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대본 있는 좀비 시트콤? 제작진도 놀랐다"

이이슬 2023. 8.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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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 CP·문상돈 PD 인터뷰
넷플릭스 버라이어티 '좀비버스'
제작진이 밝힌 딘딘·덱스·꽈추형
시골마을·홍대 배경 K콘텐츠 차별화
문상돈PD(왼쪽) 박진경CP[사진제공=넷플릭스]

서울 도심, 하루아침에 좀비가 창궐한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평온한 일상을 깨고 피 칠갑 좀비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면 제일 먼저 뭘 해야 할까. 이러한 상상을 콘텐츠로 담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리즈 '좀비버스'가 지난 8일 공개됐다.

'좀비버스'를 만든 박진경 책임프로듀서(CP)와 문상돈 PD를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공개 후 온라인 반응을 긴밀하게 살피고 있다는 박 CP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언급량이 첫날보다 2~3배 늘었다"며 "처음엔 '아쉽다'가 7, '재밌다'가 3이었다면 점점 역전되는 분위기"라고 만족감을 보였다.

방송인 노홍철, 박나래, 딘딘(임철), 배우 이시영, 가수 츠키가 서울 홍대에서 한 연애 예능프로그램을 녹화하기 위해 모인 자리. 갑자기 한 여성 출연자가 앞에 앉은 남성 출연자의 목을 물어뜯는다. 감염된 좀비들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허둥지둥하던 출연자들은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린 공간에서 벗어나 건물 밖으로 몸을 피한다.

거리에는 뛰쳐나온 좀비들로 가득하다. 출연자들은 그들을 피해 승합차를 타고 홍대에서 멀리 벗어난다. 몸을 피한 외딴 마트에서 숨어있던 덱스(김진영), 꽈추형(홍성우), 조나단, 리사와 만나 팀을 이룬다. 이들은 좀비 세계에서 퀘스트를 수행하며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좀비버스' 스틸[사진제공=넷플릭스]

콘텐츠를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 익숙한 국내 시청자들은 마치 대본이 있는 시트콤·드라마 같다고 평한다. 박 CP는 "리얼리티는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CP는 '좀비버스'를 '좀비 액션 버라이어티'라고 표현했다. 그는 "장르를 헷갈리는 시청자들이 있더라. '피의게임'을 예상하고 본 시청자들이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에 '리얼리티가 맞냐'고 묻더라. 예능이기에 리얼리티쇼를 예상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라고 공감했다.

해외 반응도 엇갈리긴 마찬가지다. '좀비버스'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박 CP는 "해외 시청자들은 한국 예능 콘텐츠 하면 데이트 매치, 서바이벌 형식에 익숙한데, 본격 예능 코미디가 생소하다는 반응도 나온다"고 바라봤다.

글로벌 시장에 내놓는 만큼 소재와 공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박 CP는 "코미디에는 문화적 차이가 작용한다. 때론 장벽이 되기도 하는데, 그래서 선택한 게 좀비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K좀비라 불릴 만큼 인기가 있고, 가장 중요한 건 코미디와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좀비의 시작은 B급 영화다. 좀비는 행동도 우스꽝스럽고, 부가적 상황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다. 목을 물리면 좀비가 된다. 재난 상황이고 어떤 지역은 봉쇄되고 또 군인이 활약할 수도 있다. 문화적 공감대가 달라도 좀비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 거라고 봤다"고 했다.

한국적인 장소를 등장시켜 차별점을 뒀다. 박 CP는 "좀비 콘텐츠를 많이 봤다. 마트, 놀이공원 등 좀비물의 정석을 따라가면서도 한국의 시골 마을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통 장례식장은 친숙한 공간인데 해외 시청자들이 보면 오싹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문 PD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연출했는데, 이제 한국 하면 명동이 아니라 홍대다. 한국적인 특이한 장소로 맛을 살리고 싶었다. 공장, 장례식장, 정미소, 마을회관처럼 다른 좀비물에는 없는 장소를 등장시키면 재밌을 거라고 봤다"고 했다.

'좀비버스' 스틸[사진제공=넷플릭스]

장례식 장면에서 출연자들이 먹고 마시는 장면도 실제 몰입한 장면이라고. 박 CP는 "이동하면서 어느새 밤이 됐고, 출연자들이 다들 배고파했다.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은 상황이었다. 막걸리랑 전을 엄청나게 먹었다"고 말했다. 문 PD는 "전을 네 번이나 먹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그랬다. 한 시간 촬영을 예상했는데, 먹고 이야기하느라 두 시간 반이 지났다"며 웃었다.

국내 시청자들은 잘 만든 예능프로그램을 오랜 시간 즐겨왔다. 여간해서 재밌는 예능을 많이 봐 온 시청자들은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일부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개입이 과도했다고 지적하면서 대본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 CP는 "가상의 상황이지만 무서운 상황에 출연자들을 몰아넣고 집중을 도왔다"고 했다. 대본이 있었는지 묻자 그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고정 출연자 10명에게는 특정 대사나 캐릭터의 행동대사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촬영 후 소품이나 손, 발 등 클로즈업샷은 추가로 촬영했다고 밝혔다.

2회 도입부 등 새로운 회차가 시작되면서 추가되는 상황 설정은 대본이었다. 박 CP는 "'교통사고가 났어요. 깨어나는 상황에서 시작할게요'라고 주문했다. 상황에 던져놓은 건 맞다. 그런데 깨어났을 때 좀비들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반응은 리얼이다. 또 특수효과 등을 통해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NPC(게임에서 컴퓨터가 조종하는 인물) 출연자들과 좀비 연기자들에게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문했고, 합을 맞추는 등 철저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리얼한 상황을 만들어 출연자들의 몰입을 도왔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진경CP(왼쪽) 문상돈PD[사진제공=넷플릭스]

문 PD는 "촬영 전 체육관을 빌려서 좀비 연기자들과 합을 많이 맞추며 연습했다. 마트 에피소드에서 사회체육학과 대학생들과 좀비 간의 장면은 철저히 연습을 통해 연출된 장면이다. 출연자들에게는 긴급재난문자를 통해 '식수와 식량을 구해서 자리에 머무세요'라고 지령하는 방식으로 길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박 CP는 "마트 회차에서 출연자들의 반응이 생생해서 제작진도 놀랐다. 특히 박나래가 카트에서 놀라는 표정이 리얼했다"고 말했다.

초반에 다소 이른 죽음을 맞은 전 야구선수 유희관도 제작진은 예상치 못했다고 강조했다. 문 PD는 "유희관이 좀비들한테 물렸을 때 답답했다. 혹자는 '많이 안 물렸는데 왜 죽였냐'는데, 유희관이 넘어졌고 좀비들한테 둘러싸였다. 살았다고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박 CP도 "유희관이 물릴 줄 상상도 못 했다"며 웃었다. 이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운동선수 역할을 기대했는데 그럴 줄 몰랐다"고 했다.

문 PD는 또 "제작진이 출연자의 사망 시점을 정해놨다는 의혹도 터무니없다. 단연코 누군가를 특정 회차에 죽이겠다는 설정은 없었다. 좀비에게 물리면 48시간 후에 좀비가 된다는 설정과 사망할 정도로 많이 물리면 그 자리에서 좀비로 변한다, 정도의 설정은 있었다"고 말했다.

공개 후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출연자는 덱스(김진영)다. 덱스는 여자친구를 버리고 홀로 몸을 피해 구조를 요청하는 남자친구를 질타하고, 홀로 고립된 츠키를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밧줄을 타고 몸을 던진다. 희생한 줄 알았던 그는 이내 튼튼한 팔로 다시 밧줄을 타고 거침없이 올랐다. 그를 두고 멋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제작진은 '솔로지옥2'에서 메기로 활약하기 전에 촬영했다고 밝혔다.

'좀비버스' 스틸[사진제공=넷플릭스]

박 CP는 "사실 덱스가 그 남자친구를 더 세게, 많이 혼냈다. 이시영도 화를 많이 냈다. 심하지 않나 싶어 덜어냈다"고 말했다. 문 CP는 "헌팅포차 이야기도 그렇고 NPC 출연자가 한심한 역할이었다. 덱스, 이시영 모두 얼굴에서 진짜 화가 보였다"며 웃었다.

출연자를 향한 인상적인 반응으로 '딘딘의 재평가'를 꼽았다. 박 CP는 "KBS2 예능 '1박2일'에서는 징징거리고 얍삽한 이미지인데, '좀비버스'에서는 깊이 몰입했다. 어설프더라도 앞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다시 봤다'는 반응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문 PD는 "꽈추형(홍성우)이 초반에 얄미운 캐릭터로 비치는데 박나래를 구하러 뛰어 들어가는 걸 보면서 놀랐다. 왜 들어갔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박나래가 다친 상태라 '쟤보다 먼저 죽지는 않겠다' 싶었다더라. 그런데 막상 당하는 모습을 보니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재밌는 형인 줄 알았는데 정의로웠다"고 말했다.

박 CP는 또 "베테랑 노홍철·박나래에게 고맙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제 역할을 알아서 해주셨다. 노홍철은 실제로도 겁이 정말 많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섭외했는데 역할을 잘 해줬다. 혹자는 좀비 앞에서도 그런 농담을 하느냐고 하는데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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