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헤어졌는데... 전 남친 '결혼 깨기 작전'의 결말

양형석 2023. 8. 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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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줄리아 로버츠를 부활시킨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양형석 기자]

남녀칠세부동석. '남자와 여자는 7살이 되면 한자리에 같이 앉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녀를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유교의 옛 가르침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나 통했을 법한 이 말을 지금의 'MZ세대'에게 가르치려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꼰대'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제는 '남사친(남자사람친구)', '여사친(여자사람친구)'이라는 줄임말이 보통명사처럼 쓰일 정도로 이성친구가 상당히 자연스러워졌다.

사실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도 과거보다 훨씬 수월해졌고 이성친구가 소위 말하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사실 여기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붙는다. 바로 남자와 여자, 그 어떤 쪽도 서로에게 이성적 감정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어느 한 쪽이 상대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게 되고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한다면 두 사람의 우정은 더 이상 길게 유지하기가 힘들다.

물론 이성친구에 대한 호감이 '쌍방'일 경우엔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다시 연인에서 부부로 발전하는 커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성친구에 대한 호감이 '일방통행'인 상황에서 상대에게 또 다른 애인이 생기거나 그 애인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짝사랑의 당사자는 매우 난감해 질 수밖에 없다. 지난 1997년에 개봉해 큰 사랑을 받았던 줄리아 로버츠와 카메론 디아즈 주연의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처럼 말이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국내에서도 서울관객 33만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워터홀컴퍼니(주)
 
우정에서 사랑으로 발전하는 영화들

현실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친구로 지내고 상대에게 애인이 생기거나 결혼을 한 후에도 계속 우정을 이어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친구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끼지 못하면 영화적으로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멜로 영화에서는 친구로 지내던 남녀가 여러 에피소드를 겪다가 후반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피어나면서 영화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스토리의 정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신인에 가까웠던 맥 라이언을 일약 '로맨틱 코미디의 여제'로 만들었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다. 친구로 지내던 해리(빌리 크리스탈 분)와 샐리(맥 라이언 분)가 마지막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결말 때문에 당시 젊은 사람들(지금은 장년층이 됐겠지만) 사이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나탈리 포트만과 애쉬튼 커쳐가 주연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 <친구와 연인 사이>는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사실 특별히 새롭거나 신선한 내용은 없지만 <고스트 버스터즈> <유치원에 간 사나이> <데이브> 등을 연출했던 베테랑 아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두 주인공의 매력이 어우러진 깔끔한 데이트 무비다.

<집으로…>를 연출한 이정향 감독의 데뷔작이자 심은하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는 <미술관 옆 동물원>은 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녀가 본의 아니게 동거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멜로영화다. "사랑은 풍덩 빠지는 걸로만 알았지, 서서히 물들어 버리는 것인지는 몰랐어"라는 춘희(심은하 분)의 대사처럼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로 같은 해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와 함께 1990년대 후반 한국 멜로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칸 영화제 3회 수상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은 지난 2006년 커리어 처음으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통해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했다. 정신병동에서 함께 지내는 영군(임수정 분)과 일순(정지훈 분)이 '밥'을 통해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인 만큼 평범한 멜로를 기대해선 곤란하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200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높은 완성도를 인정 받았다.

줄리아 로버츠 '제2의 전성기'를 알린 신호탄
 
 '아메리칸 스윗하트' 줄리아 로버츠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질투에 눈이 먼 줄리안을 사랑스럽게 연기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 워터홀컴퍼니(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줄리안(줄리아 로버츠)이 9년 전 쿨한 이별 후 친구로 지내던 마이클(더멋 멀로니 분)의 결혼소식을 듣고 친구의 결혼을 깨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친구 사이가 연인으로 발전하며 해피엔딩이 되는 여느 로맨틱코미디 영화들과 달리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연인이었다가 친구로 돌아간 상대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는 줄리안의 애절한 사연이나 가슴 아픈 과거, 마이클을 향한 애타는 마음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마이클의 결혼상대인 키미(카메론 디아즈 분)가 마이클을 놓칠 수 없다며 줄리안 앞에서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결국 마이클과 키미의 결혼을 깨면서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려 했던 줄리안은 자신의 욕심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화장실에 숨어있던 키미를 찾아 결혼식장으로 데려간다.

1990년 <귀여운 여인>을 통해 4억 6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이끌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줄리아 로버츠는 <적과의 동침>과 <후크> <펠리칸 브리프> 등을 연속으로 흥행시키며 최고의 스타배우로 떠올랐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단명하는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 줄리아 로버츠 역시 1990년대 초·중반 비슷한 장르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하면서 이미지를 소모했고 일찌감치 전성기가 끝난 배우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슬럼프에 빠지는 듯했던 줄리아 로버츠는 1997년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통해 2억 9900만 달러의 흥행을 이끌었고 2년 후 <노팅 힐>로 3억 6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는 2000년 미국의 법률종사자 겸 환경운동가의 실화를 영화화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에린 브로코비치>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연출한 호주 출신의 P.J.호건 감독은 1994년 호주와 프랑스의 합작영화 <뮤리엘의 웨딩>을 만들었고 1997년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연출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2003년에는 <피터 팬>을 만들었지만 제작비(1억 달러) 대비 흥행(1억 2100만 달러)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고 2009년엔 다시 전공분야(?)로 돌아와 <쇼퍼홀릭>을 선보였다. 호건 감독은 2012년 <멘탈>을 끝으로 10년 넘게 연출을 쉬고 있다.

카메론 디아즈의 이미지를 완성해준 영화
 
 캐머런 디아즈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구축한 캐릭터를 여러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 워터홀컴퍼니(주)
 
지난 1995년 짐 캐리 주연의 <마스크>에서 섹시한 매력으로 남성관객들을 설레게 했던 카메론 디아즈는 아직 신인 딱지를 완전히 떼지 못했던 1997년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 출연했다. 디아즈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줄리안의 오랜 남사친 마이클과 결혼을 약속한 20살의 부자 여대생 키미 역을 맡았다. 줄리안 입장에서 키미는 마이클에게서 떼어내야 할 일종의 '연적'인 셈이다.

하지만 영화 속 키미는 줄리안과 관객들이 미워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키미는 멜로 영화 속 흔한 악녀들과는 전혀 다른, 오직 마이클 한 사람만 바라보는 착하고 순수한 인물이다. 마이클의 오랜 친구라는 이유로 줄리안과 만나자마자 그녀에게 안기며 결혼식 신부 들러리를 서달라고 부탁했을 정도. 디아즈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키미를 통해 그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섹시한 푼수' 캐릭터를 구축했다.

워낙 여성배우들의 캐스팅이 화려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남자배우들은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남자주인공 마이클 역의 더멋 멀로니는 2013년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서 리처드 스토커 역을 맡았고 올해 방영된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전>에서는 미국 대통령을 연기했다. 줄리안의 게이 친구 조지 역의 루퍼트 에버렛 역시 <슈렉> 시리즈의 챠밍왕자 목소리 연기 정도를 제외하면 확실한 대표작을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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