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그 지경 된 잼버리, 용산은 과연 뭘 했는가
네 탓 공방은 낯 뜨거운 삿대질일 뿐
월드컵 때 화장실과 숙박시설 몇 년 점검, 수백만 거리응원도 오랫동안 실험…
대통령실은 드러나지 않게 모든 일 챙기는 곳
'안전한 잼버리' 공언한 장관 엉망진창인 행사장에 대통령 참석케 한 참모…
드러난 것은 정부의 무능과 용산의 무책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잼버리 K팝 콘서트가 무사히 끝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데 한국은 대회를 치를 능력은 없고, 콘서트는 잘하는 나라로 기억되는 건 아닐까. 물구덩이와 해충, 폭염에 식수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열악한 상황에서 일부 참여국이 야영장을 떠나자 대통령은 뒤늦은 ‘컨틴전시 플랜’을 주문했고, 주무장관은 “우리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줄 기회”라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내놓았다. 기업과 시민, K팝 아이돌들의 참여로 상황이 마무리됐으니 그것도 성과라고 자화자찬할 차례인가.
이제 잼버리 파행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감찰과 조사, 수사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대회를 유치한 2017년 이후 지금까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관계자가 과연 있을까. 네 탓 공방은 우리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의 눈에도 낯 뜨거운 삿대질일 뿐이다. 몇 년간 방치하다 인계한 전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최종적 책임은 인계받은 뒤에라도 제대로 치를 기회를 놓친 현 정부가 질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 등 세 부처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국가적 행사에 대통령까지 참석했는데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새만금의 잼버리대회는 간척지라는 열악한 환경에 폭염 태풍 등 위험 요소를 안고 있었다. 8년 전 간척지에서 치러진 일본 잼버리대회가 학습대상이었지만 배운 것은 없었다. 일본은 50년 전 간척이 끝나 굳은 땅에 대회장을 마련했지만, 새만금 대회장은 2017년 대회 유치 이후 갯벌을 매립하기 시작해 아직 굳지도 않은 상태였다.
1987년 대통령선거 1주일 전 노태우 후보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이렇다 할 국책사업이 없던 전북 지역 유권자를 겨냥한 선거용이었다. 1971년 부안 익산 등 옥서지구 농지간척사업이 발표됐지만 아무런 진척 없이 십수 년이 지났다. 묵혀 왔던 전북의 국책사업은 그렇게 대선을 계기로 되살아났다. 이후 30여년간 새만금에는 20조원 넘는 국비가 투입됐다. 전북은 잼버리대회 유치를 새만금의 추가 예산을 확보하는 계기로 삼았다. 완공된 기존 매립지를 사용하는 대신 부안 쪽 해창갯벌 매립과 기반시설 조성에 예산이 들어간 이유이고, 그 결과가 침수와 해충이다. 선거용으로 시작된 간척사업이 잼버리를 계기로 다시 예산 확보 수단이 된 30년 역사 속에서 역대 정부 중 누가 책임을 면할 수 있겠는가.
위기는 일시에 일어나지 않는다. 대형사고 전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수십 건에서 수백 건 일어난다. ‘하인리히 법칙’이다. 그 징후나 예고들을 포착하고 대비하는 게 위기관리다. 위기의 전조는 많았다. 이미 국회와 언론에서 우려와 지적이 이어졌음에도 점검과 대비는 없었다. 예산 확보에 갈급한 전북과 6년간 예산 지원만 하고 손 놓은 중앙정부 모두 위기를 자초한 장본인이다. 그중 누군가 현장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둘러봤다면 그 상태로 대회를 열 수 있었을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기 전 화장실과 숙박시설을 개선하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수백만 인파가 모인 길거리 응원도 몇 년간 준비와 실험을 거쳤다. 그럼에도 대통령에겐 30분 간격으로 거리 응원 상황이 보고됐다. 오랫동안 정책기획수석을 팀장으로 매일매일 점검회의가 열렸고, 청와대는 계속 비상 대기 상태였다. 국정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실은 항상 어디에든 나타나고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일을 한다. 용산 대통령실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그런 본연의 임무를 잊고 있는 건 아닌가. 정부에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15개 부처가 참여하는 잼버리 지원위원회가 있었지만 회의는 단 두 번이었고, 점검·지원 TF팀을 지휘한 국무조정실은 점검도 지원도 놓쳤다. 변기를 청소하는 총리의 사진은 그 부실을 확인시켜준다.
이태원 참사 직후 대통령은 경찰이나 현장 공무원부터 질타했다. 하지만 그 말은 먼저 대통령실과 정부로 향했어야 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은 이태원에도 새만금에도 가지 않았다. 직무정지에서 막 복귀한 행정안전부 장관은 “안전한 잼버리를 만들고 있다”고 현장과 동떨어진 얘기를 했고, 그곳에 간 대통령도 사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진즉 물러났어야 할 장관, 엉망진창인 행사장에 대통령이 참석하도록 한 참모, 드러난 것은 정부의 무능과 용산의 무책임이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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