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과 성수동? 이젠 여기가 빠르게 뜨고 있다
[윤찬영 기자]
▲ 충주 관아골 골목에 자리한 카페 '세상상회' |
ⓒ 세상상회 |
마스크를 벗고 처음 맞는 여름휴가,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날 곳들을 찾느라 분주하다. 온라인이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이란 섣부른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사람들은 이제 온라인이 결코 줄 수 없는 감성과 경험을 찾아 다시 바깥세상으로의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그런데 달라진 게 있다. 팬데믹을 거치는 사이 우리는 '동네'와 '골목'의 가치에 새롭게 눈을 떴다. '동네 소비'가 늘면서 내가 사는 곳 주변에 믿고 갈 수 있는, '얼굴 아는' 가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피해 숨겨진 지역과 공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늘었다. 자연스럽게 지역의 더 깊은 곳, 작은 동네와 골목으로 스며드는 흐름이 생겼다. 이른바 '하이퍼 로컬' 경향이다.
따지고 보면 꼭 팬데믹 때문만은 아니다. 탈산업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획일화된 경쟁과 성장, 효율성만을 앞세우던 사회 분위기가 다양한 개성과 삶의 질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돌아섰고, 이러한 변화도 '로컬'로 향하는 흐름에 한몫했다. 로컬이야말로 다양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 "오프라인 시장의 미래는 로컬"이라고 말하는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
ⓒ 도서출판 알키 |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모종린 저)는 로컬로 향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한발 앞서 예측하고 분석한 책이다. 책을 쓴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2017년 <골목길 자본론>을 출간하며 우리 사회에 골목길 열풍을 불러온 '골목길 경제학자'다.
그는 <골목길 자본론>(2017)에서 골목길, 또는 골목상권의 가치를 밝힌 데 이어,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2020)에선 골목길 창업자들이 가져야 할 세계관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번 책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에선 팬데믹 이후 결국 로컬로 향할 오프라인 시장의 미래에서 골목 창업가들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오프라인은 결코 대체될 수 없으며, "오프라인 시장의 미래는 로컬"이라고 단언했다.
▲ 군산 영화동 영화타운에 자리한 '럭키마케트' |
ⓒ 지방 |
▲ 부산 영도 봉래동 부둣가에 자리한 '무명일기' |
ⓒ 무명일기 |
▲ 세종 조치원에 자리한 '조치원문화정원 방랑싸롱' |
ⓒ 방랑싸롱 |
우리 역시 지역성을 지닌 문화, 역사, 자연, 환경, 지리, 장소, 건축물 등이 로컬 비즈니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바로 로컬 여행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오래전부터 도시 안에 있는 한 지역에서 현지 문화를 즐기고 현지인처럼 사는 여행을 선호했다. 대형 호텔과 유명 관광지를 투어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밀레니얼 여행자들은 뉴욕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일본 도쿄의 다이칸야마, 서울의 홍대와 같은 힙스터 동네를 찾아 에어비앤비에서 숙박하면서 주변 맛집과 로컬숍을 탐방하며 자신만의 코스를 즐긴다." (55쪽)
실제로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제주를 찾는 이들이 여행 기간 내내 한 지역에 머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마치 지역민처럼 한 동네에 머물면서 지역문화를 깊이 체험하려는 흐름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고, 이에 발맞춰 전국 곳곳에서 이른바 '동네 브랜드'가 뜨고 있는 것이다.
▲ 속초 소호거리에 자리한 '소호259' |
ⓒ 트리밸 |
▲ 거제 장승포에 자리한 '밗' |
ⓒ 공유를위한창조 |
▲ 인천 개항로 '개항로통닭' |
ⓒ 개항로프로젝트 |
▲ 세종 조치원에 자리한 '미트볼스테이션' |
ⓒ 세종시삼십분 |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서울 밖으로도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저자가 꼽은 서울 밖의 대표적 동네 브랜드로는 광주 동명동·양림동, 수원 행궁동, 강릉 명주동, 전주 풍남동, 대구 삼덕동 등을 꼽고 있다.
책이 나온 뒤로 새롭게 떠오른 곳들도 있는데, 인천 개항로 주변, 공주 제민천 주변(봉황동·반죽동), 부여 규암리 자온길, 세종 조치원역과 조치원문화정원 주변, 충주 관아골 주변, 군산 월명동·영화동(영화타운), 광주 송정역 앞(1913송정역시장), 부산 영도 봉래동, 속초 동명동(소호길), 강릉 양양(죽도해변), 정선 고한(마을호텔18번가), 거제 장승포 등이 있다.
골목의 변화를 만드는 건 '로컬 크리에이터'
이들 뜨는 동네와 골목에는 어김없이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란 "지역에서 혁신적인 사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지역문화를 창출하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지역자원과 네트워크를 연결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 로컬 크리에이터가 있어야 찾고 싶고 머물고 싶은 '매력적인 로컬'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 공주 제민천 인근에 자리한 '봉황재' |
ⓒ 퍼즐랩 |
▲ 공주 제민천 풍경 |
ⓒ 퍼즐랩 |
이들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활력 잃은 골목에 개성 넘치는 카페, 빵집, 책방, 게스트하우스, 편집숍 등을 열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이러한 가게들이 모여 '마을호텔'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공주 제민천 주변에 조성된 '마을스테이 제민천'이 있다.
"동네 책방을 컨시어지로, 민박과 게스트하우스를 숙박으로, 마을 가게와 식당을 호텔 식당과 선물가게로, 코워킹과 라운지를 주민과 손님, 손님과 손님을 연결하는 장소로, 갤러리, 행사, 마을 투어, 워크숍, 마을 가게 등을 로컬 문화를 체험하고 문화 창출에 참여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217쪽)
이처럼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뿌리를 내린 동네와 골목에선 대도시 대형 상권에선 경험하기 힘든 그 지역만의 독특한 상품과 서비스를 만날 수 있고, 그것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이 되고 있다.
팬데믹과 장마가 물러가고 맞이한 뜨거운 여름, 지역만의 매력을 품은 '머물고 싶은 동네'를 찾아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조용한 골목 카페에 앉아 이 책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를 읽는 것도 꽤 괜찮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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