중사다. 때론 사이 안 좋은 상하관계가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형-동생 사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평소 저도 친한 형들이 많은데, 그 모습이 닮았다. 친해서 서슴없이 말하고 가끔 선을 넘기도 하는 모습이 실제 저와 똑같다"고 말했다.
임 대위가 변화한 계기로 나중석 하사(임성재 분)와의 일을 꼽았다. 손석구는 "임 대위는 군대의 길로 인도한 절친 나 하사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손석구는 한준희 감독과 계속해서 대화하며 임 대위를 만들어갔다. 그는 "감독님과 우리 드라마에서의 빌런은 누구인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도', '시스템'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극 중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젊은 청년들이 군대에 무엇을 위해 오는지 묻는다. 폐쇄적인 집단에서 누군가는 깨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든지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2017년 드라마 '센스8 시즌2'로 데뷔해 최고의 날을 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톱배우'라는 수식어가 착 붙을 정도다. 영화·드라마·OTT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손석구다. 그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혹여 고갈되거나 갈증을 느끼지는 않는지 물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생을 즐기는 편이에요. 평소에 갖는 나름의 지론은 '대중이 나를 지겨워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지겨워해야 한발 앞서간다'. 최근에 저는 노출도 잦고 작품 수도 늘었어요. 확실히 소진되고 있어요.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경험을 통해 새로운 면도 보일 텐데. 개인으로도 잘살아서 좋은 방향으로 변해야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나. 여행도 가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면서 도전하는 경험이 필요한 시기가 오고 있지 않나 싶네요."
'대세' 손석구를 잡기 위한 연출자의 손길도 분주하다. 밀려드는 시나리오를 뒤로한 채 그는 무대로 향했다. 최근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공연을 성료했다. 지난 4개월간 무대를 누비며 관객들과 호흡했다. 2021년 12월에는 단편 프로젝트 '언프레임드'를 통해 단편영화 연출에 도전하기도 했다.
손석구는 "연극을 하면서 연기적으로 대단히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 기술적인 부분도 느꼈다. 배우로서 환기가 많이 됐다"고 말했다.
'감독' 손석구의 행보도 기대된다. 앞서 언프레임드 프로젝트를 통해 공개된 연출작 '재방송'은 공개작 네 편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연출을 빨리하고 싶다. 정말 재밌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차기작 연출을 큰 목표로 꼽은 그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한 번의 경험이었지만 빨리 또 하고 싶다. 캐스팅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더라. 타이밍과 관계의 기술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배우로서도 느낀 바가 컸다.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계속해서 연출하고 싶다"고 했다.
구씨의 여운을 기억하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손석구의 로맨스를 다시 보고 싶다는 반응도 나온다. 손석구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나의 해방일지' 김석윤 감독의 입을 빌려 로맨스 연기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로맨스를 하고 싶어요. 할 거예요.(웃음) 실제로 조금씩 찾고 있어요. 김석윤 감독님은 남다른 해안을 가진 명쾌한 분이라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많이 상의하는 편이에요. 제게 '네가 멜로 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마음에 확 와닿지 않는 걸 억지로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죠."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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