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년 만에 법천사지로 돌아온 지광국사탑

박영호 2023. 8. 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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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길은 원주를 대표하는 도보여행길이다.

원주에 살면서도 몰랐는데 며칠 전에 법천사지에 행사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무단반출되었던 지광국사탑재가 112년 만에 다시 법천사지로 돌아왔다.

191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 경복궁에 놓여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난 것을 복원하여 2023년 8월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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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무단 반출되었다가 1915년 서울 반입... 복원 후 8월 원래 자리로

[박영호 기자]

굽이길은 원주를 대표하는 도보여행길이다. 굽이길 10코스는 '천년사지길'이다. 고려시대에 번창했으나 이제는 사라진 법천사와 거돈사가 있던 빈 터를 지나는 길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주에 살면서도 몰랐는데 며칠 전에 법천사지에 행사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무단반출되었던 지광국사탑재가 112년 만에 다시 법천사지로 돌아왔다. 
 
 마침내 되돌아 온 지광국사탑
ⓒ 박영호
       
 지광국사탑이 있던 자리
ⓒ 박영호
   
 지광국사탑비
ⓒ 박영호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70)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지광국사탑은 고려 불교 미술의 백미로 여겨지는데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통째로 뜯겨 서울로 옮겨졌다가 일본 오사카로 무단 반출되었다. 191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 경복궁에 놓여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난 것을 복원하여 2023년 8월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왔다. 무려 112년 동안 탑은 사라지고 탑비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12년 만에 돌아온 지광국사탑
ⓒ 박영호
 
 
 복원을 마친 모습
ⓒ 박영호
 
 
 꽃잎이 새겨진 받침돌
ⓒ 박영호
현재 복원을 마치고 해체된 상태로 전시되고 있다. 원래 있던 자리에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과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전시관 안에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처음엔 원래 있던 자리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실내에 잘 모셔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법천사지유적전시관
ⓒ 박영호
 
새로 지은 유적 전시관 앞에는 커다란 꽃밭이 만들어져 있다. 백일홍은 지고 있으나 조만간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꽃밭이 아니더라도 발굴을 마치고 깔끔하게 정리된 빈 터를 걷기만 해도 좋다.
 
 발굴을 마친 법천사지
ⓒ 박영호
 
법천사지를 들렀다면 반드시 거돈사지를 들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법천사지보다 느낌이 더 좋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삼층석탑과 금당터 그리고 꼭대기에 자그맣게 보이는 사리탑이 하나 있다.
 
 거돈사지 느티나무
ⓒ 박영호
 
 거돈사지 삼층석탑 뒤에 금당터가 있고 맨 위에 원공국사탑이 있다.
ⓒ 박영호
   
 금당이 있던 터로 보이는 곳에 남아 있는 불좌대
ⓒ 박영호
거돈사지 꼭대기에 있는 사리탑은 원공국사를 기리는 탑이다. 원공국사탑도 지광국사탑과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일제강점기에 뜯겨 일본인의 집에 있던 것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진짜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복제품이 있다. 2007년에 만든 복제품에서도 이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원공국사탑을 재현한 탑
ⓒ 박영호
   
탑비의 건립은 '태평을축추칠월(太平乙丑秋七月)'로 되어 있는데, 이는 고려 현종 16년(1025)에 해당하므로 이 사리탑도 그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8각 사리탑으로, 모양이 단정하고 아담한 통일신라 탑의 양식을 이어받아 조형의 비례가 좋고 중후한 품격을 풍기며, 전체에 흐르는 조각이 장엄하여 한층 화려하게 보인다.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원공국사탑비
ⓒ 박영호
 
법천사지에 있던 석재는 모두 전시관 안에 옮겨 놓았다. 지광국사탑비 주위에 널브러져 있을 때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원공국사탑도 서울에서 원주로 옮겨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래야 하냐는 물음이 생긴다. 
문화 유적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더 잘 보관할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할까? 아니면 역사적으로 있어야 할 곳에 그대로 놓아두어야 할까?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유적을 돌려 달라는 이집트인이 생각난다. 생각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해서 답을 정하지 못하겠다.
 
 배례석을 비롯한 많은 유물을 수장고로 옮겨 놓았다.
ⓒ 박영호
 
돌아오는 광복절에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다시 고향에 돌아온 지광국사탑을 보고 천년사지길을 한 번 걸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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