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67화. 여름 돼지
총명한 꼬마 돼지 베이브와 저팔계의 차이점은
베이브는 총명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아기 돼지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던 베이브는 축제의 경품이 되어 작은 농장으로 가게 되죠. 돼지들로 가득한 농장에서 벗어나 양을 기르는 농장에서 자라게 된 베이브. 새로운 환경에서 베이브는 양치기 개나 닭이 되고 싶어 하는 엉뚱한 오리와 친해지면서 조금씩 슬픔을 잊게 됩니다. 우연히 농장 밖으로 나갔던 베이브는 도둑들이 양을 훔쳐 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이 사실을 알려 양도둑을 막은 베이브는 똑똑한 돼지로 사랑받고 양치기로 훈련받죠. 결국 양치기 대회에 출전하게 된 베이브. 과연 베이브는 훌륭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요.
‘매드 맥스’ 시리즈로 유명한 조지 밀러 감독이 공동 제작·각본을 맡은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는 작은 돼지가 주역으로 활약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이야기 속에서 멍청하고 우둔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돼지가 총명하고 영특한 모습으로 활약하는 것이 흥미롭죠. 돼지는 오래전부터 가축으로 친숙한 동물이지만, 이야기에선 보기 힘듭니다. 개나 고양이처럼 함께 생활하거나, 말이나 소처럼 타거나 함께 일하지 않는 평범한 짐승, 그냥 고기로만 소비하는 가축이다 보니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새끼 때는 귀엽게 보일 수 있지만, 자라고 나면 사람보다 훨씬 크고 뚱뚱한 모습에 둔하고 게으르게 느껴지죠. 뭐든 먹는 데다 종종 진흙탕에서 구르는 모습은 지저분해 보이기도 합니다. 판타지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돼지는 보통 조연이나 악당으로 나오는데, 대개 지저분하고 욕심 많고 멍청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판타지에서 돼지 얼굴로 자주 나오는 오크 종족이 대표적이죠.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가모리안이라는 외계인은 돼지 얼굴을 하고 돼지처럼 꿀꿀거릴 뿐 말도 제대로 못 하며 문명 수준도 떨어져 자바 더 헛 같은 악당의 부하로만 등장합니다. 제다이 앞에서 무수하게 날아가 버리는 잔챙이죠.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하늘의 장군이었지만, 선녀를 희롱하다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 떨어진 저팔계는 나그네를 잡아먹으며 지내다 손오공 일행이 되었는데, 손오공과 달리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죠. 불교와 도교에서 금하는 여덟 가지 계율이란 뜻에서 ‘저팔계’라고 불리지만, 먹을 것을 탐하는 마음은 버리지 못해 천축에 도착한 후에도 부처가 되지 못하고 심부름꾼 같은 신분에 머무르게 됩니다. 멍청하고 지저분하며 게으르고 욕심 많은 동물. 돼지에 대한 이런 느낌이 판타지 이야기에도 영향을 준 것입니다.
사실 돼지는 꽤 활동적인 동물입니다. 지저분하다는 느낌과 달리 깨끗한 것을 좋아해서 몸을 자주 씻는 데다 똥도 아무 데나 누지 않고 화장실처럼 낮은 곳에 모아 두곤 하죠. 생각처럼 멍청하지도 않습니다. 돼지의 지능지수는 80 정도로 지능지수 60인 개보다 훨씬 높아 돌고래에 가깝고, 인간으로 보면 3~4세 수준이라고 하죠. 동료끼리 싸우면 이를 말리고 화가 났을 때는 위로해 주는 모습도 보인다고 해요. ‘꼬마 돼지 베이브’에서 농장의 여러 친구가 베이브를 위해 마법의 암호를 알아내 전해준 것도 이처럼 높은 사회성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 양들과 소통하는 마법의 암호 “바렘유(Baa-ram-ewe, 네 종족과 신념과 일족에 진실하라, 양이여 진실하라)”는 이후 판타지 게임이나 이야기 속 양들의 울음소리로 정착돼요.
돼지는 의외로 민감해서 모르는 사람이 다가가면 긴장하며 스트레스를 쉽게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돼지를 기를 때는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하는 점이 많다고 하죠. 되도록 넓은 곳에서 여러 무리가 자유롭게 활동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돼지는 어느 정도 습기가 필요하고 너무 덥지 않은 날씨를 선호하는 동물입니다. 땀샘이 퇴화하여 더워도 땀을 흘려서 몸을 식히지 못하기 때문이죠. 시원한 곳에 누워 가만히 있는 것도 그 때문이며,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도 몸을 식히려는 행동입니다. 더위를 쉽게 타다 보니 먹이도 별로 먹지 않아요. 여름은 돼지에게 힘겨운 계절이죠. 이슬람교나 유대교에서 돼지를 부정한 동물이라고 여기며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도, 이들 종교가 생긴 지방에서 돼지를 기르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시 부자들이 돼지를 많이 길렀는데, 그 탓에 서민들의 삶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돼지가 탐욕스러운 게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는 부자들이 탐욕스러웠기에 돼지를 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돼지를 기르기 힘든 곳에서도 돼지고기를 즐겼듯, 돼지고기는 맛이 좋아요. 다채롭고 풍부하고 깊은 맛이라 다양한 음식에 활용되며, 단백질·비타민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해 좋은 여름 보양식이기도 해요. 돼지고기는 소나 닭보다 상하기 쉬워서 예전에는 ‘여름철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고도 했지만, 기술이 발달한 요즘엔 식중독으로 고생할 일도 적습니다. 물론 돼지고기는 잘 요리해서 바로 먹어야겠지만 말이죠. 더위가 이어져 힘겨운 시기지만, 영양 많은 돼지고기로 건강을 챙기면서, 돼지가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며 즐거운 방학 보내시길 바랍니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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