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로 만들어진 쟈니스 제국"…UN·일본 정부 나섰지만 '아직 갈 길 멀다'

류지윤 2023. 8. 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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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모든 젊은이가 안심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 실현 위해 시책 실시"

"쟈니는 죽은 후에도 보호 받고 있다"

2019년 공개된 영국 BBC 다큐멘터리 '포식자: J-POP의 비밀 스캔들'이 고인이 된 쟈니스의 설립자 쟈니 기타가와의 생전 성폭력 의혹을 다루며 남겼던 말이다. 이 의혹을 취재한 기자 모빈 아자르는 전 쟈니스 출신 4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쟈니 기타가와의 사태를 파악하고 일본 현지에서 취재를 시작했지만 번번이 거부 당했다고 기록했다.

ⓒ후지시마 쥬리 게이코

2019년 일본 음악 업계를 쥐고 흔드는 대형 사무소 쟈니스의 창립자의 경악스러운 행태에 전 세계가 놀랐지만, 당시 일본만은 조용했다. 후속 보도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매체도 극소수였다. 방송 후 두 달이 지난 후에야 현 대표 후지시마 쥬리 게이코는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에게 깊이 사죄한다. 앞으로 전문가를 둬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전했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BBC의 다큐멘터리 방영 후 피해자가 또 등장했다. 지난 4월 쟈니스 연습생 '쟈니스 주니어' 소속이었던 오카모토 가우안이 도쿄 외국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쟈니 기타자와에게 성착취를 당했다고 밝히며 한 번 논란을 지폈다. 오카모토는 2013년 3월 도쿄 시부야에 있던 쟈니 기타가와의 집에서 성폭력을 당했던 일화를 자세하게 폭로했다.

피해자의 증언과 피해자의 구명활동이 지속되고 해외에서도 이 논란이 반복해서 언급되자 이번에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나섰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8월 "일본 미디어 기업들이 수십 년간 이런 불상사를 덮는데 가담해왔다. 일본 정부가 1차적 의무자로서 가해자에 대한 투명한 수사와 피해자 구제 방법을 확보해야 한다"라며 쟈니 키타가와의 성착취 논란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유엔은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 등의 성적 학대, 노동환경 등 처우, 쟈니 기타가와에 대한 성 피해 호소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내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사실 쟈니 기타가와를 둘러싼 성추문은 일본 내에서 크게 놀라울 것 없는 사건이다. 금단의 영역일 뿐이다. 1999년 일본 주간지인 주간문춘에서 쟈니스가 연습생들에게 합숙소 등에서 음주와 흡연, 무리한 스케줄을 강요했고, 기타가와 대표는 연습생들을 성희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쟈니스는 주간문춘에 항의하며 명예훼손 혐의로 1억 엔의 손해배상을 청구 소송을 벌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간문춘 기사에 실린 주장 중 미성년자 성 학대 주장을 포함한 총 9건이 진실이라고 판결, 1억 엔이 아닌 120만 엔을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1962년 설립돼 SMAP, 히카루 겐지, 소년대, V6, 아라시 등 인기 남성 아이돌 그룹들을 양성한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등지고 싶지 않았던 일본 매체와 방송국들이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현재도 당시 상황을 자세히 보도한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쟈니스 사무소의 아이돌 그룹들은 드라마, 영화,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일본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관계성으로 일본 언론의 침묵이 지속된 것이다.

BBC는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의 성향도 피해자들의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일본 속담 중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은 나쁜 일이나 추문이 있으면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일단 덮어 놓고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가리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그 결과 쟈니 기타가와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아무 문제 없이 쟈니스의 대표 자리를 유지해 왔다.

유엔 인권 위원회가 나서자 이례적으로 일본 정부는 도쿄(東京) 일본 기자클럽에서 "모든 아이들, 젊은이가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사회 실현을 위해 착실하게 시책을 실시하겠다"라고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원론적인 입장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해외에서 나서줘야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오르는 현재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폐쇄적인 구조의 변화에 대해서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리고 이 우려 역시 일본 매체가 아닌 일본 국민들의 목소리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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