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자원봉사자가 구호 활동…"정부는 뭐하나" 주민 분통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 참사가 미국에서 한 세기 만에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가운데, 정부의 미흡한 예방 대책에 이어 느린 구호 조치가 동시에 도마 위에 오르며 현지 주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BBC방송 등에 따르면, 산불이 발생한 라하이나 등 마우이섬 서부 일대에서 정부 관계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이곳에는 여전히 수백 명의 주민이 남아있고 전기와 식수, 식료품, 차량용 휘발유 등의 지원이 시급한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하와이를 연방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신속한 복구 지원을 약속했다. 지역 공무원과 주·연방 정부 공무원, 주 방위군 등 수백명이 피해 지역에 상주하며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현지 주민들의 체감은 다르다.
구호품 수송에 참여한 마우이 중부 키헤이 주민인 폴 로메로는 "우리 '오하나'(하와이 원주민어로 '가족')를 지원하기 위해 발로 뛰며 개인 재산을 소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세금을 걷어가는 정부의 대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하다"고 강조했다. 라하이나의 북쪽에 있는 호노코와이 마을에서 휘발유를 나눠주던 애슐리 얍 역시 "이 휘발유는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마련했다"며 "정부는 대체 어딨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산불 피해를 겪은 주민 세르지오 마르티네즈는 "네살짜리 아들을 안고 살아남기 위해 8시간 동안 물속에서 버텼다"면서 "그렇게 살아남았는데 국가는 어디에 있나"라고 반문했다. 리처드 비센 마우이 카운티 시장은 "현지 자원봉사자가 많이 도와주는 모습이 정부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면서도 "정부는 상점으로 달려간 뒤 물건을 사다 놓는 일반 시민들보다 아마도 느리게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산불이 인재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난 가운데, 구호 활동 등 정부의 후속 대책까지 늦어지자 현지 주민들의 불만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앞서 산불 발생 첫날인 지난 8일, 초기 경보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단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샀다. 또 수년 동안 산불 예방 대책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는데도, 하와이 공무원들이 지난해 지진·쓰나미·화산 등에 비해 산불의 위험도는 '낮다'고 평가한 보고서를 내놓은 사실까지 확인됐다.
하와이주 라하이나 카운티에 따르면 12일 현재 사망자는 최소 93명으로 집계되면서 미국에서 한 세기 만에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수색이 아직 초기 단계라서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아울러 라하이나 지역에서 불에 탄 면적이 여의도(2.9㎢)의 약 3배인 총 2170에이커(8.78㎢)에 이르며, 주택 등 건물 2200여 채가 전소되거나 무너져 피해 규모는 최소 60억 달러(약 8조원)에 육박한다
불길은 진압되고 있지만 산불이 재확산될 우려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마우이섬은 최근 몇 달간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심했다. 토양이 건조해 불이 붙기 쉬운 상태다. CNN은 전문가를 인용해 토양 온도가 거의 섭씨 100도에 가까워 땅 속의 불이 튀어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마우이섬 경제를 지탱하는 관광업도 당분간 중단이 불가피하다. BBC에 따르면 현지 주민들은 마우이섬을 찾은 일부 관광객들이 평소처럼 휴가를 즐기는 모습에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며, 당분간 관광 목적의 방문은 자제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 마우이섬 주민은 "사흘 전에 우리 주민들이 (산불을 피하려다)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바로 다음날 관광객들이 같은 물속에서 수영을 했다"면서 "어떤 하와이 사람도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수영·스노클링·서핑 등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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