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례화한 한·미·일, 쿼드 넘어선다”…'소다자 체인' 입구로 [3국 정상회의]
“한·미·일 협의체가 정례화된다면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간 안보협의체)보다도 낫다."
3국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 고위 당국자가 한 말이다. 실제 쿼드의 경우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의 일원으로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도 여전히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는 인도가 있어 예민한 현안에서 한목소리를 내는 데는 한계도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한·미·일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북핵 등 역내 위협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자유민주주의 등 가치 중심의 외교를 지향한다. 제대로 모이기까지가 어려웠지, 일단 뭉치고 나면 어떤 역내 협의체보다도 강한 추진력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18일 캠프 데이비드에 모이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3국 정상회의 정례화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3일 “이번 회의를 통해 한·미·일 3자 협의체는 인도·태평양지역 내 협력체로서 뚜렷한 독립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인·태 현안 다룰 '직통 채널' 개설
이와 관련, 3국은 정례화의 일환으로 인·태 지역 현안을 주기적으로 논의하는 대화체 개설을 논의 중이다. 외교 소식통은 “이전에는 현안이 터지면 관련 당국만 참여하는 식으로 분절적으로 논의가 이뤄졌고, 사실 웬만한 중대 사안이 아니면 이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대화체나 협의체가 가동되면 포괄적 현안을 주기적이고 신속하게 협의할 수 있는 3국 간 직통 채널이 생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13일 기자들과 만나 “안보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사이버 문제, 경제안보 문제 등 다각도로 여러 협의체가 긴밀하게 가동돼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구체적인 협의체의 이름, 그리고 얼마나 자주 모여 논의할지 등에 대한 표현을 다듬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시점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정례화가 가능해진 직접적 이유는 윤석열 정부 이후 급격하게 개선된 한·일 관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배경은 높아진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다. 과거의 3국 협력은 안보, 특히 북핵 대응 분야에 국한됐고, 미·일은 한국을 동등한 조력자보다는 수혜자처럼 인식한 것이 사실이다.
'빠진 고리'에서 '핵심 고리'로
하지만 지금은 3국 협력의 범위 자체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됐고, 특히 반도체 등 핵심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한국을 빼놓고선 협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다. 정부 소식통은 “외교란 결국 ‘주고받기’인데, 이제 3국 모두 공히 서로 공평한 주고받기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으니 3국 정상회의 정례화도 가능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곧 우리나라가 다른 소다자 협의체와 협력 및 연계의 접점을 마련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쿼드뿐 아니라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간 동맹), 파이브 아이즈(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간 정보 동맹) 등과 협력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고, 실제 해당 국가들은 한국과 동맹이거나 주요 현안에서 유사한 입장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다.
그 간 한국이 미·중 간 ‘줄타기 외교’를 거듭하며 이 같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소다자 체제에서 ‘빠진 고리’ 같은 존재였다면, 한·미·일 정례 협의체 창설로 다른 소다자 협의체 간 사슬에 들어갈 수 있는 고리를 걸게 된 셈이다.
새 이름, 사무국 등 제도화 논의 필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이뤄질 정례화 선언을 뒷받침하는 실질적 제도화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제도화 없이는 정부 교체 등 국내정치적 변수에 흔들릴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분야별로 장관급 등 각급에서의 3국 협의체 가동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한·미·일을 대체할 새로운 이름도 필요할 수 있다. 쿼드는 참여국 수, 오커스는 참여국 국명에서 땄다. 한·중·일 협력체는 3국의 수도 영문명을 따 ‘베세토’로 불리곤 했다. 한국을 비롯, 자유민주주의 10개국이 참여한 D10(Democracy 10)도 있다. 한·미·일 수도명을 딴다면 워싱턴-서울-도쿄를 의미하는‘와세토’, 3국이 모두 중시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앞머리를 따면 ‘FOIP 3’가 된다.
궁극적으로는 사무국 설치 등 3국 협력을 전담할 조직을 만들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중·일의 경우 서울에 사무실을 둔 3국협력사무국(TCS)이 있다. TCS는 한·중·일 정상회의가 정례화한 지 3년 만인 2011년 만들어졌으며, 3국 고위급 인사들이 돌아가며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을 맡고 있다. 이처럼 상설조직을 만들 경우 국가 간 관계의 부침과 관계없이 꾸준한 협의와 협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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