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할인인데 1200원이나 냈다" 마음 무거운 첫차 승객들

이영근 2023. 8. 1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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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4시쯤 서울 관악구 한남여객운수 차고지에서 501번 버스 첫차를 기다리는 승객들. 승객 대다수가 새벽에 일을 시작해야 하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영근 기자

“어제 조조할인을 받았는데도 1200원이나 냈다.”
“버스 요금만 오르면 괜찮은데 전기·가스요금 등이 한꺼번에 올라 부담이 크다.”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14일 오전 3시 50분. 서울 관악구 한남여객운수 차고지에서 501번 첫차를 기다리던 청소노동자 김씨와 그의 동료의 대화 소재는 오늘부터 오른 시내버스 요금이었다. 이날은 서울시 버스 요금이 8년만에 오른 이후 맞는 첫 월요일이다. 지난 12일부터 서울시 버스 기본요금은 교통카드 기준으로 시내버스는 1200원에서 1500원으로 300원(25%) 올랐다. 마을버스는 900원에서 1200원으로 300원(33%), 심야버스는 2150원에서 2500원으로 350원(16%), 광역버스는 2300원에서 3000원으로 700원(30%) 올랐다.

오전 4시 30분 첫차인 501번은 종로2가를 종점으로 하는 파란색 간선버스다. 19년간 501번을 운행한 버스 기사 김인진(61)씨는 “매일 보는 단골들인데 주로 시내에서 청소, 경비 일을 하는 것으로 안다”며 “승객들 급여는 그대로일 텐데 최근 버스 요금이 올라 부담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5시쯤 한강대교를 지나던 501번 버스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영근 기자

기점에서 출발한 지 10분쯤 지나자 어느새 501번 버스는 50여명이 들어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501번 승객들은 “새벽 출근하는 이들에게 시내 버스는 대체 수단이 없는 유일한 이동 수단”이라고 말했다. 종로구에서 보석 세공 일을 하는 60대 남성 A씨는 “나라에서 (요금을) 올린다고 하는데 일개 시민이 어쩌겠나. 먹고 살려면 버스 안 탈 수도 없다”고 체념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일하는 정모(47)씨도 “501번 첫차 말고는 일터로 갈 방법이 없다”고 했다.

버스준공영제를 운영하는 서울시는 버스 회사들의 누적된 적자 탓에 요금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버스정책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버스 누적 부채는 9017억원에 달한다. 또 시는 이번 요금 인상으로 연말까지 686억5740원의 추가 수입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버스 업계는 숨통이 트인다는 분위기다. 특히 마을버스 회사들의 경영난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준공영제 대상이 아닌 마을버스는 정부 지원보다는 요금이 주요 수익원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요금 인상으로 정부 의존도를 낮추고 업계 스스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요금 인상이 이해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중구 호텔에서 10년간 일한 오애경(69)씨는 “적자가 많은데 시와 버스업체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면서 “한달로 치면 1만5000~2만원 더 써야 하는 데 감내할만한 수준”고 했다. 다만 오씨는 “요금을 올렸으면 첫차를 증차해줬으면 좋겠다. 10분만 늦게 도착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터에서 죽어난다”고 전했다.

13일 서울 시내 한 버스에서 시민이 카드로 요금을 결제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2일부터 간·지선버스와 순환·차등버스, 마을버스 요금을 300원씩, 광역버스는 700원, 심야버스는 350원 인상했다. 사진 연합뉴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도 버스 요금 인상 소식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평소 하루에 버스를 4번 이상 탄다는 대학원생 지주연(29)씨는 “아르바이트와 용돈이 소득의 전부라서 씀씀이를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민지(20)씨는 “버스가 지하철보다 편리해 자주 타고 다녔는데 대신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하나 고민된다”고 했다.

이에 자구책을 마련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취업준비생 주모(26)씨는 ‘알뜰교통카드’를 만들 계획이다. 주씨는 “이미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알뜰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2019년 도입된 알뜰교통카드는 서민 교통비 부담 절감을 위해 정부가 지원하고, 카드사가 발급하는 정책 상품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만큼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게 핵심이다. 각 카드사 추가 혜택을 챙기면 교통비를 많게는 30% 이상 절감할 수 있다. 지난 7일 신용카드 플랫폼 ‘카드고릴라’에 따르면, 자사 사이트 내 ‘알뜰교통카드’ 일평균 검색량은 6월 대비 7~8월 초 247% 증가했다. 오는 10월에는 지하철 기본요금도 1250원에서 1400원으로 150원(12%) 인상될 예정이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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