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물놀이, 구전민요에서 엿본 아이들의 상상력

강등학 2023. 8. 1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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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해야 나오너라' 노랫말 속 구름에 가린 해 이끌어내기

[강등학 기자]

 '70년대 국민학교 아름다운 추억들 그 때 그모습', 유튜브채널 <TV배호> 화면캡처. 여름철 계곡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기롭다.
ⓒ 유튜브채널 TV배호
  
여름철 아이들에게 계곡물은 천국이다. 요즘과 같은 워터파크 시설이 없던 예전에는 더욱 그랬다. 가까이 사는 동네 아이들은 물론 방학 때 친가, 외가의 할머니나 친척 집을 찾은 도시아이들에게도 계곡은 오늘날 워터파크나 다름없는 놀이 성지로 기능했다.

한낮의 여름 계곡은 이리저리 어울린 아이들로 활기차다. 물장구로 개헤엄 치기, 싸움하듯 서로 물을 끼얹으며 경쟁하기, 누가 물속에 오래 있는지 잠수해 겨뤄보기, 널따란 돌에 함께 앉아 오르락내리락 발장난 치기, 첨벙이는 소리와 느낌을 즐기며 물속 거닐기, 여기저기 물속을 기웃거리며 무언가 찾아보기 등 여러 행위가 정해진 순서 없이 끼리끼리의 분위기에 따라 곳곳에서 벌어진다.    

아이들은 이렇게 계곡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도 계속 즐거울 수만은 없다. 물속에서 오래 놀다 보면 힘이 들기도 하고, 또 물의 시원함이 어느덧 몸을 차겁게 하며 입술을 파랗게 만들기도 한다. 물 밖에 나와 쉬면서 몸을 말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몸 말리기는 햇볕이 쨍쨍할수록 좋다. 그러나 상황이 늘 그리되는 것은 아니다. 해가 구름에 가려 볕이 시원치 않으면 몸 말리기는 더디다. 젖은 몸이 으스스해 마음이 급해지면 볕이 더 절실해진다. 해가 빨리 구름을 벗고 나오도록 하고 싶다. 물가에서 몸을 말리고픈 아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마음을 노래했다.

해야해야 나오나라
복주깨로 물떠먹고
장고치며 나오나라
-김소운, <조선구전민요>, 1933, 황해북도 곡산

"나오나라"는 "나오너라"인데, 옛말투가 새롭다. "복주깨로 물떠먹고"는 흔히 "김치국에 밥말어먹고"라고 하기도 하는데, 우정 덜 알려진 것을 예로 들었다. 1930년대는 두 가지가 다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복주깨(주발 뚜껑)는 사라지고 김치국이 주류가 되었다.

구름 속에 가린 해보고 어서 나오라고 했다. 구름에게 해를 가리지 말고 비키라고 말하지 않았다. 구름이 해를 가린 것이 아니라 해가 구름 뒤로 들어간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해더러 구름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럼 해가 구름 뒤로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이어지는 말 속에 나온다.

아이들은 해더러 물 떠먹고 장고치며 나오라고 했다. 복주깨로 물 떠먹기는 밥을 다 먹고 나서 하던 모습으로서 예전에 어쩌다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물 떠먹으라는 요구는 밥 먹기를 서둘러 끝내라는 뜻이다. 해가 구름에 가린 것을 해가 밥 먹으러 간 것으로 해석하고, 밥 그만 먹고 빨리 나오라며 아이들의 급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김칫국물에 밥 말아 먹으라는 말도 그 의미는 다르지 않다. 김치나 다른 건더기 반찬은 씹어 넘기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김칫국물에 밥 말아 먹으라는 요구는 그래서 한 말이다. 그냥 후루룩후루룩 삼키듯 밥을 서둘러 먹으라 재촉한 것이다. 결국 복주깨로 물 떠먹기나 김칫국물에 밥 말아 먹기는 같은 의도의 다른 표현에 해당한다.

해를 향한 간절한 주문
 
 축제장에서 물줄기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는 어린이들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아이들은 나올 때 장고를 치라고 해에게 또 다른 주문을 했다. 장고는 춤을 수반하며 몸짓을 활기차게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워딩은 해에게 밥 그만 먹고 나와서 신나게 놀자는 뜻을 전한 것인데, 그 저변은 해가 빨리 구름 밖으로 나와 힘이 넘치고 생기가 가득한 쨍쨍한 볕을 내 몸에 쏘여주길 바라는 소망을 드러낸 것이다.

볕이 나야 몸을 말린다. 구름에 가린 해를 불러내기 위한 아이들의 착상은 이밖에도 다양하다.

참깨줄게 볕나라
들깨줄게 볕나라
-김소운, <조선구전민요>, 1933, 충청남도 공주

볕이 나라고 하면서 해에게 보상을 제시했다. 참깨와 들깨를 볶아주겠다는 것이다. 노래에 따라서는 보상으로 참빗과 얼레빗을 말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해가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다. 그러나 참깨, 들깨, 참빗, 얼레빗이 모두 생활에 긴요한 물건이다. 꼭 필요한 물건을 주고서라도 해가 볕을 주길 바라는 간절한 동심이 읽혀진다.

저긴콜콜 여긴쨍쨍
건넌집색시 물길러나온다
땅땅 말러라
-김소운, <조선구전민요>, 1933, 평안북도 철산

저쪽 계곡은 물소리가 콜콜 나고, 자신이 있는 여기는 볕이 찡쨍하다고 했다. 해는 여전히 구름에 가려 있지만 바라는 바가 이미 이루어진 양 말한 것이다. 소망을 이룬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면 실제로도 그런 상황이 도래한다는 주술적 심리가 개입된 말이다. 말을 바꾸면 주술을 건 것이다.

주술을 걸었으니 볕은 이제 쨍쨍해진다. 그래서 다음의 정황을 말하며 살갗이 땅땅해지도록 물을 말려달라고 했다. 곧, 이웃집 색시가 물 길러 온다는 것이다. 색시가 물 길러 온다면, 그 전에 옷을 입도록 몸을 말리지 못하면 큰 일이다. 발상이 재미있다.

요즘 워터파크에 갈 때는 통상 체온 유지도 하고 물기도 닦기 위해 비치타월을 챙긴다. 그리고 몸을 씻으려면 세면도구와 관련 용품도 챙긴다. 계곡에 가더라도 준비물은 유사하다. 그러나 예전 아이들의 계곡 나들이는 끼리끼리 어울릴 뿐 준비물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필요한 모든 것은 그저 감내하거나 자연스레 그 안에서 해결한다.

세월따라 물놀이도 달라졌다. 편리함은 늘었지만, 대신 잃은 것도 없지 않다. 오로지 볕에 의한 몸 말리기는 불편했겠지만, 그 덕에 동심은 자유로운 상상으로 해와 소통하는 문화를 즐겼다. 비치타월로는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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