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소아혈액종양과 A교수의 휴가를 기원하며
협업 시동… '헌신' 의사들도
걱정 없이 평안한 휴식 갖길
소아암 환자 부모는 늘 죄인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아픈 아이를 둔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혹여 자신이 잘못 돌본 탓은 아닐까 끊임없이 자책한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건, 어른도 견디기 어려운 아이의 고통이 순간이 아니라 영원이 될까 하는 우려다.
다행히 숫자가 보여주는 현실은 그나마 소아암 환자들에겐 위로가 된다. 다른 암과 비교해 보면 소아암의 상대생존율은 높은 편이다. 전체 암의 경우 5년간 생존할 확률이 71.5%지만 소아암은 86.3%다. 제때 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가능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
하지만 ‘생존율 86.3%’라는 숫자는 의학 기술 발달로만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지치지 않고 힘을 내준 소아암 환자 본인과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소아혈액종양과 의사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숫자다. 많은 의사가 ‘돈이 되는 분야’를 찾아 떠날 때, 회복하는 아이를 보며 남은 이들이 현장을 지켜낸 결과다. ‘86.3%’라는 숫자 속에는 누군가의 완치와 누군가의 절망이 뒤섞여 있기에 의사들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다.
특히 지역에 소아암 전문의가 없는 환자들은 터널 끝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전국 69명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62.3%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강원 지역에는 단 한 명도 없어 대부분 환자는 서울로 가야만 한다.
진료를 위해 아픈 아이를 데리고 3~4시간 차를 타고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일. 지방에 사는 소아암 환자 부모의 일상 속에 자책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서울을 오가며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다른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부모의 속은 더 무너진다. 안타깝게도 원거리 치료에 지쳐가며 가정의 붕괴도 일어난다고 한다.
한 부모는 “특히 휴가철 가족과 피서지로 향하는 다른 차들 속에 고속도로에 갇힐 때면 마음이 더 무너진다”고 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소아암 환자들은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고, 이동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크다. ‘서울에 집을 얻어 병원 근처에서 아이가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역의료, 필수의료가 무너진 현실에서 자책은 온전히 부모 몫이 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5개 지방 거점병원을 중심으로 병원 내 다른 촉탁의를 채용하거나 지역 내 타병원 소아암 전문의를 활용하는 방안을 내놨다. 다른 기관 의사들이 서로서로 힘을 모아 ‘팀’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인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내놓은 임시 대책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지만, 지금의 의료 현장은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근본 대책에만 기댈 수 없다. 69명의 혈액종양 전문의 중 절반가량은 50세 이상이다. 신규 유입되는 전공의가 없는 지금 상태가 지속되면 몇 년 뒤 더 심각한 상황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인력이라도 붙잡아둬야 하는 것이다.
의료기관 간 의사를 파견하고 받는 일은 굉장히 민감할 수 있다. 책임 소재가 모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의 소아암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의사들의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제도를 만든 복지부와 그 안에서 기꺼이 활동하겠다는 소아혈액종양과 의사들의 헌신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 지방 국립병원 소아혈액종양과 A교수는 해외는커녕 제주도로도 휴가를 가본 지 오래됐다고 했다. 이 병원에는 소아혈액전문의가 A교수 한 명뿐이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결항되면 당장 소아암 환자를 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대책대로 기획재정부 예산 마련을 통해 진료체계가 잘 적용되면, A교수도 내년부터 타병원 의사들의 도움으로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추가로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통해 힘든 의료 분야에도 인력이 공급되면 상황은 나아질 수 있다.
부디 내년 여름에는 A교수를 비롯해 필수의료 현장의 공백을 개인의 헌신으로 메우고 있는 의사들이 환자 걱정 없이 평안한 휴가를 떠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런 진료 환경이 마련돼야 환자들도 안심할 수 있다.
김유나 사회부 차장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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