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마을 속에서 자란다

전정희 2023. 8. 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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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걸 잊지마-아동청소년 그룹홈 아홉 자녀 엄마의 '직진'](8)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마을 속에서 자란다
농촌 마을 아이들 웃음소리, 혈연 아니지만 '공유'

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그가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부는 서울에서 낙향을 결심했다.  전성옥은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갈록마을 사람들. 정겹게 둘러 앉아 함께 하는 식사. 사진=전성옥 제공

혈연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공유한다


“민지야! 이거 옆집 이든이네 드시라고 갖다 드리고 와라.”

“네, 엄마, 근데 윗집은 누가 가요?”

“윗집 장로님네는 해지가 갔다 와.”

한여름 수박 한통으로 윗집 아랫집이 시원해졌다. 아이들은 심부름을 좋아한다. 특히 엄마가 만든 음식을 이웃집에 갖다 바치는(?) 일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든다. 그도 그럴것이 심부름을 하고나면 반드시 뭔가를 더 얻어오기 때문이다.

“엄마! 이든이 엄마가 고맙다고 과자 주셨어요.”

“엄마! 장로님이 잘먹겠다고 하고 사과 주셨어요.”

이러니 아이들은 심부름 말이 떨어지면 엄마 앞으로 번개처럼 줄을 선다.
우리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다. 마을의 정겨운 풍경이 잘 나타나 있다. 사진=전성옥 제공

우리 마을 이름은 갈록이다. 갈(渴), 록(鹿)...목마른 사슴이라는 뜻이다. 마을 앞에는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는 호수가 있다. 아주 옛날 사슴이 살았을 때는 목마른 사슴이 호수에 내려와 물을 먹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는.

그래서 마을이름이 갈록이다. 지금도 간간히 노루며 고라니 등이 물을 찾아 호수로 내려오는 모습을 볼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갈록마을은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는 곳이 아니다. 동네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이야기가 있는 행복한 마을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지만 갈록마을은 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마을이 아이를 키워내고 있다.
갈록마을 앞 불갑저수지에서 수상 스키를 즐기는 마을 아이들. 운영작 마을 어린이들이라며 무료 체험하게 해줬다. 사진=전성옥 제공

할머니도 있고 이모도 있다. 삼촌도 있고 동생도 있다. 혈연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공유한다. 몇 년전 위기아동을 위한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한 우리(엄마와 아빠)는 마을과 함께 아이들을 키운다.

부모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에게 갈록마을은 포근한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다. 이웃이 되어 주었다. 내 자식 네 자식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들로 받아주었다.

설날이 되면 아이들은 모두 세뱃돈 받을 생각에 기대가 하늘이다. 아이들이 많아 주머니가 탈탈 털리지만 마을 어른들은 그것이 행복이다.

“엄마, 저는 세뱃돈이 10만원도 넘어요.”

“엄마, 저는 올해 중학교에 간다고 다른 애들보다 더 많이 주셨어요.”

세배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모여 윷놀이를 한다. 윷놀이 한판을 끝내려면 하루가 부족하다. 사람들이 많다 보니 편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서 규칙을 만들고 이긴 사람 진사람 벌칙을 정하는 것도 한나절이다.

사라져 가는 농촌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로 울리는 곳이다. 넓은 마당에 노을이 앉으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 소리가 마당을 채운다.

퇴근하던 이웃집 어른이 들어오는 시간. 모두 한소리로 “다녀오셨어요?”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고딩언니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밥솥에 밥이 없으면 아이들은 금세 말한다.
갈록마을 앞 불갑저수지 겨울 풍경. 사진=전성옥 제공

“엄마, 제가 옆집에서 밥 한 그릇 달라고 할게요.”

빠르게 차려진 밥상은 옆집에서 만든 된장국과 윗집에서 만든 돼지고기 주물럭이 찬으로 올라온다. 함께 한다. 많은 것을 함께 한다.

마을이 아이를 키워준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마을 속에서 자란다.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이웃집에 들어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안다.

옆집 아이가 혼자 놀면 데리고 와서 같이 놀아준다. 놀다가 엄마가 오면 스스럼 없이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그러다 시간이 되면 “안녕 잘 자고 와”가 인사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 동화 같은 이야기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우리 마을이다. 이곳은 목마른 사슴은 없지만 목마른 아이들이 함께 모여 마음의 목을 축이는 아름다운 공동체 갈록마을이다.

전성옥(수필가) jso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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