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DNA" 알고보니 ADHD 교육법?…뇌 버전 안아키 논란

이수민 2023. 8. 14. 12: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녀를 ‘왕의 DNA를 가진 아이’라고 표현한 교육부 사무관이 한 민간연구소 교육법을 따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연구소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약물 없이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곳이다.

14일 오전 트래픽 초과로 서버가 다운된 대전 한 교육 사설연구소 사이트. 사진 홈페이지 캡처

‘왕의 DNA교육법’ 뭐길래


14일 오전 대전 지역 한 사설연구소 온라인 커뮤니티는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리며 사이트 서버가 다운됐다. 교육부 사무관이 썼던 ‘왕의 DNA’라는 표현의 출처가 해당 커뮤니티라는 사실이 퍼지며 접속자가 급증한 탓이다. 실제 이 연구소는 자폐와 언어·지적장애, ADHD 치료를 표방하면서 ‘왕의 DNA’ 등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연구소는 ADHD 판정을 받은 아이들을 ‘극우뇌’형으로 분류하고 “ADHD는 약물로 치료할 경우 오히려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대신 ‘왕자 또는 공주 호칭을 사용해 우월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기’ 등의 교육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에겐 “공부해”라고 말하는 대신 “동궁마마 공부하실 시간이옵니다”라고 하면 더 잘 따른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소 김의철 소장은 “극우뇌 유형 아이들은 스스로 ‘황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훈육보다 그런 대접을 해주면 영웅심이 채워져 문제 행동이 교정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연구소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윤석열 후보 뇌를 들여다본다'는 게시물(왼쪽)과 최근 '주호민 작가 아들 솔루션'을 제시한 유튜브 영상. 사진 인스타그램·유튜브 캡처

비상식적인 연구 홍보·후기글


연구소 홍보 게시글 중에는 정치·사회적으로 이슈를 이 같은 치료법과 연결짓는 내용도 있었다. 연구소 유튜브 채널에는 최근 논란이 된 웹툰 작가 주호민씨 아들과 관련해 “아드님이 살길이 있다”며 “연구소장님을 뵙고 수업을 들으라”는 취지의 영상이 올라와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지난해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의 뇌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그의 정체를 풀어낸 책이 있다”며 김 소장의 도서를 홍보하는 게시글이 업로드 돼 있다.

일각에서는 이같이 신빙성이 떨어지는 교육법으로 인해 오히려 아이들이 학대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실제 커뮤니티에는 연구소 수업을 들은 학부모 후기가 다수 올라왔는데 “극우뇌 아들을 세워줘야 한다고 들어 동생한테 분노발산을 하더라도 보고만 있었다” “소장님이 극우뇌 아이에게 동생은 신하, 장난감, 친구라고 하셨다. 저희 둘째가 그 역할 감당하느라 힘들어한다” 등 다소 비상식적인 내용이 적혀있다.

연구소 교육법을 1년 넘게 적용했을 때 오히려 아이 상태가 나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법에 의지하는 듯한 후기도 있었다. 제보자 A씨는 커뮤니티에 지난해 11월 “아이가 학교에 지금 거의 안 가고 있다. 친구는 한 명도 없고 반에서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며 “원래 유기농에 밥, 고기만 먹이다가 수업받고나서 라면, 떡볶이 등 원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먹게 해줬더니 간편식만 먹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도 “다음 주 소장님 뵙고 다시 상담해볼까 한다”는 글을 남겼다.

연구소 커뮤니티에 올라온 김의철 연구소장의 '극우뇌 아이 교육법'과 이대로 1년 넘게 교육했으나 실패했다는 한 부모의 후기. 사진 커뮤니티 캡처

안아키 ‘뇌 버전’ 지적도


연구소의 방식이 2013년 논란이 됐던 ‘안아키 사태’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아키는 아동학대 논란까지 불렀던 극단적인 자연주의 치료법으로 발생한 논란이다. 아토피를 앓는 아이에게 피부를 마음대로 긁도록 놔둔 뒤 피부를 햇볕에 쪼여 소독을 하게 한다거나 설사를 하는 아이에게 숯가루를 먹이는 등의 치료법을 공유했다가 부작용을 호소하는 회원들이 생기며 파장이 일었다.

한편 이번 사건은 교육부 5급 사무관이 지난해 11월 3학년 자녀의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직위해제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드러났다. 그는 후임으로 부임한 교사 B씨에게 “‘하지 마, 안돼’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 등의 내용이 적힌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대전교육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해당 사무관을 직위 해제했다.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