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설거지론? 윤석열 정권을 많이 닮았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8. 1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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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보수 언론이 민주화운동동지회에 주목하는 이유

[김종성 기자]

 지난 8일 자 <중앙일보> 기사
ⓒ 중앙일보
노무현 집권기인 2004년에 시작된 뉴라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만드는 현상이 8월 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민주화운동동지회 발족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동향이 그것이다. 이들은 1960년대에 출생하고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벌인 86운동권을 설거지하겠다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역임한 민경우 대안연대 대표,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을 주도했던 함운경 전 군산시 국회의원 후보자,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낸 주대환 전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 등이 주도하는 민주화운동동지회는 광복절인 15일에 발족식을 열겠다고 예고했다. 운동권의 그릇된 행태를 청산하고 미래세대에 새판을 열어주겠다는 게 이들의 공언이다.

주대환 전 혁신위원장은 지난 9일 <문화일보>에 '운동권 정치 설거지 깃발 드는 이유'를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여러 차례 경찰서 유치장을 드나들고 세 번 감옥을 갔다 왔다"면서 민주화운동가들과 동지애를 쌓은 경험을 거론하고 "그 시절 내가 경험한 동지애는 아마 그 시대가 아니었으면 경험하기 힘든, 시대의 선물"이었다고 한 뒤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간혹 느낀다. 그 진한 동지애가 지금의 나를 구속한다. 옛 동지들이 모두 동의해주지 않으면 보고 느끼는 대로 말하지 못한다. 청춘의 우정은 노년의 속박이 되고 있다."

운동권 시절의 가치관이 속박이 된다는 그는 "이제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86운동권 청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렇게 정의와 민주를 외친 세대가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을 가로막는 기득권세력이 됐다"고 말한 뒤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자", "우리 함께 후손들을 위해 설거지를 하자"는 말로 글을 맺었다.

이들이 최근 인터뷰에서 집중적으로 제기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민경우 대안연대 대표도 10일 <뉴데일리> 인터뷰에서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해 "운동권 정치인들의 물리적 퇴장을 추진할 것"이라며 "과거 운동권 정치인과 운동권 등을 통해 부당한 축재를 했던 인사들을 모두 규명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8일 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함운경 전 국회의원 후보자는 "민주화운동은 1987년 체제 도입으로 그 역할을 마쳤다"라며 "운동권이 만든 쓰레기는 운동권이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승만의 독립협회 활동에 집중하는 이유

이들이 운동권 설거지를 위해 내세우는 논리들이 있다. 민경우 대표는 <뉴데일리> 인터뷰에서 "민주화운동동지회를 결성한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운동권 출신들이 만들어낸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가치관을 청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면서 "대표적으로 이승만 격하 운동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승만을 격하하는 가치관을 청산하러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가치관은 우리가 만든 부산물"이라며 "이것을 우리가 직접 치우기 위해 단체를 결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승만 격하 운동에 맞서는 것이 자신들의 핵심 동기라고 소개한 것이다.

주대환 전 위원장이 <문화일보> 기고문에서 다소 불분명하게 처리한 부분이 있다. 86운동권의 역사관·세계관을 비판한 직후 대안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그는 "125년 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조상들이 찾아낸 독립운동의 기본 노선"을 운동권 역사관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승만 띄우기에 참여하는 국민의힘 및 국가보훈부 관계자들과 이승만학당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자주 언급하는 것이 이승만의 독립협회 활동이다. 이들이 여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방해한 죄목으로 임시정부에서 탄핵되고 12년간의 대통령 재임 뒤에 쫓겨났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을 띄우는 측은 앞으로는 그의 독립운동이나 대통령 재임보다는 독립운동 이전의 독립협회 활동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수밖에 없다. 주대환 위원장이 독립협회 노선을 대안적 가치관으로 제시한 것은 조심스러운 이승만 띄우기로 보인다.

1896년 창립된 독립협회의 이념을 집약한 사건은 1919년 3·1운동이다. 3·1운동에서는 '독립'과 '민주공화국'에 대한 열망이 함께 표출됐다. 그것을 반영해 그해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헌법 격인 임시헌장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규정했다.

3·1운동은 독립협회가 추구한 '독립'과 '민주공화국'의 코드를 다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훨씬 선명하게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협회 정신보다는 3·1운동 정신에 우리 민족의 열망이 더 많이 담겨 있다. 그런데도 보수 진영이나 극우 진영은 굳이 독립협회를 부각시킨다. 3·1운동을 강조하면 항일이나 반일과 연관됨은 물론 대한민국의 기원을 1919년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립협회 활동은 일본이 아닌 대한제국 정권을 겨냥한 것인 데다가 대한제국을 '열강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일본의 의도에 악용된 측면도 없지 않다. 독립협회를 강조하면 반일을 자극하지 않고도 3·1운동의 대체재처럼 활용할 수 있는 동시에 이승만을 띄우는 데 용이하다는 것이 보수나 극우 이론가들의 판단으로 보인다. 운동권 이론가들이 포진한 민주화운동동지회가 이승만과 더불어 독립협회를 부각시키는 데는 그런 고려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설거지인가
 
 2019년 7월 11일 당시 바른미래당 주대환 혁신위원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혁신위원장직 사퇴 기자회견을 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이들이 '이승만'과 함께 띄우는 또 다른 메시지는 '친일청산 반대'다. 위 동지회에 대한 취재 결과를 담은 8일 자 <조선일보>는 "동지회는 운동권 출신들의 '대한민국은 해방 후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역사관을 설거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주대환 전 혁신위원장과의 전화 통화에 기초한 13일 자 <문화일보> 기사 역시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화운동동지회가 기존 운동권과 다른 것은 사실이다. 이승만을 존경하고 친일청산을 반대하는 것은 운동권은 물론이고 한국인의 평균적인 정서와도 다르다. 이런  생각은 보수 기득권층과 유사한 것을 넘어 극우세력과도 비슷하다.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와 달리 현저히 낡은 사고다.

이들의 기고문이나 인터뷰에서 배어 나오는 이미지는 이승만과 닮아 보인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임시정부에서 쫓겨난 뒤 친일세력과 연합해 대권을 차지하고 그 뒤 친일청산을 적극 저지했다. 운동권 생활을 청산한 뒤 친일청산 반대를 외치는 민주화운동동지회 멤버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비슷하게 묻어난다.

이들은 현실 정치에 마음이 없다고 강조한다. <조선일보> 기사는 "젊은 시절 벌였던 잔치판을 설거지해 다음 세대가 새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들의 취지라고 전한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의 이력이 그런 공언과 썩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주대환 전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했을 뿐 아니라 바른미래당에서는 혁신위원장과 당무감사위원장도 지냈다. 함운경 전 후보자는 1996년부터 2016년까지 총선에 4회, 군산시장 선거에 1회 출마했다. 제도권 정당이나 선거와 인연이 깊은 이력은 자신들의 역할을 설거지에 한정하고 다음 세대가 잔치를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공언에 좀 더 많은 보강증거를 요구하도록 만든다.

민경우 대표는 <뉴데일리> 인터뷰에서 운동권 설거지에 대한 포부를 밝히면서 "내년에 치러질 총선이 그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런 발언 역시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현실 정치와 관련을 맺으리라는 판단을 갖게 만든다. 이승만을 띄우며 친일청산을 견제하는 모습은 윤석열 정권을 많이 닮았으며 이들의 정치 활동 역시 윤 정권과 궤를 함께할 여지가 크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민경우 대표는 위 인터뷰에서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지금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한 뒤 "이들을 조직하고 각종 조직적 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들을 재규합해 민주화운동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애당초 쉽지 않은 일이다.

주대환 전 위원장은 <문화일보> 기고문에서 "민주화운동의 옛 동지는 하나가 아니다"라며 "노론과 소론처럼 분파돼야 한다"라고 한 뒤 "우리는 소론이다"라고 말했다. 송시열 진영에 맞서 윤증을 중심으로 뭉친 소론 당파처럼 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화운동권을 극복하기보다는 그것을 한층 더 분화시키는 동시에 기득권 일부를 분점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기 쉽다.

보수 언론이 이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새로운 이념이나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이 운동권 출신이라는 배경을 갖고 운동권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인터뷰나 기고문에서 느낄 수 있듯 이들 역시 그런 이력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

이는 이들이 86운동권을 설거지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어떤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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